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15) 일등 문화

새벽지기1 2016. 9. 6. 06:55


‘최고’보다 ‘최선’을 칭찬하십니다

일등에 집착하는 잘못된 성공주의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려


  
 ▲ 신국원 교수 

지금 러시아 소치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달 소식이 더디어 전 국민이 조바심을 내고 있습니다. 특히 밴쿠버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선수들의 부진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그들을 외면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올림픽 정신이 ‘참여’라고 하면서도 성적표에 매달리기 쉬운 것이 세상인심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최고뿐 아니라 최선을 다한 사람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올림픽의 참여 정신

금메달이 유력했던 한 선수가 은메달을 따고도 웁니다. 오히려 동메달을 딴 선수는 동료를 껴안고 길길이 뛰며 기뻐합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는 순간입니다. 실제로 은메달보다 동메달을 딴 사람들의 행복감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답니다. 간발의 차이로 우승을 놓친 사람보다는 셋째로라도 메달을 딴 것이 기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타고난 재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피나는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금메달을 딴 이상화나 김연아 선수의 망가진 발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니 칭찬을 받아야 할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 역시 그에 못지않은 피와 땀을 흘렸을 것입니다. 특히 1000분의 1초 차이로 1등과 2등을 가르는 메달 경쟁은 정말 잔혹한 것입니다.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참가하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물론 4년 또는 그보다 훨씬 긴 기간의 혹독한 희생의 대가입니다. 이번 올림픽에 참여한 13개 종목 71명의 선수들 중 극히 소수만이 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올 것입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박수를 받아야 할 이들입니다.


일등만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 선수들이 이번 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을 휩쓸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한 선수를 존경해 마지않는다고 합니다. 단 한 번도 메달을 따지 못했던 선수를 말입니다. 우리 대표단이 입장식 기수로 내세웠던 이규혁 선수가 그 사람입니다. 그는 올림픽에만 6회 연속, 24년간을 달려왔습니다. 그는 진정한 올림피언입니다. 그런 선수를 존경하는 것이 수준 높은 국민입니다. 다행히 우리도 이제는 성숙한 자세로 올림픽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경기가 예상대로 풀리지 않았어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 동메달을 딴 선수를 격려하며 크게 보도하는 것이 그 한 예입니다. 컬링 같이 생소한 비인기 종목에도 관심을 기울여 중계를 하는 것 또한 큰 변화입니다.

최선의 노력이 주는 감동은 금메달보다 크고 진합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여자 핸드볼의 은메달 미담이 그랬습니다. ‘한데볼’이라고 불릴 정도로 비인기 종목이었지만 이를 소재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고 400만 명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꼴찌를 맴도는 스키 점프 선수들 이야기인 <국가대표>는 무려 800만 관객이 성원했습니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한탄하지만 세상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습니다.


승리주의에 대한 반성

  
 ▲ 일러스트=강인춘 

성경에도 최고보다는 최선이 중요함을 일깨우는 가르침이 많습니다. 달란트 비유가 그 대표적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과 똑 같은 칭찬을 받았으니까요. 한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사이에 세 달란트가 아니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을 끼워 넣은 것은 특별한 뜻이 있어서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이의 위치는 중립이 아닙니다. 적음을 불평하자면 그 역시 그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섯 달란트 맡은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그에 부합하는 칭찬을 듣습니다. 결과를 양이 아니라 질로 평가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최고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한 사람을 칭찬하신다는 교훈입니다.


‘승리주의’(triumphalism)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면 무조건 최고가 될 수 있고 돼야만 한다는 주장을 말합니다. 올림픽에서라면 금메달을 따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할 겁니다. 교계 일각에서 유행하는 ‘고지론’(高地論)도 비슷합니다. 사회의 높은 곳을 점령해야 전도를 비롯한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자칫 ‘일등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부추길 수 있는 잘못된 성공주의의 일종입니다. 올림픽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메달의 색깔이 아닙니다. 최고가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는 이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는 이유를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