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18) 명품과 사치

새벽지기1 2016. 9. 11. 22:32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명품

이기적 욕망으로 영적 결핍 채우려는 자세 버려야


  
 ▲ 신국원 교수 

소위 ‘명품’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20대 여성이 명품에 중독되어 고액 수표를 위조하는가 하면 10억 원이 넘는 공금을 빼돌려 명품 구매에 쓴 간 큰 회사원도 있었습니다. 주부의 과소비로 가정이 깨지는 일도 종종 일어납니다. 본래 명품이란 감탄할 만큼 훌륭한 제품을 말하지만 요즈음엔 사치품의 대명사요 개인과 가정을 파탄시키는 ‘망품’입니다.



명품의 대중화

오늘의 명품은 귀족적 취향의 대중화요,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제트(Jose Ortega y Gasset)의 말처럼 “대중의 반란”일 수 있습니다. 명품이 최고의 장인에 의해 “한 땀 한 땀” 예술품처럼 만들기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명품’들도 다른 제품들처럼 대량생산됩니다. 명품으로 알려진 가방이 3초마다 눈에 띈다 해서 ‘삼초백’이 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브랜드가 명품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데 그나마 이름만 프랑스나 이탈리아제지 대개 중국에서 만들어집니다.


중국에서 양복의 상표를 소매 부분에 붙이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답니다. 입고 있는 옷이 보통 양복이 아니라 명품임을 과시하는 바람이 분 때문이었습니다. 어디서나 명품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품질이 아니라 전시효과입니다.

명품이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래서입니다. 명품의 기본은 고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격표에 0을 몇 개 더 붙여야 더 잘 팔린다는 역설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넘보지 못하게 만들어 차별화와 희소성을 담보하는 전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여 대중화되면 그 즉시 매력을 잃는 것이 명품의 운명입니다.


명품 중독의 폐해

  
 ▲ 일러스트=강인춘 

명품이 낳는 가장 큰 부작용은 과소비입니다. 분수에 넘치는 씀씀이로 파산은 물론 절도와 가정파괴, 심지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일단 명품에 중독되면 쇼핑을 못하면 불안해집니다. 매장에 들어서면 능력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필요도 없는 것을 충동적으로 사는 일을 반복하다 인생을 망치는 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낮은 자아정체성이나 심리적 공허를 명품 구매로 채우려다 벌어지는 일입니다. 상류층에 대한 질투나 박탈감에 ‘일단 지르고’ 보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적어도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무리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남다른 개성과 감각을 뽐내려는 우월감도 한 몫 합니다. 열등의식과 우월감이 번갈아 명품 소비를 부추기는 셈입니다. 거기에 따라 춤을 추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이런 위험은 동양적 체면문화에서 훨씬 높습니다. 과시가 모방을 부르는 문화의 확산은 나라 경제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피땀 흘려 번 외화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외국기업의 배만 불려 놓으며 국가적 경쟁력을 소진시키기 때문입니다. 왜 구한말 믿음의 선조들이 국산품 애용과 근검절약운동에 앞장섰는지를 잊으면 안 되는지 이유가 있습니다.


참된 인품이 명품

모든 중독은 영적 결핍에서 비롯합니다. 명품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잘못된 자세가 문제입니다. 소유욕은 물론이고 고상한 취향도 우상화될 수 있습니다. 명품 중독은 증상일 뿐입니다. 근본 원인은 보다 깊은 곳에 있습니다. 영적 공허와 참된 정체성의 실종이 그것입니다. 명품이 인품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정체성의 확립은 먹고 쓰고 입는 것으로 확보되지 않습니다. 온몸을 수억 원어치 명품으로 치장을 한다고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영광이 들에 핀 풀꽃만 못한 법입니다(마 6:29).


남과의 비교나 이기적이고 허황된 차별화를 꾀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명품으로 자신을 돋보이려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품이며 명품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우리를 구원하려 지불한 값으로 따져도 우리만큼 고가품이 없습니다.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명품이면 그 가격에 부합되는 품격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욕망을 자극해서 돈을 벌기에 급급한 기업이나 상인들에게 속지 않을 분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먹고 쓰고 입는 것들에 대해 바른 관점을 갖추는 것이 우선입니다. 합리적인 소비는 경제를 활성화하지만 허영과 과소비는 개인과 공동체의 파탄을 부릅니다. 낭비는 독이고 죄입니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부스러기를 주어 담으라 하신 예수님의 심령을 따르는 자세를 익혀야 합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