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26) 문화의 정수기 운동

새벽지기1 2016. 9. 26. 05:57

가정의 ‘문화 필터’는 깨끗합니까?


  
 ▲ 신국원 교수 

‘문화정수기 운동’이라는 것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사람이 없듯이 문화도 걸러야 한다는 것에 착안한 시민운동이었습니다. 가정으로 문화를 배달하는 텔레비전이며 인터넷과 스마트폰에도 정수기를 달아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운동에 대한 설명회나 강의가 끝나면 간혹 이런 질문이 하는 부모님들이 있었습니다. “그 문화정수기 어디서 팔지요?”



문화와 환경오염

일상에서 각종 매체들을 통해 접하는 대중문화의 어지러운 현실은 환경오염과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자연히 이에 대한 비평은 환경을 정화하는 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문화비평은 꼭 전문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평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관객들 사이에 퍼져나가는 ‘입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문화비평은 부모님과 교사 그리고 목회자처럼 책임 있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들이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오늘의 문화현실은 고도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상식적 비판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문제는 대개 직관적 판단에 따라 한다는데 있습니다. 50년 전에 포르노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보면 안다”고 말했다 큰코다친 미국 대법원 판사 포터 스튜어트가 좋은 예입니다. 그는 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지금까지 대중문화 연구자들에게 놀림감이 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대중문화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문화에 오락적이며 퇴폐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대중문화의 본질과 문제점에도 동의할 것이라는 생각은 소박한 오해일 뿐입니다. 상식은 사회적 판단의 중요한 기초입니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워낙 다양해 거기에 호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무엇이건 의심하려는 사람에겐 상식이란 독단의 허울로 비칠 뿐입니다.


무지와 무관심의 함정

그런 반발로 인해서나 대중문화를 가볍게 생각해 비판을 피하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대중문화를 진지하게 생각하기보다는 가볍게 즐겨야 한다는 주장도 늘고 있습니다. 남들이 즐겁게 노는데 심술궂은 훼방꾼 노릇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힐문합니다. 지도자는 늘 구태의연한 도덕타령을 해야 하느냐고 불평하거나 예술을 이해 못하는 야만이라고 나무라기도 합니다.


다른 편에서는 오늘날 대중문화를 비판하는 것은 시대에 뒤진 것으로 간주될 뿐이라며 몸을 사립니다. 그런 비판은 개인의 책임을 대중문화에 전가하는 것이며, 공연한 소란을 일으킬 뿐 실질적 유익이 없다고도 주장합니다. 세상과의 대화와 만남을 위해서 그것에 참여도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아주 빗나간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대중문화를 깊이 있게 반성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비판도 옹호도 아닌 무관심입니다. 대중문화의 문제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물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어차피 자신이 영화나 가요와 같은 대중예술을 접하는 정도가 적거나 부정적이기 때문에 영향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세는 더 위험스러울 수 있습니다. 영향을 안받는다고 생각할 경우, 방비하지 않아 오히려 영향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문화 정수기의 필요성

  
 ▲ 일러스트=강인춘 

‘문화시대’라고 불리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모두가 대중문화에 젖어 살고 있습니다. 수도도 나오지 않는 달동네 움막에도 텔레비전이 정보와 오락의 창문 역할을 합니다. 삶이 고달프고 달리 위로를 받을 방법이 없을수록 대중문화는 가깝고 손쉽습니다. 대중문화는 바로 이 점에 있어서 흔히 사치나 여유의 표현으로 여겨지는 고급문화와 다릅니다. 대중문화는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일상입니다. 그것은 삶 속 어디에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대중문화는 오락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삶의 비전을 제시하여 생각과 감정을 주무르고 의식주 전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에 대해 속수무책인 것은 현실에 대한 영향력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오늘날 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대중문화가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 결핍과 영향력의 부재는 다음 세대와의 소통의 단절과 문화 전통의 소실을 초래합니다.


누구도 대중문화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방심해도 괜찮을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몰이해와 편견에 찬 태도는 다른 입장이나 세대와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원인이 되곤 합니다. 문화정수기를 작동하게 하는 것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합력하여 계속 개발해나가야 하는 작업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우리 집 문화정수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한 가정의 회복이 대중문화에 대한 해악을 걸러내는 최고의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