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합리적 예배니라』(롬 12:1)
오늘 아침에 제가 새로운 말씀을 드릴 것은 없습니다. 단순히 성경이 우리에게 권면하는 이 말씀을 다시 하번 생각해서 우리 신앙 생활에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모든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권면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은「그러므로 형제들아」라는 말로써 권면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한 말은 간단한 말이지만 그 배후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一장에서 十一장까지에 기록한 모든 복음의 진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권면하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로마서의 대략을 아시는 분은 짐작하실 줄 믿습니다만.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이방 사람들이나 유대 민족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 한 까닭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나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셔서 죄악 가운데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전 인류를 긍휼히 어기시고 독생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아 만민의 죄를 대속하신 까닭에 누구든지 율법을 행함으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 길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 크신 자비에 의지해서 만세 전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주시고 모든 은혜를
베풀어서 성신의 감동으로 우리를 믿게 하시고 주안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 마음속에 성신을 부어 주셔서 성신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대 강령이요 一-十一장까지에 말한 것입니다.
여기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의 모든 준비를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와 같은 축복을 해 주시므로『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라』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구원을 얻게 되고 그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자비란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그저 은혜를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비를 우리는 받았으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라고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받은 우리에게 권면하지 아니하고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명령하기를 원치 아니하고 간절하게 권면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고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불려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으니 너희가 이것을 어떻게 하겠느냐? 한 것입니다. 여기 권면하는 말씀은『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합리적 예배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은 우리는 마땅히 할 의무를 지는데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 「몸」은 우리의 육신만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몸은 우리의 육신과 영혼 우리 생명 전체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너희들은 생활전체를 하나님 앞에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한 것입니다. 이 바울이 권면의 말 배후에는 죽은 제사와 대조하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알거니와 구약 시대에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짐승을 가지고 와서 자기의 생명 대신에 그 짐승의 생명을 끊어서 그 죽은 짐승을 드리는 말하자면 죽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제사를 반복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 양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한 번 십자가에서 제사를 드린 까닭으로 우리는 이 죽은 제사를 반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마는 우리가 이와 같이 구원받은 것을 감사해서 우리의 생활전체를 하나님의 제단에 산채로 그리는 그런 의무가 있는 것을 우리에게 지적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산 제사는 거룩한 제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 산 제사를 드린다는 것에는 세 가지 사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를 제물은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모든 다른 짐승과 다른 물건에서 구별해서 성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까닭에 거룩하다고 합니다.
우리 생활 전체를 거룩한 산 제사고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은 너희 생활 전체를 온전히 이 세상에서 갈라내어 성별해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라는 그 뜻입니다.
성별의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 거룩한 산 제사란 깨끗하다는 뜻이 포함된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거니와 구약 시대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은 깨끗하고 온전하여야 되었습니다.
흠 있는 짐승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열매나 곡식을 드릴 때에는 첫 열매와 첫 곡식을 드렸습니다. 흠 없는 깨끗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너희 생활 전체를 하나님께 사 제사로 드리라고 하는 의미는 우리가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던지 온전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아서 깨끗한 심령과 깨끗한 생활 전체로써 하나님 앞에 드리는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옛날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은 제물 전체를 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리라는 것은『너희 몸 전체를 드리라』는 뜻입니다.『너희 생활의 전부를 하나님 앞에 제물로 그려서 너희의 내적 생활이나 너희 외적 생활이나 너희 개인적 생활이나, 가정에서나, 사교 생활이나 어느 곳에 가든지 네 생활의 일부분만 하나님께 드리지 말고 네 생활 전부를 드리라』는 뜻이 이 가운데에 포함된 것입니다.
여러분『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은『너희 생활 전체를 이 세상에서 서열하고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너희 생활 전 분야를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생활을 하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요. 하나님은 이러한 거룩한 산 제사를 기뻐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미가서 六장 六-八절에『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燔祭物)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千千)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 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시면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했습니다.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는 어떤 수양의 제사보다도 많은 기름의 제사보다 온전히 행하고 인간을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제사를, 그 생활의 제사를, 그 산 제사의 생활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이것은 너희의 합리적 예배니라』했습니다. 이 예배야말로 가장 이치에 적당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여기 합리적 예배라고 쓴 반면에는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적 예배와 대조해서 하는 말씀인 줄 압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이 나온 것은 오늘 거룩한 날을 당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송도 우리가 드리는 기도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물론 이 예배가 귀합니다. 이 예배를 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기는 예배 가운데 이 예배 외에 다른 예배가 있습니다.
그 예배를 무엇인가 지금 말하는 우리 생활 전체를 하나님께 바쳐서 우리의 생활이 성결(聖潔)되고 깨끗이 되고 모든 사적 생활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그 자체가 곧 예배입니다. 이 예배야말로 이치에 합당한 합리적 예배입니다. 오늘날 혹 어떤 곳에서 되는 일을 보면 믿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며 서로 음해하며 그러면서도 예배를 보겠다고 예배당에 한 시간 나와서는 한편에서 찬송하면 다른 편에서 기도하고 기도하면 찬송하며 이렇게까지 예배당에 나와서 싸움하면서 예배 보려고 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의식적 예배를 의식적 예배 외에 우리의 생활 전체로써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그리고 합리적 예배가 되었을 때 그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일주일에 몇 번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는 것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 전체가 하나님 앞에 예배인 것을 기억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우리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 앞에 받을 만해서 우리 생활 전체가 산 제사와 같은 예배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참된 헌신의 생활을 하라고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권면 합니다.
