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17) 자살 방조 문화

새벽지기1 2016. 9. 9. 12:52


벼랑 끝 이웃에 소망을 심어야

섣부른 판단과 정죄는 위험…사회문화적 환경 조성 적극적으로


  
 ▲ 신국원 교수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결단을 했겠습니까? 지난 주 한 가족의 세 모녀가 생활고를 못 이겨 번개탄을 피우고 세상을 등졌습니다.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쓴 봉투에 집세와 공과금을 집주인에게 남겼다는 부분입니다. 남편이 죽으며 남긴 빚에다 딸의 질병으로 힘들게 살면서도 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썼답니다. 이렇게 마음이 착하고 자존심 있는 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자살은 죄

웃음이나 언어는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합니다. 죽음을 스스로 택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도 인간만이 합니다. 그래서 자살은 분명히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도록 선물로 주신 창조주의 은총에 배치되는 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복잡해진 문화 환경은 때때로 사람들을 자살로 몰고 가거나 심지어 조장하기조차 합니다.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에 깔려 있는 죽음의 미학이 그 한 예입니다. 체면이 지배하는 문화에서 가끔 일어나는 바, 가정이나 조직의 붕괴를 막으려고 “모든 것을 내가 지고 간다”는 경우가 또 다른 예입니다. 자살을 마치 컴퓨터나 전자기기가 오작동을 하면 껐다 켜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리셋 증후군(Reset Effect)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유명인이 자살하면 줄지어 모방이 일어나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는 자살률을 갑절로 올려놓기도 합니다.


창조주께서 풍성하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주신(창 1:28)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문화는 결코 옳지 않습니다. 특히 자살은 가롯 유다의 경우에서처럼 극한적 인본주의의 발로입니다. 자살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살 소망을 주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살은 그리스도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죄입니다.


자살의 사회문화적 원인

문제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자살을 둘러싼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신학적 원칙만으론 대처하기 충분하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정신착란처럼 병적 원인에 의한 경우를 자살이라고 단정해야 할지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극한의 생활고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자살을 탈출구로 삼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섣부르게 판단이나 정죄하기 힘든 것은 이런 경우 자살을 단지 개인의 의지박약과 같은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자살에 미치는 사회문화적 영향이 커져가는 사회에선 이를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에 부합하는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자살에 사회문화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40대의 자살률이 21%로 가장 높고 그 중에서도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이상 높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입시 실패나 시험성적이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 줄지어 자살하는 아이들만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특히 세상의 근심걱정 없이 뛰놀아야 할 초등학생이 공부 스트레스나 실패의 압박 때문에 삶을 버리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자살의 방지

  
 ▲ 일러스트=강인춘 

결국 자살의 근본 원인은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사는 것이 행복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와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윤택해졌는데도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이 자살률을 높이는 근본 원인입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처럼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조차 희망을 품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특히 교회의 책임이 큽니다. 현대사회에선 구제나 사회복지에서 국가의 역할이 교회를 포함한 다른 어떤 사회 기구보다 크고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자살문제에 대해서는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살 방지 대책을 위한 입법을 하고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삶의 소망을 심어주는 일입니다.


한강다리 난간에 설치한 따듯한 격려의 말들이 많은 사람을 살린다고 합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는 이들의 위로와 보살핌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주변의 벼랑 끝에 서있는 이웃들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을 존귀하게 생각하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힘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게 돕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만드는 일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