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22) 쉼의 문화: 일과 놀이의 균형

새벽지기1 2016. 9. 19. 07:31


온전한 생명의 안식을 회복하세요


  
 ▲ 신국원 교수 

벚꽃이 활짝 핀 지난 주 학교 채플에서 전도서 12장 12~14절을 본문으로 청년의 때에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며 성실히 살라고 설교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는 12절에 더 크게 환호했습니다. 화창한 봄날, 열심히 공부하라는 설교가 반가울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공부와 놀이의 균형이 중요하고 일도 놀이처럼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일과 놀이

네덜란드의 철학자 호이징가는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책에서 일은 놀이의 일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과 놀이가 반대 개념이 아님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의 통찰은 성경적입니다. 일은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주신 특권적 소명입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창조사역에 동참합니다.


일이 고역이 된 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일이 힘들어진 것은 삶의 여건이 나빠지고 무엇보다 본래의 의미와 목적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창조적인 일을 하거나 그것에서 보람을 느낄 때 아무리 힘들어도 놀이처럼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 선조들의 위대한 통찰은 여기서도 빛납니다. 소요리문답 1번처럼 사람의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고역이 아니라 ‘즐거워’함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놀이는 물론이고 쉼 역시 일의 일부입니다. 쉼은 일만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스스로 좌우하려는 성향을 버리고 염려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안식은 단지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과 쉼의 리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참된 안식은 일과 쉼의 균형 잡힌 리듬을 기쁨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쉼은 잠시 휴식이지 영원한 안식이 아닙니다.


일과 고역

일이 고역이 되는 것은 본래의 의미가 상실될 때입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면 그 자체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됩니다. 열심히 일해도 솔로몬의 말처럼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면 그 역시 견딜 수 없습니다. 타락으로 인해 삶의 의미와 목적이 상실된 세상에서 일은 자칫 고통스러운 짐이 되곤 합니다.


너무 일이 좋아 중독이 되는 것 역시 영적 공허함의 증상입니다. 소와 말은 억지로 짐을 집니다. 그러나 자유민주국가에 사는 우리 인간은 대부분 스스로 짐을 집니다. 체면, 명예욕, 자존심, 성취욕 등 모두 자진해서 짊어진 짐입니다. 그래서 불평도 못합니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일수록 그런 성향이 더욱 심합니다. 모두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영적인 수고입니다.


인간은 문화의 일꾼으로 지음 받았으나 일만 하다가 죽는 허망한 존재가 아닙니다. 일을 통해 창조의 역사에 참여할 뿐 아니라 주님과 더불어 안식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타락한 인류는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기 위해 심지어 생존본능을 거슬리기까지 수고하며 몸부림칩니다. 가족과 주변의 화평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건강까지 망치며 일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몸이 피곤하면 쉬면 됩니다. 영혼의 휴식은 어떻게 얻습니까?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릅니다.


건강한 삶의 회복

  
 ▲ 일러스트=강인춘 
 

성실한 노동과 함께 참된 휴식을 누릴 줄 아는 문화가 바른 문화입니다. 일과 놀이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성주의적 일의 문화와 감성주의적 놀이의 문화 사이의 균형을 잃으면 안 됩니다. 수고와 휴식, 일과 놀이의 바른 균형과 리듬 속에서 삶이 조화로운 풍성함의 조건을 갖추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건강한 삶은 육신의 건강과 생명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것과 사회적인 생명과 온전함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생물학적 생명은 생명의 일부일 뿐입니다. 생명에는 사회적, 정신적, 물질적, 정치적, 경제적, 생태학적 그리고 종교적 양상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건강이란 단지 육신적이거나 정신적, 심리적 질병이 없는 것 훨씬 이상을 포함합니다. 그것은 죄와 죽음이 파괴할 수 없는 영생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삶의 번영을 위해 전인적 안식과 샬롬이 필수적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단지 식물이나 동물처럼 생육하며 활동하는 것에서만 의미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의지하고 결단하며 바르고 가치 있는 삶을 통해서 의미를 가집니다. 삶의 진정한 쉼은 영혼의 안식 없이는 불가능 합니다. 문화는 필요와 욕망의 즉시적 영역을 초월하는 은혜에 기초합니다. 여가와 쉼은 ‘정신의 태도요 영혼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의 ‘전적 노동’의 문화는 이를 상실했습니다. 일이 중심이 된 문화는 생명을 파괴합니다. 이러한 병적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가의 바른 의미인 안식의 개념을 되찾아 올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