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생명의 존귀성 (창세기1:20-28)

새벽지기1 2017. 4. 21. 06:5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1:27-28)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한 후에 여러 가지 생명 있는 생물을 또한 지으셨습니다. 여러 가지 식물, 동물, 바다에는 어별(魚鼈) 육지에는 금수, 여러 가지 생명 있는 생물을 지으신 것입니다. 아무리 지구가 있다 하여도 그 위에 생물이 없으면 이 지구는 죽은 지구가 될 것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지으신 바요 또한 하나님께 속합니다. 그런 까닭에 이 생명은 존귀하고 또한 신성합니다. 사람이 지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모든 생명 있는 생물들을 하나님께로부터「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까닭 없이 이러한 생명들에게 고통을 주던지 이 생명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가지 하나 또 벌레 하나 새 한 마리 또한 짐승하나라도 우리가 무단히 고통을 준다 든가 파괴한다는 것은 삼가는 것이 합당한 줄 압니다. 더욱이 모든 생명 세계의 면류관이 되는 우리 인생의 생명,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았고 양심과 자유가 있어서 도덕적 생활을 하는 존재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생명의 기업을 이을 인생인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이 다 귀중하지마는 우리 인생의 생명이야말로 얼마나 귀중한가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제 여섯째 계명으로 모든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제 육은『살인하지 말라 하시니라』는 계명입니다. 또 성경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는 말이『네 아우의 피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 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라』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했고 땅위에 의인의 피를 흘린 죄가 너희에게 돌아가되『의인 아벨의 죄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바락야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니라』고 했습니다. 의인이 피를 흘리면 그 개인뿐 아니고 그 세대가 책임을 지고 형벌을 받는다고 하는 뜻인 줄 아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잠깐 이 여섯째 계명인『살인하지 말라 하시니라』는 말씀을 생각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이런 계명을 읽을 때 누가 살인을 하랴?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우리가 생각할 것은 살인 가운데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로 직접 살인이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듯이 우리 한국에도 이와 같은 살인 사건이 점점 늘어가는 모양입니다. 대학생이라는 자가 백주에 은행에 들어가 은행장을 살인합니다. 어린 소녀는 유인해서 그 소녀를 욕보이고 마지막에는 그 소녀를 죽여버리는 이와 같은 비인간적, 야만적 살인 사건이 우리 사회에 점점 늘어가는 것을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간접살인(間接殺人)이 많이 있습니다. 술을 만들고 술을 팔고 술을 권하는 사람은 간접으로 사람 많이 죽이는 사람이올시다. 아편을 제작하고 운반하고 먹이고 파는 사람은 간접으로 살인하는 사람이올시다. 음식점에서 상한 음식, 썩은 음식을 손해 난다고 그냥 파는 사람은 간접으로 살인하는 사람이올시다. 불량한 상품을 만들어서 귀중한 사람의 몸에 합당치 아니한 주사와 약을 쓰게 하는 불량 상품을 만들고 파는 사람은 간접으로 살인하는 사람이올시다. 비위생적으로 살아서 자기의 집 주위를 깨끗하지 않게 하고 그 곳에 여러 가지 병균이 생기게 하여 전염병이 생기고 자기 가족도 죽고 다른 사람에게 전염병이 전염되게 하면 간접으로 살인하는 사람이올시다. 불조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집에 불이 나게 하고 다른 집도 연소되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하게 되면 이것도 간접으로 살인하는 사람이올시다. 운전 수가 부주의함으로써 많은 무고한 생명을 잃는 것을 여러 번 신문에서 봅니다.


