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도

새벽지기1 2020. 3. 4. 05:59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도

 

교회의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을까요?

성도의 멋진 모습이 무엇일까요? 요즘 이러한 생각을 자주 합니다. 사실 교회는 우리의 삶에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사단의 유혹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힘들어지면 교회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우리의 생각과 삶에서 분리 되면 우리의 신앙은 목적 없이 날아가는 비행기가 됩니다. 멋지게 이륙은 하였으나 착륙한 곳이 없습니다.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연료가 있을 때까지 머물 수 있으나 마침내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교회는 신앙 생활의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유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온 공동체가 같은 뜻과 같은 마음,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같은 신앙고백을 배우는 일입니다. 신앙고백이 같지 않으면 같은 뜻과 마음을 가질 수 없고 같은 곳을 바라 볼 수 없습니다. 교회 개혁은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역사적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우리의 갈 바를 찾는 일이 첫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신앙고백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몸으로 살아내는 일은 긴 인내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같은 뜻으로 같은 곳을 바라 볼 수 있을 때 교회는 경건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성경은 경건의 능력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사회적인 약자들이 소망을 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속에 물들지 않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즉, 자신의 열심과 영광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그 일들을 충실히 감당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집니다.


성도의 멋진 모습은 교회의 아름다움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아름다우면 성도의 삶이 멋집니다. 예수님은 성도의 멋진 모습에 대하여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한 예를 드십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을 주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보듯이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은 정말로 불가능한 삶일까요? 주님은 불가능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떡을 달라고 하시는데 돌을 주시는 분이 아니듯이 우리가 감당 할 수 있기 때문에 주신 말씀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믿음의 진보에 따라 나타납니다. 성화되면 될 수 록 우리는 속옷을 벗어 줄 수 있는 믿음이 됩니다. 서로의 편차가 있을 뿐이지 불가능한 모습이 아닙니다. 또한 이러한 멋진 모습은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시작합니다. 성도의 의무를 감당하고, 은혜의 방편을 날마다 사용할 때 멋진 모습을 가꾸어 갈 수 있습니다.


“교회를 교회 되게, 예배를 예배 되게”라는 찬양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노래를 지은 분이 어떤 분인지 모르지만 교회가 교회되지 못한 현실과 예배가 예배 되지 못한 아픔을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 시대에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교회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교회는 어떨까요? 우리 자신은 괜찮을까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우리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가요?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있나요? 다시 한 번 정직하게 돌아보고 기도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