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라은성목사

특별한 인생은 없다

새벽지기1 2016. 7. 6. 07:50


인생엔 큰 차이가 없다. 어디를 가든, 어느 시대든, 어느 누구든 삶의 형태엔 큰 변화가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위대한 『고백록』(confessio)을 썼는데 누구든 이 책을 읽고 감동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인정하기 때문이다. 공자가 쓴 『논어』의 위정(爲政)편에 보면, 15세에 지학(志學)했고, 즉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이립(而立)했고, 즉 마음을 확고하게 세우고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40세에 불혹(不惑)했고, 즉 세상일에 빼앗겨 갈팡 지팡하거나 판단을 흘리는 일이 없게 했고, 50세에 지천명(知天命)했고, 즉 하늘의 명을 깨달았고, 60세에 이순(耳順)했고, 즉 귀가 순해졌고, 끝으로 70세가 되어 종심(從心)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힌두교에서 10대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20대에는 결혼하고, 30대에는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40대에는 사회에 공헌하고 50대에는 산으로 가라고 한다.


이렇게 구분하여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거나 미리 미래를 준비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미래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여러 일들로 인해 미래의 삶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워놓고 살아야 한다. 가는 길이 달라도 어느 시대에 이르면 어느 길로 가는 것이 대체적으로 그러하다. 이것을 거슬러가는 인생도 대부분은 유사한 삶을 산다.


나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20대에는 모험을 위해 경험하고, 30대에는 가족을 위해 힘써 일하고, 40대에는 사회를 위해 힘쓰고, 50대에는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이다. 60대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기에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쉽다. 아무튼 20대에는 실패해도, 실수해도, 실족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지만 30대에선 실수해선 안된다. 책임 있는 선택을 행해야 한다. 누구든 재현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잘못 들어서게 되면 회복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인생은 누구의 보장도 받지 못한다. 내일 살아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계획한 대로 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얽혀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직진하고 싶으나 여기저기서 나오는 사람들도 직진하다가 좌로 우로 틀기 때문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호대가 있고 멈췄다가 가야 한다. 여행하다보면, 원하는 시간에 도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여행을 할 때 일찍 서두른다. 몇 시간 전부터 서둘러서 준비하고 떠날 장소에 이른다. 젊은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변수가 일어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 가는 길은 오직 한 길이다. 사람들은 많은 꾀를 낸다. 이 길과 저 길로 인도한다. 사람들로 헷갈리게 만든다. 어떤 이는 유혹을 받고 시달리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예정한 자들만 이 시련의 길을 통과할 것이다. 그분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좌초하고 만다. 이 길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가신 길이다. 그분의 말씀과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좌초한 후 일어서지 못한다. 그분을 모방하지 않고 따라가야 한다. 모방은 외형만을 말하는 것이고 따르는 것은 순종을 의미한다. 불순종이 불신앙을 낳은 것처럼 순종만이 겸손함을 의미하고 그 겸손 가운데 그분의 은혜가 우리에게 머물게 된다. 우리의 인생은 그분만이 주관한다.

 

'좋은 말씀 > 라은성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준법정신  (0) 2016.07.10
한 길 인간의 마음  (0) 2016.07.08
권피아  (0) 2016.07.07
개혁운동에 뛰어드는 모습을 바라보며(1)  (0) 2016.07.05
중세로 치닫는 한국교회 위한 제언 / 라은성목사  (0) 201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