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한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신8:1)
가나안 땅을 탐정(探偵)하고 돌아온 열 두 사람들이 모세에게 보고하기를『우리가 그 땅에 가본 즉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고 우리가 가져온 이 실과가 곧 거기서 얻은 실과입니다.』라고 말하며『둘이 메고 온 포도송이를 내놓았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사야 8장 8절에는『임마누엘의 땅』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 62장 4절에는『쁄라』라고 기쁨의 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니엘 8장 9절에는『영화로운 땅』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다 가나안 복지를 가리킨 말씀이올시다. 가나안 땅과 이스라엘 민족은 불가분리(不可分離)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서 아득한 옛날 아브라함이 갈데아우르를 떠났습니다. 이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四十년간 배회(徘徊)하였습니다. 이 곳을 정복하기 위해서 여호수아와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일생을 바쳤고 따라서 이 곳에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이 세워졌고 이 곳에서 여러 선지자들이 배출(輩出)되었고, 또한 이 곳에서 만민의 구주가 되시는 메시아가 나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다시 멸망을 당했지만 거의 2000년 후인 오늘에 와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모여서 다시 나라를 재건설(再建設)하기 위해서 방금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민족과 떠 날래야 떠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 중에 여러 가지 느낀 감사 중에 아마 가장 깊은 감명(感銘)을 준 것은『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삼천리(三千里)반도(半島)야말로 우리 민족의 가나안복지이다』라는 느낌이올시다. 미국을 지나서 대서양을 건너 유럽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알프스를 넘고 지중해를 건너 또한 사하라 사막을 지나서 멀리 아프리카에 가서 그 지방의 상황(狀況)을 살펴보고 혹은 근동(近東)레바논 베이루트에 들려서 백향목으로 덮인 레바논 산을 바라보면서 혹은 비행기 위에서 흰 눈에 덮인 헬몬산을 바라보면서 혹은 파키스탄을 지나고 인도를 지나고 태국 인도지나에 머물고 필리핀과 일본을 지나서 한국에 오는 도중에 제 마음 가운데 깊이 느끼게 된 것은『우리가 사는 삼천리반도야말로 우리 민족의 가나안 복지이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외국의 산천(山川)과 비교해 볼 때 더욱이 우리의 산천이 얼마나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여러 다른 나라를 구경하고 우리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의 산야(山野)를 구경할 때에 우리 나라야말로 문자 그대로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는 느낌을 새로이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미국 같은 나라는 큰 대륙의 나라로 만주나 중국과 별로 차이(差異)가 없습니다. 독일과 불란서 같은 나라도 역시 대륙의 나라로서 별로 그 산천에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는 나라들입니다. 유럽에서 경치가 좋은 나라는 서서와 이태리라고 하는데 그 곳도 우리 한국에 비교하여 별로 나은 점이 없습니다. 비행기에서 본 팔레스틴은 대체로 붉은 산으로 덮인 것뿐이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제네바 같은 도시도 그 천연(天然)의 경치만을 비교한다면 서울의 뒷산인 삼각산 보다 얼마나 나을지 알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도 한국을 코리아(Korea)라고 부르는데 이 코리아란 뜻은 무슨 뜻이냐고 묻습니다. 그 뜻은 산 높고 물 맑은 곳이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어떤 사람들은『당신의 나라는 경치가 좋은 나라인 모양』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뜨거운 물을 마시고 일본 사람들은 뜨거운 차(茶)를 마시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차나 커피를 마시지 않고 흔히 맹물만 마십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주에 가 보세요. 만주에 흐르는 강물 가운데 어느 강물을 마실 수 있겠는가? 일본에 가 보세요. 일본에 흐르는 어느 강물을 마실 수가 있겠는가?
우리 한국은 그야말로 산은 높고 물은 맑아서 어느 골짜기의 물을 마셔도 다른 나라의 사이다보다 낫습니다.
