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같은 내 백성이 치료를 받게 못함은 어찜인고』(렘 8:22)
이 말씀은 애국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탄식이올시다. 길르앗의 유향은 옛날 유대 나라의 유명한 토산품 가운데 하나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대 나라가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수출품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산지인데 거기를 특수한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서 흐르는 진을 받아서 향료를 만든 것입니다. 이 향로는 그 향기도 아름답고 또 상처와 종처(腫處)에 바르는 특효약으로도 유명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읽으면 요셉을 사 가지고 멀리 애굽으로 내려가던 이스라엘 대상들이 애굽으로 가지고 갈 때에 길르앗의 유향도 그 상품 가운데 하나로 가져갔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야곱이 먹을 것이 없어서 아들을 애국에 보내서 식량을 구하려고 할 때에, 그 때의 애굽의 총리대신, 물론 요셉이었지만 요셉인 줄 모른 때, 선물을 보낼 때에, 그 중의 길르앗의 유향이 한 중요한 물품이었던 것입니다. 에스겔 17장을 보면 유대 나라가 두로에 수출하는 수출품 중에도 길르앗의 유향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45장 22절과 51장 8절을 읽어보면 길르앗의 유향이 창상과 모든 피부병에 양약(良藥)이라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유대에는 길르앗의 유향, 즉 좋은 약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 곳에는 유향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길르앗 지방에는 그 약을 어떻게 합제(合劑)하고 그 약을 어떻게 유효하게 사용할 줄 아는 의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 같은 내 백성의 상처는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여기에 예레미야의 탄식이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유대의 상처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사야 1장 五절 이하를 읽으면『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 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 땅은 황무 하였고 너희 성읍 들은 불에 탔고 너희 도시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키었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 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城邑)같이 겨우 남았도다』했습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다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도덕적 영적 상처를 여실히 묘사한 기록입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이 상처가 중하지마는 고침을 받지 못하였습니까? 길르앗의 유향이 없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상처를 싸맬 만한 길르앗의 유향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그들에게는 있었습니다. 의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이사야와 같은 위대한 신앙의 예언자, 예레미야와 같이 눈물로써 호소하는 열렬한 열사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마는 그들은 치료를 받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역대 하 24장 19절에는『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 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듣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레미야 44장 15, 16절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그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고 얼굴을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였음이라』했습니다. 심지어 예레미야 44장에는 이렇게 무리들이 말하였습니다.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가로되『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정녕(丁寧)히 실행하여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이렇게 번제를 그리리라』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자인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자기의 고집대로 우상인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번제를 하늘 여신에게 드리겠다고 고집했던 것입니다.
스가랴 7장 11절로 12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그들이 청종(聽從)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 군의 여호와께로 나왔도다』했습니다. 등을 돌려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같이 강퍅하게 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 나왔도다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 있어도 쓰지 않는 데야 어떻게 효과가 나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의사가 있을지라도 그의 말씀을 듣지 않는 환자에게 어떻게 치료를 줄 수가 있겠습니까?
이 현상은 구약 시대뿐만 아니고 신약 시대도 그러했습니다. 신약 시대도 그야말로 길르앗의 유향이 있었습니다. 길르앗의 산 위의 나무 옆에서 흘러내리는 유향은 이상하게도 갈보리 산상에서 십자가에서 흘러내린 우리 주님의 보혈을 연상하게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과연 길르앗의 유향이올시다. 십자가의 보음에는 향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합니다. 사람의 정신을 상쾌하게 하고 우리의 온 생활을 정화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에는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죄의 상처를 치료하는 권능이 복음 사운데 있습니다. 또 그 때에는 위대한 의사도 계셨습니다. 만병의 의사가 계셨습니다.
선지자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하는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의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사람들도 이 심령의 죄로 받은 상처를 고침 받은 사람은 매우 적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순교자 스데반은 그의 온 정성을 다해서 복음을 외치다가 사도행전 7장 51절 이하를 읽으면 이런 말로 결론을 맺었습니다.『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슬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 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치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너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오셨지마는 그이도 배척하고 그이를 잡아 주고 십자가에 못 박고야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예루살렘을 감남산에서 내려다보시면서 이렇게 탄식했습니다.『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야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했습니다. 가엽게도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주후 70년에 꼭 응하고 말았습니다.
길르앗의 유향이 아무리 좋은 약이라고 할지라도 십자가의 복음이 아무리 기쁜 소식이라고 할지라도 이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효가 있겠습니까? 만병의 의사를 우리가 영접했다 하여도 그의 지도를 받지 않는 우리가 어떻게 그 병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이렇게 하면 그 결과는 멸망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가엽게도 유대 사람은 길르앗의 유향을 배척했습니다. 사도들 몇 사람 이외에는 그리스도를 민족적으로 배척했습니다. 그렇지마는 역사적으로 많은 민족과 국가는 이 유향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많은 세기를 통하여 민족과 국가들이 이 길르앗의 유향을 받고 만병의 의원이 되시는 예수를 받아서 그의 죄의 질병을 치료하고 개인도 구원 얻고 그 국가와 사회도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장인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요긴한 돌이 되었습니다.
