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24) 비극의 치유

새벽지기1 2016. 9. 22. 06:55


복음의 능력으로 근원적 치유해야

 

  
 ▲ 신국원 교수 

고난주간이 지나고 부활주일 예배를 드리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슬픔에 젖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비탄에 빠지다”라는 언론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온 국민이 ‘세월호’ 실종자들의 생환을 위해 안타깝게 기도하는 가운데 전해져 오는 사건의 실상은 우리를 점점 더 참담하게 합니다. 어린 학생들을 놓고 배를 빠져 나온 선원들 때문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시스템 전체가 가라앉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 때문입니다.



인재는 이제 그만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를 보며 대한민국을 “사고왕국”(Kingdom of Accidents)이라고 부른 외신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분노했었는데 시계가 20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입니다. 천명 넘는 대학생들 머리 위로 천정이 무너진 지 두 달 만에 수백 명의 고등학생들이 또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고가 이토록 잦은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주 인도네시아에서 배가 뒤집혀 4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1987년 ‘도나 파즈’라는 여객선이 유조선과 충돌해 4000명이 희생된 일도 있었습니다. 거의 모두 정원을 초과하기 일쑤이고 악천후에 낡은 배로 무리하게 운항하다 벌어지는 참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가 훨씬 더 부끄러운 인재(人災)라는 사실이 너무도 당황스럽습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나라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서 안 될 사고라고 지적합니다.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 안전을 담보해야 할 국가적 제도나 사고 대처 장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이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배신의 문화

한 외신은 승객 구조의 의무를 방기한 선장을 “세월호의 악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구조에 나선 이들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아까운 시간을 잃는 실수를 연발 했습니다.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구조활동을 하는 이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원망이 쏟아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만큼 대처가 미숙하고 허술한 점이 계속 노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에 대해서도 “정부가 열심히 실종자 구조에 나서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불신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총체적 난국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모두 속이 끓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 오늘의 사회 현실을 “불신의 문화”라고 부른 학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신 풍조를 탓하기에 앞서 그 원인이 믿었던 이들의 ‘배신’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번처럼 아름다운 수학여행의 꿈을 악몽으로 만드는 배신 말입니다. 회사는 승객의 안전보다 수익 위주의 경영을 한 것 같습니다. 선장은 평소에도 직무를 유기하고 사고가 나자 승객 구조의 기본 의무마저 방기했습니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배신입니다.


인명존중의 문화

정말 두려운 것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비극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침몰한 것은 ‘대한민국호’였고 거기엔 책임질 ‘선장’이 없다는 한 언론의 탄식은 우리 모두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듭니다. 실제로 지금 우리 국민 모두가 “심리적 재난”을 겪고 있는 중입니다. 속수무책으로 연일 계속되는 참사를 듣다 보니 전국민이 “멘붕”에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꿈을 잃은 것은 학생들만이 아닙니다. 어렵게 쌓아온 국민적 자부심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는 것은 한 두 사람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수준이 아직도 이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사실 앞에 몸도 마음도 끝없이 가라앉습니다.


문화의 수준을 판단할 인류 공통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 일 것입니다. 생명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사회나 제도, 기술은 사탄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막8:36) 가장 귀한 것이 사람의 목숨입니다. 삶이 풍성하게 번성하는 것은 창조주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인 생명을 죽이고 시들게 하는 것은 결코 훌륭한 문화일 수 없습니다.


문화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경제적 풍요나 화려한 겉치레가 아니라 참된 가치와 생명을 중시하는 문화로 돌아서야 합니다. 돈을 최고로 여기고 쾌락을 쫓느라 기본조차 다지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정부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삶을 바로 잡으려는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이번 참사는 절대로 비극으로만 끝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누구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능력을 통해 우리 사회의 슬픔과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합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