또 아마 세계 어느 나라로 가서 자연의 음악을 들으려고 해도 여름철에 우는 매미 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에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은 특히 좋은 기후로써 혜택을 입는 나라입니다. 우리 한국의 제일 오랜 이름은 조선(朝鮮)이올시다. 조선이란 뜻은 조일(朝日)이 선명하다고, 아침 햇빛이 선명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 한국의 기후를 상징하는 이름인 줄 압니다.
우리 한국의 기후야말로 어떻게 명랑(明朗)한 기후인지 사실 그렇지 못한 외국에 가서 여행을 할 때에 더욱 명랑한 한국의 기후를 사모(思慕)하게 됩니다. 물론 한국에도 여름에 지루한 장마 때가 있지마는 아무리 장마 때라도 소나기가 온 뒤에는 밝은 햇살이 비추는 것이 우리 한국의 기후입니다. 아프리카에는 6개월간 내내 비가 오고 6개월간은 가문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개는 흐려서 언제든지 침울한 느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영국 런던 같은 데 가 보아도 물론 건물들은 우리 서울의 건물 보다 잘 지었고 또 길도 깨끗하다고 하지만 보통으로 안개가 끼어서 늘 우울(憂鬱)한 기분에 싸여 있습니다. 백림이나 파리에 가 볼 것이면 거기도 역시 건물은 우리 나라 보다 낫게 지었다고 하겠지만 비교적 추운 지방이 되어서 춥습니다. 잠깐 여름에 더웠다가 곧 추워집니다. 사실 위도(緯度)를 더듬어 보면 백림이나 파리는 극동(極東)으로 말하면 저 하르빈이나 우라지보스독크와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따뜻한 한국보다는 매우 추운 기후입니다.
우리 한국이 온대(溫帶) 가운데서도 맨 중심 지방이어서 춘하추동(春夏秋冬)사계(四季)가 아주 분명합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꽃피는 따뜻한 봄이 있고 녹음방초(綠陰芳草)가 무성 하는 여름이 있고 달이 밝은 가을이 있고 온 산야(山野)가 백설(白雪)로 덮이는 겨울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여름이고 뜨거운 기후 가운데 사는 아프리카 사람, 인도 사람들을 생각만 하여도 이렇게 춘하추동이 바뀌는 나라에 살던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괴롭게 생각되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비교적 우리 한국은 날이 맑은 것과 비오는 양(量)이 가장 적당합니다. 적당한 때에 비가 내립니다. 여름에 비가 내려서 벼농사 짓기에 적당하고 그러나 어떤 곳에서는 비가 많이 옵니다. 지금 말한 아프리카 지방에는 비가 너무 많이 옵니다. 인도의 칼카타 지방 같은 데는 비가 너무 많이 옵니다.
여기 성지(聖地)로 말할 것 같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지만 비가 너무 적게 옵니다. 또 아라비아나 사막 지대 같은 데는 비가 일년에 몇 번밖에 오지 않으니까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곳에는 비가 오긴 하지만 쓸데없는 시기에 옵니다. 겨울에 혹은 봄에 옵니다. 역시 성지라는 지방이 그렇습니다. 미국이 아주 기후가 좋다고 하지만 겨울과 봄에 비가 오고 여름에 제일 뜨거운 때는 비가 오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 한국이야말로 제일 좋은 기후의 혜택을 입는 나라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에는 풍부한 천연의 자원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38선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지만 압록강과 두만강에서 발전하는 수력 전기는 온 한국을 공업화하고도 남습니다. 또 지하 자원을 보면 금, 은, 동, 철과 석탄을 비롯해서 비광물(非鑛物)에 이르기까지 없는 광물이 별로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 반도는 삼면(三面)이 바다로 되어서 풍부한 어산물(魚産物)의 자원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경지면적(耕地面積)이 7, 8활에 불과해서 좀 유감이라고 하지만 이 경지 면적만 가지고도 잘 농사하면 우리 삼천만 인구의 식량을 능히 자족(自足)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많은 산지(山地)를 삼림(森林)으로 화(化)하고, 과수원으로 화하고, 목장(牧場)으로 화할 것 같으면 그야말로 세계 제일 가는 아주 풍부히 잘 살 수 있는 한국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복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배달 민족에게 삼천리 반도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땅은 좋은 기후의 혜택을 받은 땅이요, 이 땅에는 하나님께서 풍부한 천연(天然)의 자원을 허락하신 땅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삼천리 가나안 복지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이렇게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고 포도송이 하나를 둘러멜 만큼 비옥한 땅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그 땅에서 복을 받게 되기까지는 단순히 가나안 땅에 가까이 가서만은 아닙니다. 