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마음, 상한심령
추석 명절에 보았던 TV 프로그램이 기억이 납니다. 영재를 발굴하여 그 내용을 선보이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 8살 소년의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이 듣고 보고 느꼈던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마음으로 자연과 소통하였습니다. 풀밭을 손으로 휘저으면서 파도를 연상하였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종종 그림이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담담 기자가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하였을 때 아이는 이해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는 말에 아이는 마음으로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기에 누구든지 마음으로 알 수 있다는 당찬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한 골목길에 아이가 그린 그림을 전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부부의 이야기가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림을 이해 할 수 있느냐는 말에 마음으로 느낌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주는 풍요로움을 잘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전인격적인 요소가 묻어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인격이 살아 숨 쉬는 곳이 바로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상태에 따라 삶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마음을 향하여 만물보다 더 부패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한 아이라 할지라도 거듭난 마음이 되지 않으면 참된 선을 볼 수 없고, 참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눈에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느끼지 그 자연 넘어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결국 궁극적인 아름다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거듭난 마음을 가진 성도들은 일반적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릴 뿐 아니라 궁극적인 아름다움, 참된 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거듭난 마음입니다. 만물보다 부패한 마음이 아니라 영적인 선을 볼 수 있는 거듭난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왜 나에게 이러한 고난이 오냐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는 고난이 없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은 이러한 고난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일입니다. 그리고 섭리를 순종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거듭난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같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는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것이냐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어야 할 거듭난 마음은 “상한심령”입니다. 자신의 죄에 애통하는 마음이 바로 상한 심령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거룩하게 살고자 간절하게 가지고 있는 마음이 바로 “상한심령”입니다. “상한심령”이 될 때 거듭난 마음을 가진 자의 삶은 더 깊고 풍요로워집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거듭난 마음을 가진 성도가 가지고 있어야 할 자세는 바로 “상한심령”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멸시함을 받지 않습니다. 상한심령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죄에 대한 통곡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하여 철저하게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처절하게 애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가 가져다주는 파괴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룩한 삶을 위한 애통입니다. 세상이 주는 화려함과 편안함에 사로잡혀서 거룩한 삶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교회와 성도의 세속화는 쓰나미처럼 오지 않습니다. 가랑비처럼 옵니다. 그래서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온 몸이 젖어 버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옷을 갈아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속화의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상한심령은 이러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붙잡고 있어야 할 것은 바로 거듭난 마음과 상한심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좋은 말씀 > 신동식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분능선 (0) | 2020.05.14 |
---|---|
교회를 허락하신 이유 (0) | 2020.05.13 |
다시 기도의 자리로 (0) | 2020.05.08 |
목사라는 직분의 고약함 (0) | 2020.05.07 |
성경과 역사의 교훈 (0) | 2020.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