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21)팩션 문화

새벽지기1 2016. 9. 17. 09:31


왜곡 걸러내는 ‘문화정수기’ 역할 중요


  
 ▲ 신국원 교수 

제목은 <노아>지만 주인공은 요즘 유행어대로 “낯설었습니다.” 노아만 아니라 이야기 전체가 아주 “낯섭니다.” 영화 <노아>는 성경과 달리 방주에 탄 두발가인이 함을 부추겨 아버지를 죽이려 합니다. 환경주의자 노아는 사람보다 짐승을 더 사랑합니다. 인류를 아예 멸절시키려고 손녀를 살해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아예 전면에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할리우드 버전 <노아>는 전형적인 팩션(faction)입니다.



팩션 (Faction)

팩션이란 사실(fact)와 허구(fiction)의 합성어입니다. 영화 <친구>나 드라마 <뿌리깊은나무> 같은 많은 사극영화들이 그 예입니다. <노아>를 만든 애러노프스키 감독은 성경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데 있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 가장 성경적이지 않은 영화”라고 했답니다.


팩션은 실화에 기초하지만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이하는 포스트모던적 예술 기법입니다. 사실과 허구의 벽을 헐거나 넘나들어 혼란스럽습니다. 둘을 뒤섞고 자의적인 해석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철학에서 형이상학적 진리를 부정하는데 씁니다. 사실의 재현(再現)이나 해석이 아니라 해체(解體, deconstruction) 하려는 것입니다. 예술에서는 몰라도 법적 증언이나 과학에서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물론 팩션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노아>가 성경에 충실치 않아 실망스럽고 심지어 화 난 사람도 많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비기독교인과 덜 종교적인 관객을 극장으로 모으는데 더 신경을 썼다”는 감독의 말대로 그들에게 노아 홍수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다면 비판만 할 것도 아닙니다. 불신자가 돈을 내고 성경 이야기를 접하는 일은 영화가 아니면 있을 수 없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영화는 풀러신학교의 존스톤 교수가 주장하듯 “신학의 장(場)”이 될 수 있습니다.


나쁜 팩션

인류가 팩션을 만들어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노아 홍수만 해도 바빌로니아 홍수설화인 <길가메쉬 서사시>로부터 이집트, 중국, 아메리카 인디언에게까지 없는 곳이 없습니다. 물론 모두 성경적 사실이 각종 상상이 가미되고 왜곡되어 만들어진 전설이고 팩션들입니다. 영화 <노아> 역시 할리우드가 만든 현대판 전설이라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 아닙니다.

문화예술이 ‘창조적 해석’을 빌미로 성경을 왜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반기독교적인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표방할 경우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다빈치 코드>나 SBS가 방영한 <신의 길, 인간의 길>같은 프로가 그랬습니다. 특히 강력한 영상을 통해 진실을 왜곡할 우려가 있는 영화의 경우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묵과할 수만은 없습니다.


<노아>는 처음부터 팩션이기를 선언합니다. 이 영화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처럼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성적 장면으로 반발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내용과 거리가 먼 이야기가 많습니다. 특히 홍수 후에도 여전히 인간의 삶을 축복하신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어두운 이야기로 바꾸어 놓은 것은 분명히 문제입니다. 노아를 선지자로 생각하는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과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는 이런 왜곡을 문제 삼아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좋은 팩션

  
 ▲ 일러스트=강인춘 

성경을 주제로 만든 영화들은 때로 생생한 영상을 통해 우리의 이해를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노아>의 경우 사실적 이미지 구현을 위해 실제 방주를 제작하는 등 무려 1591억원의 제작비를 들였답니다. 수만 톤의 물을 다양하게 품어내는 기계장치도 고안했다고 합니다. 이런 장치와 기술을 통해 <노아>는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일본 쓰나미보다 훨씬 더 강렬한 리얼리티를 안겨줍니다. 뿐만 아니라 심하게 왜곡은 되었지만 어둡게 각색된 노아의 이미지엔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인간 악에 대한 감독의 예술적 성찰이 드러난다는 평도 있습니다.



과연 좋은 팩션이 있을 수 있을까요? 미국에서나 한국교회들도 강력히 추천했던 <패션>(Passion of Christ)를 꼽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패션>이야 말로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언어도 아람어를 썼습니다. 하지만 천주교적 관점과 지나친 폭력적 장면에 대한 우려와 비판도 많았습니다. 할리우드 걸작인 <벤허>와 <십계>(1959) 그리고 <왕중왕>에도 영화적 왜곡이 없지 않았습니다.

할리우드는 올해 예수의 생애를 다룬 <선 오브 갓>(Son of God) 외에도 출애굽과 가인 이야기를 내놓는다고 합니다. 이런 영화가 나올 때마다 기대 반 우려 반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메시지가 왜곡되는 경우라도 ‘순교의 각오’를 부르짖으며 상영을 저지하려는 것은 지나칠 뿐 아니라 효과도 별로 없습니다. 성경을 왜곡하는 팩션에 대한 바람직한 대책은 목회자를 비롯해 성숙한 성도들이 이를 분별할 바른 안목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왜곡을 걸러내 문화의 선한 열매를 누리도록 돕는 ‘문화정수기’ 노릇을 해야 합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