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영문 밖으로 (히13:10-16)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4. 26. 05:02

해설:

“한 제단”(10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가리킨다.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 언약궤 위에 있던 속죄판(시은소)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다. 그것이 유대인들의 제단이다. 반면, “우리” 즉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사죄의 은혜를 받는다. “유대교의 성전”은 헬라어 ‘스케네’에 대한 의역으로서, 직역하면 “장막”이 된다. “섬기는 사람들”은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이 말은 제사장과 레위인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전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 모두를 가리킨다. “이 제단에 놓은 제물”은 십자가 희생을 통해 얻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킨다. 성전 제사를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유대교의 제사의식”(11절)은 대속죄일의 제사의식을 가리킨다. 율법에 의하면, 일반적인 속죄 제물은 제사를 드린 다음 그 고기를 제사장과 제사 참여자들이 화목제물로 나누어 먹는다. 반면,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 예식을 행하고 나서, 나머지를 “진 바깥으로 끌어내고, 그 가죽과 살코기와 똥을 불태워야 한다”(레 16:27). 예수님은 손으로 짓지 않은 하늘의 지성소에서 피를 흘려 영원한 속죄 제사를 행하시고, 그분의 육신은 “성문 밖에서”(12절) 죽음을 당하셨다.

 

여기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라고 격려한다. “진영 밖으로 나가자”는 말은 거부와 배척과 고난을 감수하자는 뜻이다. 믿음의 길에서 고난을 겪는 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골 1:24). 믿는 이들은 “장차 올 도시”(14절)에 속했기 때문에 이 땅의 도시에서 배척 당하는 것에 괘념치 않는다. 믿는 이들은 “짐승 제사”가 아니라 “찬미의 제사”(15절)를 드린다.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라는 말은 그분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을 가리킨다. 찬미의 제사는 “선을 행함과 가진 것을 나눠주기”(16절)로 연장되어야 한다. 입술의 제사는 손과 발의 제사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런 제사를 기뻐하신다.

 

묵상:

헬라어 ‘파렘볼레’는 “진영” 혹은 “군영”으로 번역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행진하다가 어느 곳에 머물게 되면 진을 쳤습니다. 그 진의 한 가운데 장막(성막)을 두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는 지역마다 한 마을이나 도시를 이루어 살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재앙은 진영(마을 혹은 도시)으로부터 추방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전염병에 감염된 사람을 진영 바깥에 격리하게 했고, 가증스러운 죄를 지은 사람들은 진영 바깥에서 처형하도록 규정한 것을 생각해 보면, 진영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진영) 밖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분을 따라 성문 밖으로 나가자고 권고합니다. 그것은 지리적인 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성 있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진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은 진영 밖으로 쫓겨나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합니다. 그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믿음을 따라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므로 이 땅의 나라에서는 이방인이 됩니다. 

 

이방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차별과 모욕과 배척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차별성은 “찬미의 제사”와 “선을 행함”과 “가진 것을 나눠주기” 같은 일로 드러나야 합니다. 

 

묵상:

주님, 저희는 “진영 안에서”(이 세상에서) 너무나 안전하게 살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저희를 보고 “저들은 우리와 다르다”고 느끼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저희를 불편하게도, 위험하게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과연 제대로 믿는 사람들인가요? 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