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 (14)영성의 시대

새벽지기1 2016. 9. 4. 21:05


참된 영적 분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영혼의 갈망 채워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 회복 뿐


  
 ▲ 신국원 교수 

< 마케팅 3.0>라는 책으로 유명한 필립 코틀러는 “소비자 영혼에 호소”를 주장합니다. 마케팅 1.0은 생각과 이성을 설득하는 방식입니다. 디자인이나 차별성을 강조해 감성과 느낌을 자극하는 것이 마케팅 2.0입니다. 오늘의 기업은 지성과 감성뿐 아니라 영혼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경영학이 기독교의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장일까요?



영성의 귀환

지난 주말 <경영의 영성>(spirituality in management)을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신학이 아니라 경영학회였습니다. 오늘날 ‘영혼’이며 ‘영성’은 신학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경영학처럼 세속적인 학문도 ‘영성’에 관심을 높습니다. 영성의 귀환이 논제가 아니라 실제입니다.

얼마 전까지도 영성은 학문에서 금기어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 문화 전반에 영성 담론이 대유행입니다. 이것은 그간 이성의 지배에 대한 반동입니다. 기술문명에 지칠수록 반작용은 드셉니다. 한계에 달한 문화가 감성과 영성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몸부림입니다.


‘초월과 영성에 대한 불신을 넘어 아예 감지 불능에 빠져’ 버린 시대라는 엘리오트의 한탄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닙니다. 세속화로 청소된 집에 일곱 귀신이 떼지어 돌아온 중입니다. 오늘의 세계는 거라사 지방 ‘군대 귀신’들린 모양새입니다. 얼마나 많으면 군대라고 했을까요! “새가, 새가 날아든다.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는 <새타령>처럼 온갖 잡된 영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참된 영성

성경은 영성을 물질과 대립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물질세계를 선하게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고 예배 때마다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고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영혼만 아니라 물질세계도 온전케 구원하실 날을 소망합니다. 윌리암 템플의 말처럼 기독교는 ‘가장 물질적 종교’일 수 있습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알프스 산자락에 라브리를 세워 ‘이성으로부터 도피’하던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참된 영성을 가르쳤습니다. 참된 영성이란 물질을 탈피하거나 말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바른 영성이라고 했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 ‘생령’이 되게 합니다. 죄로 죽은 영혼을 성령이 새롭게 합니다. 에스겔의 해골골짜기처럼 바싹 마른 문화가 영성에 갈급해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령은 물질을 변화시키고 온전하게 완성합니다.


오웬의 말처럼 죽여야 할 것은 죄이지 몸이 아닙니다. 영성은 경건한 삶이지 탈속(脫俗)이 아닙니다. 영성을 뭔가 이상하고 야릇한 신비나 이교적 뉴에이지와 연관 지울 필요는 없습니다. 신비체험과 ‘피정(避靜)’을 떠올리고 수련회나 금식성회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의 영성이 중요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하는 것이 영적인 것입니다. 참된 영성은 삶의 가장 깊은 차원이요 궁극적 관심이 향하는 곳에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

  
 ▲ 일러스트=강인춘 

영성의 유행은 불교승려들의 베스트셀러 붐에서도 감지됩니다. 천주교의 영성운동도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개신교 일각에서도 ‘레노바레’ 같은 영성운동이 유행합니다. 하지만 영성의 과잉은 조심스럽습니다. 이성을 피해 감성에 호소하는 것은 여우를 피하다 호랑이를 만나는 격입니다. 하지만 호랑이 피하다 귀신을 만난다면 더욱 무서운 일이겠습니다. 온갖 잡스러운 영이 춤추는 시대일수록 영적 분별력이 요청됩니다.



사도요한은 영들을 분별하라고 했습니다(요일 4:1). 바울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할 것이라 강조합니다(롬 12:2). 하지만 기업도 영혼에 호소하는데 교회가 물질주의에 빠져 건강과 부강의 복만 외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영성을 회복하고 영적 분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 문화를 살리고 변화시키기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물질에 지친 문화가 영성을 고대하는 것은 단순한 반동이 아닙니다. 참된 영성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는 영혼의 몸부림입니다. 그 갈망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뿐입니다. 결코 마케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종교심리학이 강조하는 공감, 사랑, 용서, 배려, 책임, 조화가 채워줄 수 없습니다. 세상이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처럼 영성에 목말라 합니다. 무엇이 진정한 영성인지를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교회에 있습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