간접적으로, 의식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원하는 것도 아니지만, 간접으로 볼 때 이 같은 것은 모두 살인하는 것입니다. 위정자가 정치를 바로 하지 못함으로써 사회가 혼란해질뿐더러 몇 사람만 잘 살 수 있고 대중이 생활난에 빠지고 근본적으로 먹을 것을 넉넉하지마는 분배가 바로 되지 아니하는 까닭에 여러 가지 혼란한 가정이 생기고 그 가운데서 자살이 생기고 이렇게 된다면 간접적으로 살인하는 것입니다. 불의의 사람, 옳지 아니한 정욕, 이와 같은 불의의 사랑, 정욕으로 말미암아서 남의 가정을 파괴하고 여러 가지로 치정 사건이 생기고 자살이 생기고 살인이 생기는 이런 사건이 비일비재한 데, 이 모두가 다 간접으로 살인하는 것입니다. 미신을 믿고 미신을 퍼지게 하여 사람을 해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습니다. 우리는 직접으로 살인하지 아니하지마는 이와 같이 간접으로 내 생활을 조심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생명을 해하기 쉬우므로 이런 모든 점에 대해서 우리가 특별히 주의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셋째는 심리적 혹은 정신적 살인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시기를『옛 사람들이 살인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먼저 심판을 받아야 하느니라』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형제에 대하여 노여워하고 미워하고 마음속에 악한 악의를 품으면 벌써 그 사람은 마음으로 그 사람을 죽인 사람이올시다. 살인했습니다. 어떤 사람은『소리 안 나는 총이 있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합니다. 마음으로 벌써 살인한 사람이올시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 필주(筆誅)라는『붓으로 벤다』는 말이 있습니다. 붓 꼬리를 잘못 놀려서 다른 사람의 생명과 같은 귀한 명예를 훼손시키고 거짓 선전을 해서 그 사람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드는 이런 잘못된 붓을 써서 허위 선전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살인한 사람입니다. 설주(舌誅)라는 말은「혀로 벤다」는 말입니다. 궤혈된 혀, 거짓말, 거짓 선전을 해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깎고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고 심지어 교회를 훼방하는 말을 거짓 되게 전파하는 사람들, 모두는 정신적으로 살인하는 사람이올시다.
제가 바로 지난 주일 어떤 곳에 있는 한 처녀가 누명을 벗지 못해서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살인입니다.
우리가 혀를 조심하지 아니하고 거짓 선전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는 정신적 심리적 살인인 것입니다. 특별히 믿는 사람들은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혹「죽여 버린다」든지「없애 버린다」든지 하는 말은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말이 여러 번 나오다가 사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넷째는 자살도 살인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 자살 사건이 점점 늘어가는 것은 실로 통탄할 일입니다.
자살도 살인이올시다. 성경에 보면 자살한 사람이 네 명 있습니다. 구약에 세 명 신약에 한 명입니다. 구약에는 처음에 좋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그 후에는 죄를 짓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 왕이 불레셋 사람과 싸우다가 패전하고 중상을 당하고 아무래도 자기는 죽게 되었으니까 마지막에 자살했습니다. 버림받은 사울 왕이 자살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히도벨이라는 사람인데 압살놈과 공모해서 다윗에게 반역을 일으켰던 자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다윗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으로 다윗을 없애고자 모략을 베풀었지만 압살놈이 자기 모략을 듣지 않고 딴 사람의 말을 듣고 자기 말이 등용 안 될 때 이미 일이 다 틀린 줄 알고 나귀를 타고 자기 집에 가서 집을 정리하고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반역자 아히도벨이 자살했습니다. 그 다음에 시므리 왕이 자살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가룟 유다 가 그 사람입니다. 자기 주님을 은 삼십 량(30량)에 팔고 그 다음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자살했습니다. 자살도 살인입니다. 내 생명이 네게 속한 것 아닙니다.


