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성령론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5)

새벽지기1 2016. 5. 19. 13:57


7) 성령세례와 성화의 관계

성령의 세례와 성화적인 측면에서 성령의 열매는 자란다는 것으로 구별된다고 보고 있다. 열매가 맺어지고 자라나는 것은 성화적인 측면인데 성령의 세례가 이 성화적인 측면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1)고 생각한다.

성령세례는 성화가 다 이루어진다고 보는 성결주의자들의 주장을 거부하면서 성령의 세례는 성화를 가능한 한 가장 많이 격려해 준다. 성령세계가 성화에 가장 자극제이며 동기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매우 좋은 시금석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항상 성령의 사역과 작용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것이나 모든 것에 적용시켜야 한다.2)


4. 성령의 인침

성령의 인침과 성령의 세례는 같다 같은 것인데 문맥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것이다.3) 라고 말합니다.

 

1> 인침의 구절과 이해

성령의 인침이라는 것은 고후1:22 20-22 “ 우리에게 기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그리고 에베소1:13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나니”, 엡4:30 “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이것은 이미 구약에 약속된 것이지만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어지는 때에 성취된다.4) 인침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된 것이고 그리고 신약의 교회와 성도에게 성취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인치는 것이 믿음으로 중생한 이후에 주시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2> 인침의 의미

인침의 의미에서 찰스 하지는“ 인치심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믿음의 다음에 오는 어떤 것이다”찰스 시몬은 이것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교회에는 언제나 그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많은 자들이 있다. 이와 같이 성화의 더 높은 확신은 믿은 후에 하나님과 더 가까지 동행하는 사람들의 것이다.5) 성령의 인침의 의미들을 권위자들의 생각을 빌려오면서 인침의 의미가 또 다른 어떤 것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계속하여 교회에는 언제나 인침의 의미는 소유권적인 의미가 있고 더 나가 권위를 부여하거나 참된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다.6) 로이드 존스는 이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요1장 33절과 6:25-27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에 의하여 인쳐진 자라는 것입니다. 이 의미에서 보증의 의미보다 권위를 부여하다. 혹은 참되다 증명하는 것7)이다. 웨스트 코드 감독은 인침과 보증에 대하여 “부과된 것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을 위해 엄중히 따로 구별해 두며 이해할 만한 싸인들로 말미암아 보증된 것”8)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세례와 인침은 같은 것으로 보고 있고 믿은 이후에 얻게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한다. 그러나 성령의 인침과 성령의 감동으로 믿는 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한다. 인치는 것은 믿은 후에 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은 후”에 혹은 “ 믿고 나서 막”9)을 말하면서 분명한 구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5. 성령 충만에 관하여

그러면서 성령세례의 또 한 증거가 성령 충만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세례를 받음과 동시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1) 그리고 사도행전 2장을 통해서 그는 성령의 세례가 “ 성령의 충만함”을 내표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는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성령 세례를 체험하지 않고도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다.2)


1) 성령 충만의 의미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테일러의 헬라어 사전을 인용하면서“ 무엇이 마음을 사로잡을 때 충만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기운으로 살라고 말하는 것으로 성령에 의해서 지․정․의의 인격이 다 다른 영향과 다른 세력에 의해서 조종을 받고 있는 것으로 말한다.3)


성령의 충만함에 관하여 충만한이란 ‘가득차다’. 혹은‘성령으로 흠뻑 젖은 것’, 단순히 그들속에 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넘쳐흐르는 성령으로 충만된, ’성령으로 흠뻑 젖는‘ 것4)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성령의 충만을 두 가지로 구분을 한다. 특별한 경우에 주어지는 충만으로 어떤 특수하고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입은 사람들이 있다. 그 예로 브사렐과 오홀리압 엘리사벳의 경우들이 있다.5)


그리고 생활상에 주어지는 성령의 충만이다. 엡5장 18절의 말씀을 관련하여서는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여기서 성령 충만을 지시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것은 어떤 한 상태나 조건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계속적인 현재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전자의 임무수행을 위한 충만과 구별6)을 한다.


이것과 관련하여 그는 롬5장2절의 말씀에 관련한 존 오웬의 ‘성령과의 교제’를 진술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소망가운데 기뻐하는 것 ... 그것은 어떠한 고난이나 영광을 통해서 영혼을 인도하며, 성령께서 우리 마음가운데에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부어주심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 성령은 모든 두려움과 슬픔을 극복하시면서 즐거움과 희열 그리고 때로는 말할 수 없는 심령의 환희로 채우시면서 우리 영혼에 그것을 은밀히 주시시도 하고 거두어 가시기도 한다.”7)


그리고 토마스 굳윈의 글을 인용하면서 “인간의 영혼에 임하시고 인간을 압도하시며,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 되시고 또 그는 하나님의 것임을 확신시켜주며 그리고 하나님이 영원부터 그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시키는 빛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빛은 일반적 신앙의 빛을 넘어선 빛입니다.”8) 즉 로이드 존스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백성에서 특별하게 그리고 예외적으로 주시는 어떤 것이라고 말하며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세례는 성령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이 곧 성령 세례를 받은 증거는 아니라고 로이드 존스는 본다.


그럼으로 로이드 존스는 성령을 통해서 중생을 한다. 그리고 그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중생과 더불어 성화의 과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성령세례가 반드시 완전한 성화를 만들어 내놓지는 않지만 가장 큰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성령세례는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성령 세례는 교회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확신과 기쁨과 부흥을 맛보게 하는 것이요 설교자나 사역자들이 권능을 입고 능력있게 사역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성령세례라는 책에서 성령의 세례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행사하지만 우리가 끈질기게 구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말하면서 우리는 힘써 기도하며 힘써 구해야 할 것이라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구할 가치가 있고 내가 힘써 구해도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혹은 성령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