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박형호의 포토에세이 182

설중 복수초

눈 내린 산, 미끄러지고 엎어지고 겨우 복수초 군락지 도착했으나 눈이 많이 내려 꽃의 모습은 어딘가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따뜻한 햇빛이라 기다려보기로 하고 눈밭에 쪼그려 앉아 기다리길 세 시간, 저기 저만치 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싸! 눈밭에 옷이 젖던 말던, 가시덤불에 긁히던 말던.... 에구, 꽃이 뭐라고, 사진이 뭐라고.... 몇 번을 비탈에 미끄러워 진다. 하얀 눈 속에서 노랗게 웃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산을 내려오는 길, 삭신이 쑤신다. 아까 오르는 길에 눈길에 차가 미끄러져 저 산아래 길에 아무렇게나 세워 두었는데 언제 거기까지 가는지... 허기가 밀려온다. 에구, 내 팔자야.... 즐거운 한탄이 나온다.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찬바람이 가시지 않는 2월경 따뜻한 해변 산기슭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3월이면 중부내륙지방까지 피게 된다. 긴 겨울 끝에 피다보니 실로 봄의 전령사라 할 만큼 초봄부터 열광하는 꽃이기도 하다.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바야흐로 봄이 시작되었다. 서서히 들과 산의 봄기운이 사람들의 마음까지 물들이게 할 터..... 이것이 봄바람 아니던가!

구두수선

지나간 어느 겨울 지인의 구두 손질이 필요해 찾아 들어갔던 거리의 작은 수선집. 그 좁은 공간에서 바라본 시선은 다양한 물건과 수선공구들 그리고 주인 부부의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어쩌다 밖에서 본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신기함마저 들게 하였다. 작업에 열중하는 그 모습에 차마 렌즈를 들어 올리지 못하자 옆에 있는 지인이 촬영동의를 대신 받아 준다. 그 좁은 공간에서 조심스레 셔터를 몇 번 눌렀다. 오랜 세월동안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의 편안한 발걸음을 도와줬을 터이다. 이곳을 지나게 되면 사진을 전해줘야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묻어두면 잊혀질까, 주인분께 누가 될까 조심스레 끄집어 내보는 사진이다.

백두산 가는 길

백두산 가는 길 겨울 백두산, 늘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연길서 버스를 타고 수시간, 이도백하에서 숙박을 하고 백두산 매표소에 도착하니 차가운 한기가 껴입은 옷 속까지 파고든다. 매표소에서 버스를 타고, 또 지프차로 갈아타고 천지를 향해 오르는 길은 글자 그대로 빙판길이다. 차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늘 있어왔다는 일인 양 시크하게 차를 운전한다. 바로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보라가 심해졌을 때는 잠시 경로를 잃은 듯 미끄러지기도 하였지만 금세 길을 찾아 오른다. 그렇게 오른 지프차에서 내리자마자 강한 바람에 몸이 밀리고 잠시 천지를 알현하려는 마음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걷는다. 눈바람에 시야가 좋지 않아 천지를 전부 조망하긴 힘들었지만 겨울 백두산이 주는 강렬함은 짜릿하기까지 하였다. 영하 45도의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