내 생명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자살이라는 행동은 하나님도 부인하고 심판과 도덕도 부인하고 모든 것을 부인하는 행동입니다. 마땅히 스스로 죽지마는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대 앞에 설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은 어떤 사회의 문화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가지 전 아프리카에 사는 식인종(食人種)은 사람을 잡아먹기도 했습니다. 그리고서는 그 두개골을 많이 모아서는 장식품을 허리에 차고 다녔습니다. 집에다 많이 쌓아 놓고는 자랑했습니다.『내가 이만큼 많이 잡아먹었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감화를 받기 전에 로마와 헬라의 문명을 보면 옛날 철학과 과학이 제일 문명했다고 하는 헬라 사람들 가운데 스팔타 사람 같은 사람은 어머니가 애기를 낳은 다음에 정부에서 조사 관을 파송하여 조사해서 이 다음에 커서 좋은 군인이 될 것 같으면 그냥 두고 아예 약골로 생겼으면 죽여 버렸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로마의 굉장히 큰 원형 극장을 지어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만 명이 모여서 여러 가지 연극을 구경하는데 살인하는 광경을 많이 구경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기까지 싸웁니다. 사람이 짐승과 싸우다가 짐승에게 잡혀 먹힙니다. 믿는 사람을 잡아다가 사자에게 잡아먹히게 하는 것이 굉장히 구경거리라고 많은 사람이 모여서 이 사람 죽이는 것을 한 오락으로 구경했습니다. 옛날 인도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그 부인은 흔히 남편과 같이 생매장했다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바로 몇 달 전에 어떤 잡지를 보니까 상류 계급 가운데 어떤 여자가 자기 남편이 죽으니까 그 남편을 화장하는데 그 화장은 우리 나라처럼 집 짓고 하는 것이 아니고 밖에서 장작을 쌓아 그 위에다 관을 놓고 화장하는데 그 부인이 인도의 아주 고귀한 전통을 잇기 위해서 화장하는 불에 뛰어들어서 같이 타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기독교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이렇게 생명이 천했습니다. 생명을 천히 여기는 사회일수록 야만적인 사회입니다. 오늘날 공산주의 사회는 이런 의미에서 가장 야만적인 사회입니다. 오늘날 우리 남한에서 여러 살인 사건, 자살 사건, 어린 애기를 버리는 사건이 증가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점점 야만화되어 간다고 하는 증거로써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후에 일어난 정치적 암살 사건을 여러분이 기억합니다. 혹은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김 수 선생 같은 이런 여러분들을 암살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일어난 장 부통령 저격 사건 등 이와 같은 것을 아직까지도 우리 나라에서 정치 운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떠들고 입으로는 무엇을 떠들지만 실상 속에는 아직도 폭력주의를 믿고 테로주의를 믿고 독재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로써 공산주의자보다 조금도 나은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근본 정신은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법과 여론에 의지해서 움직여야 되고 폭력에 의지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개인이든지 어떤 정당이든지 이와 같은 방법으로 권력을 얻으려고 하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정부를 계속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사람이든지, 개인이나 정당을 막론하고 민주주의의 적(敵)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이 사상을 무시하는 주의(主義)나 제도(制度)는 오래 계속되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사상과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망한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패망한 것도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서 공산주의 패망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입니다. 그 가운데서 자연히 패망을 일으키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무기를 바로 쓰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그 무기를 거두 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민족은 과거 사십 년간 일본 사람들에게 무장 해제를 당했습니다. 해방 이후에 다시 무장을 했습니다. 우리가 무장을 했는데 이 무기를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입니다. 이 무기를 가지고 동포를 죽이는 데 그냥 계속해서 쓰겠는지?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무기를 거두실 는 지 모릅니다. 특별히 경관이나 군인이 이 가운데 계시면 하나님께서 무기를 맡긴 것이 얼마나 중요한 책임인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무기는 사람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맡긴 것이지 우리의 생명을 뺏으려고 맡긴 것은 아닙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생명은 가장 귀하고 신성합니다.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주어서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맡은 바 사명 가운데 하나는 이 진리를 우리 동포들로 하여금 생명이 얼마나 존귀하다고 하는 진리를 인정하도록 깨닫게 하는 것이올시다.
(1957년 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