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국원교수

[기독교문화 변혁, 핵심 읽기](29) 선거문화

새벽지기1 2016. 9. 30. 13:16

선거는 하나님 통치 실행하는 기회


  
 ▲ 신국원 교수 

선거 구호만큼 시대상황을 잘 반영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 옛날엔 “배고파 못살겠다 죽기 전에 갈아 치자”가 압도적이었습니다. 그 후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가 대세였고요. 독재타도와 민주화가 뒤를 이었습니다. 지금은 배고픔이 아니라 배 아픈 것이 문제입니다. 불평등 때문에 평안이 없다면 “주린 이에겐 빵을 주시고 배부른 자는 공의에 굶주리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구호여야 합니다.



선거의 의미

선거는 민주주의의 유일한 리더 선출방식은 아닙니다. 고대민주주의의 본고장인 아테네에서도 행정관은 제비로 뽑았다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제사장 선출과 땅 분배를, 초대교회는 가롯 유다대신 맛디아를 제비로 뽑았습니다.(잠 16:33) 미국에선 재판의 배심원을 추첨으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공직자를 뽑을 때 선거가 보편화되었습니다. 선거가 상대적으로 결점이 적은 리더 선출방식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독재와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간의 여러 사람의 노력을 통해 선거의 자유가 보장되고 공명성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후보에 대한 검증장치도 많이 개선되고요. 부재자투표와 사전선거제 등 선거의 시간과 공간의 확대를 통해 참여를 높이는 제도도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관심이나 잘못된 선택으로 부패한 정치인이 당선된다면 유권자들의 책임이 큽니다.

물론 선거가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해도 완벽하게 민의를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이들이 선거가 끝나면 박탈감에 시달립니다. 자신이 뽑은 후보가 늘 낙선을 한다고 느끼기 때문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후보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도상의 문제도 있지만 자기 선택에 대한 탄식이니 남 탓도 못하고 속앓이를 합니다.


타락한 선거

한국의 정치는 올림픽 금메달 숫자나 K-Pop, 자동차와 스마트폰에 비해 여전히 후진적입니다. 문제는 잘못된 선거에서 비롯됩니다. 여전히 흑색선전, 여론 조작, 동원, 조직과 금권, 권모술수 같은 노골적인 정치공작이 난무합니다. 정책 대신 혈연과 지연, 학연에 호소하는 분파주의가 판을 칩니다. 전혀 실현 불가능한 공약 남발도 다반사입니다.


선거를 이념 대립구도로 몰고 가는 구태도 문제입니다. 저마다 자신만이 국가와 사회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외쳐댑니다. 그것도 상대 후보로부터 말입니다. 이념적 진보나 무조건적 보수 둘 다 문제입니다. 지난 십여 년간 우리 정치는 이기적 보수와 무모한 진보의 소모적 전면전으로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일부 종교인들까지 나서 거들다 보니 종교간 갈등까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교회가 세속 정치권력을 장악하려 할 경우 결국 다른 종교도 뛰어들게 될 것입니다.


어떤 직책에 후보가 7~8명씩 난립하면 누구를 뽑아야 할지 결정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정책 대결이 아니라 상대방 흠집 내려는 격렬한 비방전이 일어날 때는 더욱 판단이 힘들어집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펴 차선의 후보라도 찾아 투표를 해야 합니다. 가장 위험한 선택은 기권하는 것입니다. 무관심이나 냉소주의는 선거를 망치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선거와 하나님의 주권

  
 ▲ 일러스트=강인춘 
 

인본주의적 민주주의에서 완전히 결여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사상입니다. 후보들은 막바지에는 ‘수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말로 최선을 다했으니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말과는 달리 후보들 중에는 민심을 천심으로 존중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결국 투표자가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열 번 기도하고 한번 투표하는 자세로 심사숙고 해 하나님의 주권이 선거를 통해 나타나도록 힘써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후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확장 즉 정의와 평화를 조금이라도 확장하는 일을 해 줄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당신들의 천국”을 약속하고는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 이익보다는 전체의 유익을 가져올 사람, 특히 약하고 힘없는 편에 서서 일해 줄 사람을 선출해야 합니다.


선택이 어렵다고 손바닥에 침을 튀겨 고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이신 기준이 있으니까요. 하나님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원하십니다.(렘 9:24)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단지 싸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제와 선거는 하나님의 통치를 실행하는 기회입니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최선의 선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좌우에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국원 교수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