가나안 땅에 가까이 갈뿐더러 요단강을 건너고 그 땅을 정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땅에는 가나안 7족이 있는 것입니다. 그 원수 되는 가나안 칠족을 면하고 그 땅을 정복하기 전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 땅에서 축복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우리 삼천리 반도가 아름답고 천연의 자원이 풍부하고 모든 축복이 기대되지만 우리 삼천리 강산 안에도 가나안 칠족과 같은 원수가 있습니다. 아낙 자손과 같은 공산당이 있습니다. 천륜(天倫)도 모르고 인륜(人倫)도 무시하는 공산당이 우리 삼천리 강산의 반을 현재 점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이 땅에서 축복을 받으려면 아낙자손과 같은 이 무리를 섬멸(殲滅)할 수밖에 없는 줄 압니다. 우리 남한에는 가나안 칠족과 같은 이가 없는 줄 압니까? 우리 남한에도 옛날 블레셋 족속과 비슷한 배물주의자(拜物主義者), 물질만 숭배하는 사람들 배로 우상을 삼는 사람들, 작게는 소매치기로 크게는 모리배에 이르기까지 작은 도적, 큰 도적이 온 남한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가나안 복지 안에서 과연 이 나라를 바로 세우고 복을 받는 민족이 되게 하려면 이 블레셋 족속도 섬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한국에는 아직도 아모리 족속과 같은 원수도 있는 줄 압니다. 세속주의자 향락으로만 따라가는 사람들 세상은 어떻게 되든지 자기의 향락만 따라가는 사람들 허랑 방탕 하는 가운데 세월을 보내고 음란한 생활을 일삼으며 혹은 극장으로 혹은 댄스홀로 혹은 주사(酒邪)청루(靑樓)에 생활을 허비하는 아모리 족속과 같은 원수가 이 땅에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삼천리 가나안 복지를 주셨지만 이 땅에 아낙 자손이 그냥 남아 있고, 블레셋 족속이 그냥 남아 있고, 아모리 족속이 그냥 남아 있고, 이 종족을 멸하지 못하는 한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을 거느리고 가나안 7족을 멸망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군인인 우리 믿는 사람들은 복음 전선에 나서서 이 모든 원수를 섬멸해서 복음으로 이 민족을 하나님께로 온전히 인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전 한국 민족이 2천 7백만으로 대략 계산되는데 지금 믿는 사람의 수효는 백만에 불과합니다. 그것 보면 아직도 십 칠 분 지 일 밖에는 이 땅을 점령하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들으니까 여기 군에 있는 군목들 가운데서 어떻든지 우리 군인 가운데 팔 할을 전도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여야겠다는 운동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감격했습니다. 우리 총회에서 오 개년 계획으로 오 백 교회를 설립하자고 하는 것도 이 가나안 땅을 온전히 점령하자는 그 뜻입니다. 군목은 군대 안에서 교목은 학교 안에서 선생 역시 학교 안에서 상점에 있는 사람은 상점 안에서 농촌에 있는 사람은 농촌에서 우리가 어디 있던지 우리 가나안 복지를 좀먹는 이 원수를 멸해서 하나님께로 인도해서 십자군으로서 이 땅을 점령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파사에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파사 나라에 알리마켈이라는 큰 부자이며 큰 농사를 하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이 농부는 큰 농장도 있고 가축도 많고 과수원도 있고 아주 부족한 것이 없이 만족하게 잘 사는 큰 부자 농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에게 한 번은 중 한 사람이 찾아와서 여러 이야기를 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여보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십니까? 