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을 꿈꾸며
종교개혁 499주년입니다. 로마 가톨릭의 비 신앙의 모습에서 다시금 성경의 가치로 회복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교회의 본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개혁이었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타락은 단지 교회의 타락만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국가와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거짓과 타락과 부패에 갇혀있었던 교회는 오로지 자신의 배만을 위하여 백성들의 살과 피를 뜯어먹고살던 하이에나와 같았습니다. 교회의 타락이 가져온 참담함입니다.
교회는 지속적으로 타락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배부른 돼지와 같은 교황과 신부들의 탐욕만이 자리 잡았습니다. 수도원은 온갖 추잡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수도원 우물가에 발견된 낙태된 아이들의 모습은 참담하였습니다. 그래도 겉으로는 거룩한 척 하였습니다. 참으로 회칠한 무덤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독사의 자식들을 통하여 이뤄졌습니다. 지금도 로마에는 그 당시의 탐욕과 개혁의 상징인 베드로 성당이 수많은 사람들의 주머니를 강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타락이 창조 세계의 부패를 가속화 시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말씀을 통하여 교회의 개혁을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교황은 말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권력과 쾌락에 빠져있었습니다. 교황은 죄가 없다는 한심한 신학을 가졌던 로마 가톨릭은 동시에 3명의 교황을 보유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탐욕의 증거입니다. 이러한 어둠의 역사는 오래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다시금 회복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부르시고 보내어서 그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교회 개혁이 입니다.
교회가 개혁되지 않으면 만물이 소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개혁될 때 만물은 비로소 소망을 같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지속적으로 이루시기 위하여 개혁자들을 보내셨습니다. 루터, 쯔빙글리, 칼빈, 멜랑히톤, 베자, 뷰쳐, 낙스 등 교회 개혁을 위하여 하나님은 곳곳에서 부르시고 각 나라로 보냈습니다. 이렇게 교회 개혁은 전 세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개혁자들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개혁하였습니다. 교회가 개혁되자 국가가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개혁의 흐름은 시대를 이어서 지속되었습니다. 개혁은 부흥으로 나타났습니다. 교회가 개혁되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개혁은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흥은 개인과 교회와 민족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복음이 증거 되고 개혁이 일어나면 그곳에 성령의 역사가 동반되었습니다.
그러나 개혁이 멈추거나 후퇴할 때 부흥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타락합니다. 개혁과 부흥이 없는 교회는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와 같습니다. 그러한 교회는 개인은 물론이고 나라에 피해를 줍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착한 일을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개혁되지 못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범죄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개혁은 모두를 살리는 일입니다.
우리 시대는 부끄러움이 만연되고 있습니다. 온갖 추하고 더러운 일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상식은 사라지고 몰상식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꽃다운 아이들이 죽었는데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이비 종교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신의 주체성도 없이 국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거기에 또 사이비 종교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극우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한 인터넷 매체에 사이비 종교가 주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현상들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러한 사악한 일들이 시작된 것입니까? 그것은 교회가 개혁되지 않고 후퇴하였기 때문입니다.
개혁된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하는데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맘몬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유령인 맘몬에 교회가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하였습니다.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에 만들어진 각종 기도회는 진리의 외침이 아니라 정권을 찬양하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점점 세속화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교회의 세속화는 세상이 미리 인지합니다. 자신들과 친구 됨을 압니다. 그래서 교회를 더 이상 거룩하게 보지 않습니다. 당연히 교회를 등지게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멸망으로 가고 있는 이들이 점점 많은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교회의 책임입니다. 교회가 삶의 현장에서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추구하는 스펙과 성공과 부와 권력과 외형을 사랑하고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가 없어도 차이가 없습니다.
개혁이 없는 교회는 그리스도 없는 세상을 닮아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없는 세상은 교회를 이용합니다. 분별력이 사라진 교회는 자신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권력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교회는 몰락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10년 전 만 하여도 성도수가 천만이라고 자랑하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 토막 났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몰락의 시작일지 모릅니다. 어디까지 추락하여야 정신을 차릴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사는 일은 개혁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세속화의 현장에서 복음의 현장으로 개혁하였듯이 우리도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직 말씀과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과 오직 그리스도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외쳤던 그 개혁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살리고 나라와 백성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 개혁은 쉽게 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저항이 있는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 직분의 개혁도 수많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어찌 그 뿐이겠습니까?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살아나는 길은 개혁 외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부흥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개혁을 위하여 우리는 말씀과 신앙고백의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비참한 꼴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어수선한 시기이지만 또한 개혁의 적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금 우리의 자리를 돌아보고 개혁의 끈을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하는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작지만 큰일을 감당하고, 변방에 있지만 중심을 깨우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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