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가시나무 같은 인생이 주는 부끄러움

새벽지기1 2020. 7. 14. 07:07

가시나무 같은 인생이 주는 부끄러움

 

사무엘하 23장은 다윗 왕의 마지막 말입니다. 모든 사역을 끝내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회고한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 깊이가 잘 묻어져 있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밝힙니다.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를 영원한 언약에 근거하여 모든 구원과 모든 소원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분명하게 계시하시기를 공의를 행하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즐거워하십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완벽하게 공의로 다스리신 왕이셨습니다. 그리고 온전하게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의 뜻을 이루신 분이셨습니다. 그 모든 것의 절정은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공의와 예수님의 경외하심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공의와 경외함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우리는 이러한 분명한 고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스리는 지위에 있는 자들에게 공의로운 자세를 요구하십니다. 공의가 무너지면 황폐함만이 남고 혼돈이 생겨나고 불신과 낙담이 일어납니다. 삶에 대한 의욕이 꺾이게 됩니다. 그러면 더 이상 다스림의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를 통하여 구원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공의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그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경외는 공의로운 삶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공의는 무디어집니다. 그리고 부정과 부패에 발을 담그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죄와 친구가 됩니다. 결국 공의는 무너지고 맙니다. 이러한 지도자가 다스리는 공동체는 고통하고 신음하는 곳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의로 다스리는 지도자는 그 공동체를 생명이 움트는 곳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받아 누리는 공동체가 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를 분명하게 덧붙입니다. 바로 사악한 자의 최후를 말씀합니다. 사악한 자는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삼하 23:5]

 

사악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요, 공의를 행하지 않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의 최후는 다 내어 버릴 가시나무와 같습니다. 이 말이 너무나 가슴을 찌르게 합니다. 쓸모없는 존재로 쓰레기와 같은 존재가 됩니다.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무엇하나 건질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버리는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부유하고 권력을 휘둘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침내 버림 받을 것입니다. 아낌없이 버림받게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슬프고 두려운 일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사악한 자의 최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악한 자는 그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않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가시나무와 같은 최후를 맞이합니다. 가시나무를 손으로 잡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이 권력을 가졌을 때는 사람들이 벌떼와 같이 몰려왔을지 모릅니다. 그 앞에서 떨어지는 떡 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헐떡거리는 모습에 신이 났을지 모릅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권력을 가질 때 사람들은 인산인해로 모여듭니다. 그래서 떵떵 거리며 삽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고 온갖 부정과 술수를 통하여 부를 축적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고 악을 행합니다. 그것을 즐거워합니다. 다른 사람이야 죽든 말든 자신의 쾌락만 지키면 됩니다. 죄 의식도 없고 오직 권모술수로 자신의 성공만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한 세상 떵떵 거리면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보고 계심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악함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가시나무와 같이 만들어 버립니다. 아무 쓸모도 없고 모든 사람이 다 떠나가고 가까이하기에 수치스러운 존재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난 것입니다. 가시나무와 같은 마지막은 참으로 불쌍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동정하지 않습니다. 쓰레기를 동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감하게 버립니다. 그리고 뒤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악한 자의 자리에 오래 있으면 안 됩니다. 빨리 그 자리를 내려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 앞에 정직하고 철저하게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가시나무 인생이 되지 않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