옛날 헬라 민족도 이 유향을 받고, 라틴 민족도 이 유향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조상이 되는 민족들, 북편 유럽에서 밀려오는 민족들도, 미개한 가운데 있던 민족들도 이 유향을 받고 그 병을 고쳤습니다. 오늘날에 문명한 여러 나라들도 이 유향을 받고 그 죄의 상처를 치료받습니다. 많은 축복을 개인도 받고, 국가, 사회도 받습니다. 여러분 죄의 상처를 치료하는 길르앗의 유향이 있습니다. 이 유향으로 상처를 고침으로 사회도 국가도 정화되고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어떤 유력한 분이 얼마 전에 미국에 가서 한 일년간 유하면서 이곳 저곳 여행하며 자세히 미국사회를 관찰하였다고 합니다. 늘 마음 가운데 기억하는 것은 어떻게 미국 사람들이 모든 방면에 진보, 발달, 번영하며 자유가 있으며 화평한 특별한 축복을 받는 최대의 원인이 어디 있을까? 알아내고자 힘썼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결론으로 이 나라의 과학, 철학, 산업, 민주주의가 있지마는 이 나라를 이런 나라로 만든 배후에는 무엇보다도 기독교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기가 한국에 나와서는 꼭 신앙 생활을 철저히 하겠다고 결심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인생 생활에는 먹을 쌀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먹을 쌀을 생산하는 농부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병을 치료하는 약이 필요하고 그 약을 쓸 줄 아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민족이 사는 데는 정치나 경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심령의 질병을 고칠 수 있는 길르앗의 유향인 복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것은 단순히 공산당만은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생명을 근본적으로 썩게 하는 죄의 창상이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일전 어떤 신문을 보니까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이 서울 시내에서만 범죄의 건수가 10446건이라고 한 것을 보았습니다. 1만 여건입니다. 매일 천여 건입니다. 이것은 발견되고 체포된 건수만인 줄 압니다. 발견 안 된 모든 건수가 이 서울 장안에 매일 얼마나 일어난다는 것은 아마 짐작할 수 있을 줄 압니다. 심지어 우리 민족의 촉망되는 청년들과 학생들 가운데도 별 소식이 다 들립니다. 얼마 전에는 대학생 강도단이 나타났다고 하더니 또 며칠 전에는 자기와 결혼을 거절하는 여자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기 자신도 쏘았다고 하는 기사가 났습니다. 또 며칠 전에는 육 남매를 가진 유부녀가 허영에 떠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허영(虛榮)적 생활만을 하는 것에 그 남편은 너무 근심한 나머지 그만 비관하고 자살하여 가정이 파탄되었다는 가정의 참보(慘報)가 있었습니다. 이 곳에 무슨 사건, 저곳에 무슨 사건, 이런 사건, 저런 사건, 너무 많이 일어납니다. 옛날에 자랑하던 동방 예의지국은 지금 어디 갔습니까? 이 죄악의 질병은 우리 학원을 위협하고 우리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고 우리의 공장과 회사를 위협하고 우리 단체를 위협하고, 아니 우리 민족, 국가 전체를 위협합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은 앗수르의 군대가 아닙니다. 바벨론과 로마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의 죄가 그들을 멸망시킨 것입니다. 죄는 값이 있고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길르앗의 유향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이 복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도 아무리 길르앗의 유향이 좋은 약이라고 할지라도 이 약을 쓰지 아니하면 어떻게 치료를 받을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주님께서 심령 속 깊이 인간의 속을 썩이는 문둥병 같은 무서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지도를 받지 아니할 때에 어떻게 우리의 병을 고칠 수가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복음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의사가 오늘날 우리와 같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믿지 않고, 진정으로 받지 아니하므로 멸망을 자취하는 일이 있으면 이 얼마나 가석할 일입니까? 오늘 여기 앉은 우리 가운데 죄로 말미암아 상처 입은 심령은 없습니까? 여러분의 심령은 다 깨끗합니까? 여러분의 심령을 속에서 좀먹고 썩이는 이 죄의 질병을 가진 이는 없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께서 길르앗의 유향으로써, 이 십자가의 보혈로써 여러분의 심령을 고쳐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하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받고 여러분의 죄를 회개하고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여러분이 주님께 나아오고 주님의 지도를 받을 때에만 여러분의 심령이 다시 살 수 있는 줄 압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에『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려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신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는『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히 여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했습니다. 이 길르앗의 유향만 우리가 받으면 우리의 죄가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 은 요한 1서 1장 9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깨닫고 온전히 하나님 앞에 자백만 하면 그는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깨끗하게 하여 주시겠다고 여기에 언약하셨습니다.
오늘 이와 같은 축복이 우리 각 사람 마음속에 임재 하기를 바랍니다. 성신의 감화를 소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956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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