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성령론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1) / 백주현목사

새벽지기1 2016. 5. 19. 13:53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

I. 로이드 존스의 생애

로이드 존스는 1899년 12월 20일 남 웨일즈 카디프에서 출생하였다. 그리고 1981년 3월 1일에 81년간의 순례자의 길을 마치었다. 그는 본래 내과 의사로 수업을 받고 그는 왕실주치의였던 호오더경의 조수로서 미래가 보장된 의료계의 경력을 1927년에 포기하고 신학교육을 받지 않은 채 같은 내과 의사였던 아내 베단과 함께 그의 고향인 남 웨일즈 탈보트 항구의 아베라본에 있는 한 장로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다. 1938년에 그는 버킹엄 게이트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채플에 켐벨 모르간 박사와 동사로서 초청을 받았다. 1943년 단독 사역을 시작했고 1968년 8월 건강상의 문제로 은퇴하기까지 거기에서 목회를 계속했다. 그 다음 그는 순회 설교자로서, 저술가로서 여생을 주를 위하여 섬겼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다.1)

설교자로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특히 한국에서 많은 목회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분이다. 그의 저서들의 계속하여 번역되어 나오고 있는데 그 분의 책들을 참고하시면 여러분에게 깊은 감동과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II. 로이드 존스의 성령사역과 성령세례

 

1.들어가는 말

  현대 21세기의 영성과 성령에 많은 관심이 대두되는 시기에 이렇게  중요한 사람들의 성령론을 고찰하며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빛과 소금교회 그리고 문설연과 새벽이슬에게 또한 감사 드린다. 이것이 씨앗이 되어 더욱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렇게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에 관하여 생각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과 문설연의 신목사님과 그 밖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먼저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 중에서 성령의 세례라는 부분은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개혁주의적인 생각과 신학을 가지고 또한 개혁주의적인 성경해석을 하는 분으로 이해를 한다. 그러나 성령에 대해서는 개혁주의 적인 길을 벗어나 조금 그 사역에서 문을 열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개혁주의 성령론에서는 조금 나아가고 그렇다고 오순절적인 성령론에는 다른 그런 견해를 필역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많은 독서와 목회에서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자신의 견해를 세운 듯하다. 그는 어린 시절에 웨일즈의 부흥을 보고 자랐다고 할 수 있고 자신이 하는 목회사역에서 큰 부흥은 없었지만 개인적인 그리고 지엽적인 부흥을 보고 갈망한 사람이다. 이것들이 그의 목회와 사역에 그리고 신학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이번 발제에서 전체적인 성령론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논쟁이 되는 부분에 집중을 하도록 한다. 성령론에서 그는 성경의 논리와 교회사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필역하고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의 성령론을 무시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그 안에서 목회자로서 성도로서 우리에 유익을 주는 것들이 있다고 봅니다.


2. 성령의 중생의 사역

 

1> 성령의 중생의 은밀한 사역

로이드 존스에게 성령의 사역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사역은 중생의 사역이다. 그러나 이것은 체험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밀한 사역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은 그에게 그 일이 발생했을 때에만 알게 된다.1) 그가 중생한 증거들로 그는 롬8:7,9절을 통해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로마서를 인용하면서 성령의 사역으로 자연인이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말하면서 중생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된다.2)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과 12절과 고린도전서 2:14절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일을 받을 수 있고 믿게 되는 것은 바로 성령을 통해서 이다3) 라고 말한다.


성령의 사역이 없이는 어떤 사람도 믿을 수가 없으며, 모든 성도들 안에는 성령께서 필연적으로 내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생은 성령의 사역이다. 그런데 성령의 중생의 사역은 은밀한 사역으로 보고 있다.

 

  2> 중생한 사람의 증거들

중생은 은밀한 사역이지만 우리가 내주의 사역으로 중생한 사람들에게 “나의 보편적이고 전체적 사고방식을 그로 하여금 주장하시게 하며, 규정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싶어지고, 그리고 언제나 자기 속에서 하나님을 아는 더 큰 지식을 소원하게 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더 크게 바라게 된다. 그리고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자기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늘 염려하고 주님, 내 사랑이 약하고 연약해서 늘 걱정입니다 고 말을 한다. 그리고 자신 속에 있는 죄를 더욱 더 깨닫게 된다. 그리고 죄를 짓는데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에서 자기가 행한 일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괴로워하게 된다. 더불어 그는 점점 갈수록 죄와 알과 유혹이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 예민해 진다.

결론적으로 자기 속에서 의와 거룩을 사모하여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들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면서 내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지 없는 지는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4)고 로이드 존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중생의 사역으로 성령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중생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 즉 진정한 신자가 될 수 있다”5)


그럼으로 로이드 존스는 성령의 중생의 사역과 성령의 세례를 별개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성령의 내주로 인한 중생의 사역은 죄를 깨닫게 하시며, 빛을 비추시며,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성령이 사람 안에서 내주함으로 일어나는 성령의 은밀한 사역이다. 그리고 은밀한 사역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알 수 없는 사역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결과들은 분명히 있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문화와설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