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27) 통신 천국의 명암

새벽지기1 2016. 9. 27. 07:37

꺼져있는 소통을 다시 연결하세요


  
 ▲ 신국원 교수 

이른 아침 본의 아니게 화장실 옆 칸에서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를 듣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별 것 아닌 내용으로 긴 통화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통화는 결국 이렇게 끝나더군요. “야, 다른 통화 들어온다 끊어. 내 금방 다시 전화 할께.”


지금 우리는 통신 과잉 사회에 삽니다. 전화나 통신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과거보다 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역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광기 어린 기술발전

현대사회를 휩쓸고 있는 광기 둘이 있습니다. 통신기술에 대한 열광과 광우병입니다. 둘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둘 다 획기적인 기술의 산물이지만 파괴적인 부작용이 크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예상 밖에 빨리 넓게 실용화되어 문제를 키웠다는 점도 같습니다. 또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약하다는 점까지 비슷합니다.


광우병은 소에게 소의 내장이나 뼈를 사료로 먹여서 생긴 병입니다. 서양인들은 소의 내장이나 뼈를 잘 먹지 않습니다. 따라서 골칫거리 부산물을 다시 소에게 먹이는 방법은 아마도 획기적인 축산기술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의 원리를 거슬린 이 기술은 결국 유럽의 축산업을 황폐화시켰으며 인류 건강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 왔습니다.

첨단 통신기술의 문제도 그와 흡사합니다. 첨단통신의 기반인 인터넷 웹은 본래 핵전쟁으로 인해 통신망이 한꺼번에 두절될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이 기술의 핵심은 통신미디어를 그물망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술로 전세계의 모든 컴퓨터가 하나로 얽히면서 누구라도 방송국이나 신문사와 같은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첨단통신의 과잉
 
꿈같은 기술이지만 그것이 성과 폭력으로 얼룩지고 상업적으로 악용될 때의 폐해에 대한 대책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결과 첨단통신기술은 전세계적인 악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첨단통신기술로 유포되는 불건전 정보는 차단이나 검열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더 큰 문제는 삶을 첨단기술에 의존하는 정도가 클수록 우리 삶은 더욱 취약하게 된다는데 있습니다.

얼마 전 한 통신회사의 서비스에 문제가 생겨 엄청난 혼란과 불편에 시달린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응급 호출이 안돼 환자들이 위험에 빠지고 전화도 없이 새벽까지 집에 안 들어오는 딸 때문에 부모들은 가슴을 졸이기도 했답니다.


광우병과 첨단통신의 문제는 둘 다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는 기술을 성급히 실용화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런 사태는 윤리적 반성에 근거하지 않는 모든 기술은 결국 불행을 부른다는 사실의 한 예에 불과합니다.

첨단통신에 있어서 앞서가는 것은 국가경쟁력에 중요합니다. 하지만 전자통신과 정보산업을 키워만 놓으면 국제 경쟁력이 생긴다는 생각은 미신일 뿐입니다. 식생활의 서구화에 맞춰 축산업을 장려했다 우리나라도 광우병의 파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처럼, 정보화를 적극 추진한 부작용이 우리 사회에도 문제의 근본이 되고 있습니다.


영적 소통의 필요

  
 ▲ 일러스트=강인춘 

첨단통신기술 자체를 반대하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도 그것을 어떻게 얼마나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지에 대한 반성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첨단통신기술과 담쌓고 사는 것으로 유명한 강연자가 언제까지 그럴 작정인지를 묻는 청중에게 던진 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옥불이 얼어붙기까지 이메일을 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그가 여전히 이메일을 안 쓰고 SNS도 안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는 스마트폰을 비롯해서 카톡이나 페이스북을 사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사실 그럴 여유가 도저히 없습니다. 이메일 답하고 전화받기도 벅차니까요.

첨단통신기술의 사용이 급증하고 있는데도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오히려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이 고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줄 이가 있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통신에 할애하지만 정작 신경을 써야 할 소통은 꺼져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소통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격적 소통이 빠진 통신은 오히려 우리를 외롭게 만듭니다.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첨단통신기술을 활용하느라 바빠서 정말 필요한 영적 소통이 끊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홀로 광야에서 양들을 돌보면서도 하나님과 소통하며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했던 다윗을 생각해봅니다. 삶의 진정한 위로와 평안은 창조주와의 소통하는 이만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닐까요?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