그 다음 둘째로 이렇게 참된 산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특별히 힘써야 할 특색 네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첫째는 너희는『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온전히 헌신적인 예배 생활을 하는 사람의 첫째 특색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대란 믿지 아니하는 세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요한 一서가 기록한 세상을 가리킨 것입니다.『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찬 이 세대, 이 세상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하는 말씀은 지금 말로 말하면 유행을 따르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의 유행을 따르지 말라, 혹은 동화하지 말라, 이 세대와 화합되어서 동화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은 이 세대의 유행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어느 면으로 생각하면 이 세대야말로 유행만 따르는 시대라 볼 수 있습니다. 적게는 머리를 이렇게 만들고 옷을 어떻게 입는가 하는 데서부터 전 생활 분야에서 유행이 무엇인가 찾아서 유행을 따르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즈음 신문이나 라디오나 대중잡지 같은 것을 보면 이것이 유행이다. 저것이 유행이다 하는 유행 선전하기에 급급합니다. 그래서 뉴욕이나 파리의 유행이 한 달이 못 가서 서울 구리에 퍼집니다. 금년에 어떤 신문에서 어떤 여자가 나일론치마를 안 해 준다고 약 먹고 자살하였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유행 따르기는 매우 힘듭니다.
제가 이번에 갔던 아프리카 캐므런 지방의 북부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북부까지 여행하고 온 사람이 미국 지리 잡지에 글도 쓰고 사진도 냈는데 어떤 나이 많은 여자의 사진이었습니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어떻게 잡아 늘렸는지 작은 바리 만하게 크게 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모습은 사십 년 전에 유행되었던 것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흑인들을 보면 인 묵을 해서 새까맣게 표를 많이 한 것이 있습니다. 왜 하느냐고 하면 유행을 따르는 것입니다.
헌신하는 사람은 이 믿지 않는 시대의 유행을 따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는 너무 유행만 따르다가 점점 파멸의 수령으로 들어갑니다.
남이 술 마시니까 나도 술 마시고 남이 담배 피우니까 나도 담배 피우고 남이 댄스 하니까 나도 댄스하고 남이 속이니까 나도 속이고 남이 협잡하니까 나도 협잡하고 남이 도적질하니까 나도 도적질하고 남이 모략하니까 나도 모략하는 유행만 따라가다가 망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세대의 유행을 따르지 맙시다. 유행은 언제나 변합니다. 유행 가운데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 유행을 따르려거든 좋은 성도의 유행을 따르세요. 믿지 않는 사람의 유행은 따르지 마세요. 이것이 참된 헌신의 생활을 하는 사람의 첫째 특색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대가 믿는 사람을 본받게 되어야 우리 민족과 나라의 살 길이 생깁니다.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의 유행을 따르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세대를 본받지 맙시다.
그리고『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하고 기록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사람은 마음을 새롭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말하는 마음은 심리는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상의 중심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온전히 헌신한 사람은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사랑을 가진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의 인격과 생활 전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좋지 못한 생각을 늘 품고 있는 사람은 인격과 생활이 좋지 못하게 변합니다.『나는 언제나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의 생활 전체가 약해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아무리 난관이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적극적인 신앙을 항상 마음가운데 품고 있는 사람은 자연 적극적인 인물이 되고 승리하게 되고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전체를 형성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온전히 헌신하는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성신의 생각을 가진다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죽는 것이요. 성신의 생각은 사는 것이요. 생명과 평화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성신의 생각은 사랑, 희락, 평화, 인내, 자비, 양성, 충성, 온유(溫柔), 절제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생각 그리고 믿음의 기쁜 생각 이와 같이 소망의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충만히 채워두면 자연히 마음속에서부터 우리의 인격과 생각이 변하게 됩니다. 여기 변화된다고 한 것은 예수께서 변화산상에 올라가서 얼굴이 변화했다고 하는 말과 꼭 같은 말을 썼습니다.
셋째로 이 헌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에 항상 힘씁니다. 여기 보면』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기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보통 세상 사람은 이것이 이로우냐 해로우냐 하는 이해 관계로 판단합니다.
헌신한 사람은 이것이 선이냐 악이냐로 판단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인가? 나를 기쁘게 하지 않고 내 정욕을 기쁘게 하지 않고 내 욕심을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이냐 기쁘게 못할 것이냐로 판단합니다. 헌신한 사람은 이것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인가, 부분적인가, 이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가를 판단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헌신한 사람의 셋째 특색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려서 우리의 생활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합리적 예배가 되도록 하는 생활 태도를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려 면
첫째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둘째는 새로운 생각을 늘 마음에 품어서 내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있게 말들 고
셋째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가 이것을 찾아서 실행해나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이 오늘 아침 여러분에게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一九五六년 一월 二十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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