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성령론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3)

새벽지기1 2016. 5. 19. 13:56


2) 성령 세례의 결과들

로이드 존스는 성령 세례의 직접적인 결과는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체험적인 증거라고 말합니다. 중생은 신비한 것이며 영혼의 깊은 곳에서와 중심부에서 이뤄진 기적적인 행동으로 어느 누구도 그리고 아무것도 여러분에게 그가 중생한 그 순간에 관해서 말한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의식적이며 체험적이며 분명하며 명백하고 선명하여 받는 자들에게만이 아니라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것이 인식되어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1) 체험적인 것에 관하여 그는 주관적인 것과 외부적인 것으로 구분을 한다.


1> 주관적인 체험

주관적인 체험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감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례적인 자각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조나단 에드워드는 하나님( 성부하나님, 성자 그리스도, 성령)의 영광에 대한 의미를 명확히 해준다고 말하면서 그는 이것을 믿었지만 그가 말하듯이 그것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러한 체험을 한 사람들로 20세기 웨일즈의 대학 총장인 토머스 찰스 에드워드가 1859년 그가 학생 때 체험한 것을 말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하고 있을 때에 어느 집회에서 성령의 세례를 받고 이렇게 말한다. 그가 떠날 때에 “...그가 심지어 육안으로 불수 있는 것보다 더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했다는 것입니다.”그는 하나님과 만났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D.L.무디의 체험을 더불어 말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례적인 자각이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다.2)

그러면서 개인적인 체험의 부분에서 성령의 세례가 임하면 우리가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색다른 확신을 갖는다고 말합니다.3) 그러나 성령세례와 중생을 동일시 여기면 모두가 자동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확신을 가진다고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4)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사도행전 2장을 통해서나 그 밖의 성경들을 통해서 그렇지 않은 듯하다 고 말합니다. 성령의 세례가 오면 더욱 확신을 가지고 기쁨과 행복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고백의 한 부분을 통해서 “믿음을 얻는 것과 믿음의 확신 사이에 뚜렷한 차이를 끌어내는데 매우 신중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5) 말한다 .


다음으로 성령세례는 가장 높은 형태의 확신을 준다고 한다. 첫 번째 확신의 유형은 성경에서 추론하여 얻는 확신입니다. 두 번째 확신의 유형은 요한 1서 5장13절의 말씀과 같이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생명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세 번째 유형은 친히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확신이다. (롬8장15-16절) 이것을 토마스 굳윈의 글을 인용하면서 아버지와 아이가 길을 가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아이를 들어올며 안아주면 귀여워해주는 사랑을 듬뿍 주는 것과 같은 것으로 묘사한다.6)


성령으로 세례가 임하면 성령의 충만함으로 나타서 체험적인 것이 된다. 이것으로 영적 마음이 자극하게 된다고 증거 하면서 그는 청교도인 존 플라벨과 조나단 에드워드의 글들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체험적인 것들을 증거합니다. “이것들은 마음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결론을 내립니다”7).


2> 외부적인 증거

그러면서 성령 세례의 외부적인 증거들을 여러 가지 제시합니다.

그 한가지로 교회의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세례가 교회 역사상 모든 위대한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다. 성령세례와 부흥과의 사이에 있어서 차이점은 단순히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수효의 차이이다. 큰 무리, 즉 사람의 그룹으로서 부흥을 정의하는데, 동시에 성령에 의해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즉 성령이 함께 모인 사람들 위에 강림하셨다는 것이다.8)


여기서 말하는 부흥이라는 것은 교회성장 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영적 대각성과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를 말합니다. 로이드 존스는 부흥은 사도행전의 교회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재현9)이라고 말합니다. 초대교회와 같이 성령이 교회위에 다시 부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으로 로이드 존스는 성령세례가 집단적으로 부어지는 역사가 부흥이고 부흥이 성령의 세례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성령세례는 발생하는 사람들에게와 이 사람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인식되어질 수 있는 어떤 것이다. 10)


3> 성령세례를 받은 외부적인 증거들에 대한 성경의 증거 

이러한 증거들에 대한 성경적인 증거들을 이러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듯이 오순절 강림사건은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인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행2:12-13)

사람들이 감정의 격발과 활력, 그리고 기쁨과 풍부와 힘이 넘침 그리고 이것에 대한 일반인들의 의혹하는 것11) 그리고 그 결과가 사도행전 2장 44-47절에 나오는 유무상통하는 삶이고, 이러한 경향들이 부흥의 시기마다 있었다는 것입니다.12)

그리고 사도행전 4장31절에 나오듯 모인 곳이 진동하였다. 즉 굉장한 감정의 고조가 그 자리에 모든 사도들과 모든 제자들에게 있었다는 것13)입니다.


그리고 6장에서 집사들을 임명할 때에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뽑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관찰될 수 있다14)는 것입니다.


그러한 증거들이 사도행전 8장의 빌립의 전도와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로 목격될 수 있고 그리고 9장에서 바울을 통해서 아나니아의 안수로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성령이 충만하여 변화된 것15)을 모든 사람들이 목격합니다. 그리고 10장에서 고넬료 집에서 있었던 사건에서 성령이 내려오는 것은 베드로와 그 동행한 자들이 다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9장에서 제자들에게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묻고 그들이 세례를 받고 후에 바울이 안수를 함으로 성령이 임하는 것16)입니다. 이러한 증거들을 통해서 초대교회에서는 흔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알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그리고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그들 위에 부으심으로 기독교회가 시작하셨다는 것과 신약교회는 성령 세례를 받은 교회이다 그리고 신약의 모든 교훈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고 말하면서 오늘날의 교회가 그렇지 못하여 문제가 심각하게 된 것이며 이것을 해결하는 길은 초대교회와 같아야 할 것이라 17)고 말한다.

그럼으로 로이드 존스는 성령세례를 부으심과 교회의 부흥에 깊은 연관이 있음을 말하고 교회의 부흥의 원동력은 바로 이 성령세례로 기름부음의 역사를 통해서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부흥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며 온전히 그의 수중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주님이 주권자이며 성자께서 그 자신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서 이 선물과 세례를 베푸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3) 교회사 속에 있었던 증거들

로이드 존스는 이러한 성령세례와 부흥의 관계를 교회사 속에서 몇가지로 증거한다.


1904-1905년에 있었던 웨일즈의 부흥에서 사람들은 그의 신앙이 부흥되었다고 표현을 했다. 이전에 신앙이 있었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었는데 부흥으로 그들의 신앙에 부흥이 된 것18)입니다. 이것은 부흥의 때에 성령이 사람들과 회중에 내려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1738년 5월 24일에 있었던 올더스 게이트 가에서 존 웨슬리에게 일어났던 사건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IVF(UCCF)그 밖의 여러 단체의 원조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을 지도했던 캠브리지의 유명한 성직자인 찰스 시몬은 “ 이것(부흥/성령의 부음)은 결코 그것을 아직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많은 백성들이 뚜렷한 확신을 가지고 즐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평가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주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심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감정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지 거의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찰스 시몬에게 체험적인 사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 사람들은 보통 그가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인침을 받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믿고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해온 자들을 위해마련된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안에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이러한 은사가 그들에게 허락되어지는 것이다.”19) 라고 말하면서 끝맺습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을 입는 것이 바로 성령의 세례이고 성령의 부음이고 인 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과 사역자들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은 그 사역을 색다르고 능력 있게 감당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