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스토트

존스토트의 성령론

새벽지기1 2016. 7. 16. 11:17


1.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는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복음주의자로 위대한 학자인 동시에 설교가이다. 또한 그는 ‘기독교의 기본진리’, ‘그리스도의 십자가’,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로마서 강해’, ‘현대사회 문제와 기독교적 답변’ 등 수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그는 복음주의 운동의 대반전으로 평가받는 1974년 로잔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의 로잔언약의 입안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또 그는 영국 런던에 있는 올 소울즈 교회(All Souls Church)의 교구목사로 섬기면서 강력하고 혁신적인 목회사역을 감당했으며, 런던현대기독교연구소(LICC) 소장을 지내면서 국제복음주의학생회(IFES) 등에서 폭넓게 활동해 왔다.

존 스토트의 성령론은 한 마디로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며 이후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정통적인 개혁주의 성령론에 가깝다. 이러한 관점의 성령론을 주장한 외국의 신학자들로는 찰스 핫지(Charles Hodge), 워필드(B. B. Warfield),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iper), 개핀(Richard B. Gaffin) 등이 있으며, 국내에서는 박형룡이 ‘신학지남’을 통해 처음 이런 입장을 펼쳤고, 신성종과 김해연 등을 통해서 잇달아 소개되기 시작했다.

스토트는 그의 저서 ‘성령세례와 충만’에서 성경의 긍정적인 진리를 더 분명히 밝혀 그리스도의 풍성한 삶을 누리며, 성령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은사를 활용해야 하는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해 주고 있다.

2. 기본적인 접근원리


존 스토트는 성령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접근원리들을 제시한다.

“첫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공통된 소원과 의무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온전한 목적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성경에서 이 하나님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

셋째,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목적은 설명하는 부분에서보다 교훈하는 부분에서 우선적으로 찾아야 한다.

넷째,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하나님의 목적을 배우려고 하는 우리의 동기는 학문적이거나 논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며 개인적이어야 한다.”

위의 원리는 성령론에 대한 이해 역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성경을 기반으로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함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 원리의 경우 부연설명에서 그 목적을 사도행전의 설화체 본문에서보다 주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설교나 글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신약성경이 묘사하는 행습이나 경험이 아닌 분명한 가르침이 주어진 부분으로부터 우리의 믿음과 표준을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도행전 역시 성경의 일부이므로 교리적으로 배제될 수 없다는 주장을 통해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려 했던 마틴 로이드 존스의 입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 성령의 약속(성령세례)


먼저 그는 중생이 곧 성령의 선물임을 분명히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성령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거듭남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거듭남은 성령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요 3:3~8). 또한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는(롬 8:15~16)” 말씀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롬 8:9)”라는 바울의 확언이 이것을 증명한다.

문제는 성령의 선물이 곧 성령의 세례와 동일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오순절 운동은 성령의 선물 곧 중생과 성령세례가 다르다고 보며 구원을 받은 신자가 후에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반면에 존 스토트는 중생은 곧 성령세례이며, 따라서 구원과 성령세례는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임을 주장한다.

4. 성령의 은사들


스토트는 성령의 충만이 삶에서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다면,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사용되도록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주어진다고 말한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교회에 대해서 쓸 때, 종종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대조시킨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성령사역의 결과다. 교회는 하나인데 그 이유는 한 성령이 모든 신자 안에서 거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다양한데 그 이유는 한 성령이 모든 신자에게 각각 다른 은사들을 나누어 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의 선물은 교회의 통일성을 이루고, 성령의 은사들은 교회의 사역을 다양하게 만든다. 교회는 통일성의 근거를 ‘카리스(charis: 은혜)’에, 그 다양성의 근거를 ‘카리스마타(charismata: 은혜의 은사들)’에 두고 있다.”

5. 결론


개혁주의 성령론에 기반을 둔 존 스토트의 성령론은 영국 내에서는 그와 쌍벽을 이루었던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의 사역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의 원인이 성령론의 차이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까지 보인다. 그렇지만 존 스토트는 위대한 복음주의자답게 오순절 운동에 대해서도 유연성을 보여주며, 성경을 기반으로 한 적극적인 대화를 제안한다. 존 스토트의 설교방법을 ‘Bridge Building’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성경과 현실을 연결하는 그의 독특한 설교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 전통적 개혁주의 성령론을 받아들이는 교회들조차 성령님의 이해와 적용에 대해서는 오히려 오순절운동을 따르는 모순된 경우를 보게 된다.

가장 대표적으로 ‘Again in 1907'같은 기독교 내 운동이 그렇다. 과연 성령의 역사가 100년 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가? 오히려 평양대부흥운동은 20세기 초의 한국적 상황에서만 일어날 수 있었던 독특한 성령의 사역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21세기의 성령의 역사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왜 바울이 초대교회에서 노예해방운동을 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소수의 기독교인이 존재하던 시대적 상황과 다수의 기독교인이 존재하던 시대적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스토트는 대답했다. 지금 한국교회 역시 소수가 아닌 다수 기독인들을 기반으로 서 있다. 이 상황에서 성령의 역사 역시 Bridge Building 과정을 통해서 이해하고 적용해 간다면 성령의 역사가 더 다양한 방면에서 포괄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생명나무 쉼터/한아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