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28) 가족의 조건

새벽지기1 2016. 9. 28. 12:50

가족에게 ‘신앙의 길’을 보여주세요

 

  
 ▲ 신국원 교수 

날씨가 화창해지는 5월이 되면 곳곳에서 새끼를 낳아 돌보는 동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캐나다에서 새끼들을 품고 있던 거위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어쩌다 사람들이 다가오면 사납게 공격하며 새끼를 보호하려 애쓰는 것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은 새끼들을 길어야 몇 달 이상은 돌보지 않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어른이 되기까지 십 수 년을 돌본 후에도 평생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님들의 수고에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자식 사랑과 효도

문화와 사회의 기초인 가족은 부모의 사랑과 그것을 감사해 부모를 존경하며 효도하는 자녀로 이루어집니다. 그 누구도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고, 훌륭하게 자란 이일수록 진 빚이 많은 법이니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에 아멘 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효도는 강요하거나 의무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간의 사랑은 모든 문화의 보편적 기초 조건입니다. 자식 사랑에는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제 살이라도 베어 먹이려는 것이 부모님들의 공통된 심정입니다. 효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손가락을 깨물어 어머니를 살리고 아버지 병에 좋다는 개구리를 잡으러 눈밭을 헤맸다는 효자 미담에도 의무가 아니라 사랑이 깔려있습니다. 이런 사랑과 효성이 가족의 기초요 조건입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은 자식 사랑이나 효도의 미담의 차원을 뛰어넘는 가족의 조건을 알게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한 사사 시대에 이방 땅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고 모압 며느리들과 살던 나오미 가족의 일화입니다. 성경학자들이 이 이야기를 성경과 모든 문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애의 정수라고 불리는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헤세드의 사랑

젊디 젊은 과부가 아무런 소망이 없는 노시모를 보살피는 것은 그 자체로도 미담입니다. 고향을 버리고 자신을 따라 이스라엘로 가겠다는 며느리를 자신을 위해 붙잡지 않고 그의 장래와 행복을 생각해 돌려보내려는 나오미의 모습 역시 감동적입니다. 하지만 룻과 나오미를 가족으로 묶어준 것은 내리사랑과 어른 공경보다 훨씬 깊은 무엇이 있었습니다.


룻기에서는 그것을 ‘선대(善待)’라고 부릅니다. ‘선대’의 히브리 원어는 헤세드로 보통 은혜나 은총 또는 신실한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헤세드의 원천은 물론 죄와 허물로 죽을 우리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의인으로 여기시고 양자 삼아 주님의 아들과 딸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룻과 나오미를 진정한 가족이 되게 하는 조건은 서로를 측은히 여겨 선하게 대하는 태도인 헤세드였습니다.


헤세드의 반대는 학대(虐待)입니다. 오늘날 풍요 속에서도 많은 가족이 학대로 깨어지는 것과 달리 나오미와 룻은 극한의 상황에서 선대로 가족을 이뤘습니다. 룻은 처절한 고난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나오미에게서 자신이 섬겨온 우상에서 보지 못하는 생명의 길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룻은 나오미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을 자신의 가족으로 택하는 고백을 합니다. 이런 고백이 가정의 신앙전통을 잇는 원천입니다.


신앙의 가족

  
 ▲ 일러스트=강인춘 

믿는 부모 자식 간에도 사랑과 존경이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통된 신앙입니다. 룻의 고백은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 1:16) 신앙의 부모로서 자녀에게서 이보다 더 귀한 고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중국고사에도 인생의 최대의 행복은 장수, 부귀, 영화가 아니라 자식에게 길을 보여주고 자기 힘으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라 했습니다. 많은 부모가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해주고도 자녀의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오미는 쓰라린 인생이었으나 룻과 같은 며느리를 통해 언약의 가족을 이어가는 복을 누렸습니다.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는 여기서 무엇이 신앙의 가족을 이루게 하는가 하는 교훈을 줍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가족을 통해 이어지는 언약의 은총을 믿습니다. 유아세례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복을 아이들에게 주실 것을 믿는 언약식입니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아이와 함께 기도”할 것을 서약합니다. 기도만 아니라 교육을 합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로 시작하는 소요리문답이 그것입니다. 가정을 신앙으로 하나되게 하는 것이 가정 폭력과 학대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 사회와 문화를 바꿀 해법입니다. 그것은 또한 명목적 신앙으로 침체되어가는 교회를 부흥케 할 기초입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