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몸이 반응하는 교회, 몸이 반응하는 신앙

새벽지기1 2020. 2. 21. 07:19


몸이 반응하는 교회, 몸이 반응하는 신앙

 

“나이가 환갑이 넘으셨는데 정말 놀랍네요”

 

지난 목요일에 정말 놀라운 모습을 경험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 꿈의 대상이었던 형님을 직접 대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형님은 바로 국가대표 축구 선수였으며 현재 고양 하이 축구 클럽이 단장인 이영무 목사님입니다. 어린 시절 놀 수 있는 것이라고는 축구공이 전부였습니다. 동네 공터에서 축구를 하면서 장래 꼭 축구 선수가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한 꿈을 심어 주었던 분이 바로 이영무 목사님입니다. 그래서 제 번호들은 대 부분 9번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90분 동안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그 모습에 홀 딱 반하곤 하였습니다. 그런 그분이 좋은 교단에서 신학을 공부하시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체육인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었지만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흘렀고 고양시에 교회를 세우고 지역 목회자들과 함께 축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좋아하던 운동이라 너무 행복하였습니다. 그런데 4년 전에 그 운동모임에서 이영무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기분은 정말 독특하였습니다. 마치 40년 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마디의 말도 못하고 인사만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정식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경기장에 만났습니다. 제가 속한 합동측 목회자들과 이영무 목사님이 속한 합신측 목회자들 간에 경기였습니다. 저는 왼쪽 수비수였고, 이영무 목사님은 공격수였습니다. 20분 동안의 경기였지만 저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분 잠시 이영무 목사님에게 공이 오면 다리가 떨리는 것입니다. 환갑이 넘으신 분이 공을 가지고 오시는데 잡을 수 가 없었습니다. 그 현란한 드리볼은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젊어도 제가 한참 젊은데 공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 나이에 아직도 화려한 드리볼을 하시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함께 뛰었다는 것에 만족하였습니다. 그 날은 10대에 가졌던 목사도 되고 축구선수도 되고 싶다던 꿈이 이루어진 흥분을 가진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경기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을 나오면서 긴 포옹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서 찬찬히 그 흥분을 돌아보면서 생각하였습니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모습은 어디서 올까? 그때 누군가 이런 말을 합니다. “몸이 반응을 하네” 그렇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훈련을 하였던 몸이 나이가 먹어도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체력은 떨어지고 스피드는 죽었어도 기술만은 여전한 것은 몸이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피와 살 속에 스며들어 있는 훈련이 실제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겠다 생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영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몸이 반응하는 신앙인가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의식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몸이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의 자리를 즐기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하는 신앙을 생각하였습니다. 서로 눈치 보는 신앙처럼 유치한 것은 없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누가 하겠지 하면서 모른 체 하는 모습처럼 부끄러운 것이 없습니다. 몸은 훈련한 만큼 반응합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과 훈련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무의시적인 상황 가운데 나타납니다. 우리말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몸이 반응하는 신앙은 저절로 주어지 않습니다. 억지로 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영적인 훈련의 열매입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의 삶과 순종의 열심히 있을 때 몸은 반응합니다.


성숙한 신앙은 결코 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결코 말을 잘 하고 지식을 자랑한다고 인정 받지 않습니다. 몸이 반응 할 때 알 수 있습니다.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은 모를지라도 다른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몸이 반응하는 그 모습이 바로 신앙의 참 모습일 수 있습니다.

교회도 동일합니다. 교회의 정신이 우리의 삶에 박혀 있을 때 비로소 몸이 반응하는 교회가 됩니다. 같은 마음과 같은 뜻과 같은 곳을 바라 볼 때 교회는 반응합니다. 교회 오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고 그 정신을 가지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살아갈 때 교회는 반응합니다. 몸이 반응하는 신앙, 몸이 반응하는 교회가 필요한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