본래는 이 우주는 뽀얀 안개뿐이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이 안개를 젓기를 시작했습니다. 안개를 젓는 가운데 불덩어리가 되었고 큰 불 덩어리에서 작은 불덩어리가 생겼는데 이 불덩어리들이 제가끔 돌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그 주위에 안개가 비로 변해서 불덩어리에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이 불덩어리가 식기 시작했습니다. 그 식은 덩어리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사는 지구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 표면은 거의 다 식었지만 속에는 그 때처럼 뜨거운 것이 있어서 이따금 뜨거운 물이 밖으로 나오는데 이런 불이 나와서 빨리 식으면 화강암(花崗岩)과 같은 돌이 되고 천천히 식으면 쇠 같은 것이 되고 좀 더 천천히 식으면 은이 되고 좀더 천천히 식으면 금강석이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금강석이 제일 귀합니다. 밤 한 알만한 금강석만 있으면 당신이 사는 온 군(郡)을 살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마는 주먹 같은 것을 몇 개 얻었다고 하면 파사 나라 전국을 살수 있고 온 세계를 살 수 있습니다.』했습니다. 그 때까지는 농부가 자기 밭이 제일이요 자기가 제일 부자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런 금강석과 같은 보배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까 지금은 농장에 있는 것이 시원찮게 여겨졌습니다. 금강석만 발견하면 지금 보다 더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생각을 하다가 그 다음날 일찍이 중이 사는 그 곳을 찾아가서 당신이 그 금강석 밭이 있다고 하는데 그 금강석은 어디 가야 찾을 수 있습니까? 고 물었습니다. 그 중은 『나도 금강석 밭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전에 듣건 데 큰 두 산의 골짜기를 흘러 내려가는 시냇가에 흰 모래밭이 있다고 하는데 그 모래밭에 가서 찾아보면 금강석이 있다고 합니다.』『그러면 그 큰 두 산과 그 강과 흰 모래밭이 어디 있습니까?』『나는 그것은 모릅니다. 그것은 당신이 찾아보아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농부는「그것을 내가 찾겠다」고 결심하고 자기 집에 돌아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돈을 만들어서 자기 가족들에게는 이삼년간 먹을 것을 남기고는 금강석 밭이 있다는 곳을 찾으려고 먼길을 떠났습니다.
파사는 떠나서 그 서편 토이기 지방을 거쳐서 좀더 내려와 팔레스틴에 이르고 또 서편으로 가서 첵코, 독일, 불란서지방을 지나 몇 해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금강석 밭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서반아까지 갔습니다. 서반아 맨 끝 대서양 해안까지 갔습니다. 옛날에는 서반아 끝에 가면 지구의 마지막이요 그 다음에는 땅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지구 마지막까지 와서도 금강석은 찾지 못하고 그 동안 돈은 다 없어지고 옷도 다 헤어지고 이제는 돌아 갈래야 돌아갈 노비(路費)도 없고 큰 걱정이 났습니다. 마지막에는 서반아 해안에 앉아서 푸른 물결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자기 신세를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히었습니다. 그만큼 애를 썼으나 금강석은 도무지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만 낙심되어서 그 물결에 떨어져서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농부에게서 농장을 산 다른 농부가 있습니다. 이 농부는 그 농장에 대해 만족하고 다른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자기가 사들인 농장을 간수했습니다. 양을 치고 과수원을 잘 가꾸고 이렇게 농사를 하는데 한번은 양을 데리고 자기 농장 가운데 흐르는 개천으로 갔습니다. 그 개천가에 자그만 한 모래밭이 있는데 양들에게 물을 먹이다가 보니까 모래 가운데 이상하게 번쩍 하는 돌이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돌인가 하고 보니 새까만 돌인데 아주 유난히 번쩍번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갔다가 자기 집의 선반 위에 놓고 잊어버렸습니다. 얼마 후에 그 중이 그 집에 찾아왔습니다. 찾아와서 그 집 문을 여니까 번쩍번쩍하는 이상한 빛이 납니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닌 검은 금강석이었습니다.
