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삶에 대하여

새벽지기1 2016. 7. 8. 11:09


삶은 광활한 미답지이다. 쉬지 않고 개발하고 가꾸어도 손길조차 닿지 않은 영역이 있을 만큼 삶은 무한히 거칠고 광활하다. 또한 삶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이다. 정성껏 마음 다해 돌보아도 어디서 어떻게 깨어질지 알 수 없을 만큼 삶은 유약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삶은 그 이상이다. 삶은 위대한 선물이고 고귀한 은총이다. 온 세상이 선물이고 은총인 것처럼 삶 또한 받음에 터 박고 있는 그분의 선물이요 은총이다. 진실로 그렇다. 세상에 받지 않은 삶이 어디 있는가? 받음이야말로 삶의 알파요 오메가다. 삶은 창조자의 숨결이고, 섬섬옥수 수놓은 신비의 작품이다.

 

다산 정약용이 산에서 지내면서, 일이 없어 사물의 이치를 가만히 살펴보았다고 한다. 그의 눈에 들어온 사물의 이치는 이러했다. “누에가 껍질을 깨고 나오면 뽕잎이 먼저 싹튼다. 제비 새끼가 알에서 나오면 날벌레가 들판에 가득하다. 갓난아이가 태어나 울음을 터트리면 어미의 젖이 분비된다. 하늘은 사물을 낼 때 그 양식도 함께 준다. 어찌 깊이 걱정하고 지나치게 근심하며 허둥지둥 다급하게 오직 잡을 기회를 놓칠까 염려할 것인가?”(정민의 다산어록청상. 24쪽). 그렇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시던 주님 말씀 그대로다(마6:31).

 

삶은 우리 손 너머에 있다. 생각이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생각대로 삶이 조형되지는 않는다. 의지가 삶을 끌어가기도 하지만 의지대로 삶이 굴러가지는 않는다. 물적 토대가 삶의 무늬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물적 토대가 삶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삶은 정녕 생각이나 의지보다 크다. 물적 토대보다 깊다. 삶은 다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다룰 수 없는 것처럼 삶 또한 그렇다. 삶은 우리 손 너머에 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삶이란 우리의 돌봄과 가꿈을 필요로 한다. 본인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삶은 개발될 수 있다. 또 강요된 삶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도 있다. 비단 자신의 삶뿐 아니다. 타인의 삶에도 간여할 수 있다. 부모가 수고를 하면 자녀의 삶이 개발되기도 하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삶의 궤도가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삶의 부분일 뿐이다. 받음이라는 거대한 토대 위에 돌멩이 하나 올린 것에 불과하다. 삶의 외피와 귀퉁이를 조금 다듬은 것일 뿐 삶의 근저를 어찌한 건 아니다. 삶이란 본디 인간의 의지와 생각으로부터 초연하다. 그런데 사실은 삶뿐 아니다. 구름과 산도 내 생각과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강도 내 생각과 의지대로 흐르지 않는다. 제각각 자기 처지에 따라, 그리고 주변의 수많은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구름과 강은 그렇게 흘러간다. 삶 또한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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