그 중은 깜짝 놀라면서『아 이 집을 팔고 금강석 찾으려 갔던 사람이 언제 돌아왔느냐』고 하니까 그이 대답하는 말이『그이는 안 돌아왔어요. 이것이 금강석입니까? 그것 다른데서 얻은 것 아니고 우리 농장 개천 모래밭에서 얻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중은『내가 본 금강석은 이런 것이 아니지만 이것은 틀림없이 금강석입니다. 이것 어디서 얻었는지 한번 가 보십시다』하고 그 개천가에 가서 살펴보았습니다. 그 모래 가에 큰돌이 널려 있는데 반 가량이 금강석이었습니다. 이 농부가 아주 그 개천에서 많은 금강석을 얻어서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금강석과 같은 보석을 찾기 위하여 이 곳에 가고 저 곳에 가고 이 나라 저 나라로 가고 사방으로 돌아다닙니다. 금강석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해 보고 직업도 자주 바꿉니다. 여러분 금강석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그 자리에서 충성을 다할 때에 금강석 같은 보배를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 두 탐정 가운데 열 사람은 가나안 땅에 가기가 무서워서 마지막에는 가나안 땅을 악평(惡評)하지 아니 하였습니까? 그들이 가보니까 그 땅은 거민(居民)을 삼키는 곳이요, 또는 아낙 자손들이 있는데 그들과 비교하니까 우리는 메뚜기처럼 보인다 이렇게 악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강산을 악평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 땅은 좁고 척박하고 북편에는 공산당이 있고 남한에는 모리배로 가득 찼고 그러니 한국에서 살수가 있나 하여 갈 수만 있으면 미국에도 가고 미국에 못 가면 일본에라도 가야지 하고 갑니다. 그래서 三十년, 四十년 전에 미국에 공부하러 갔던 사람들이 한국에 안 돌아온 사람도 많습니다. 해방 이후에 미국에 간 사람들도 한국에 안 돌아오려는 사람이 많습니다.『아낙 자손이 많은데 무엇 하러 돌아가느냐?』고 합니다. 심지어 미국에 가려고 밀항하다가 잡히는 사람, 일본 가려고 밀항하다 잡히는 사람, 한국에 살려면 이민을 해야지 하고 말합니다. 이민한다는 말이 신문에 나기만 하면 그저 귀가 솔깃해서「어서 다른 데 가야지」합니다.
여러분 세계 여러 곳을 다 돌아보고 나서 우리가 사는 삼천리반도야말로 금수강산이요, 가나안 복지임을 느낍니다. 우리가 이 나라 이 땅에서 아낙 자손과 같은 공산주의를 없이 하고 배금(拜金) 배물주의자(拜物主義者)를 없애고 세속주의자(世俗主義者)를 없애고 우리 민족을 십자가로 정복해서 우리 민족이 새 민족이 되고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우리가 겨우 서울 거리를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깔고 다니지만 앞으로 문자 그대로 금강석으로 서울 거리를 펼 때가 있을 줄 압니다. 왜? 전 한국이 금강석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풍부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강산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많은 산을 주셨고 많은 나무를 주었지만 찍을 줄만 알고 심을 줄을 모릅니다. 산천의 경개는 아름답지만 마을은 더럽습니다. 누구든지 이 강산에서 과연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마음을 고치고 생활을 고쳐서 이 강산을 바로 간수하고 바로 개척할 것 같으면 이 강산은 가는 곳마다 금강석을 찾을 수 있는 줄 압니다. 우리가 이 삼천리 가나안 복지에서 살며 대대손손(代代孫孫)이 축복을 받을뿐더러 이와 같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사람에게는 이 앞에 영원한 가나안 땅 금강석보다 더 귀하고 많은 황금보다 더 풍부한 축복으로 채워 주실 것이요 영원한 가나안 복지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1956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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