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나눔은 메아리입니다.

새벽지기1 2020. 1. 28. 07:02


나눔은 메아리입니다.

 

산에 올라가서 크게 소리를 쳐 본 사람은 메아리의 그 정겨움을 압니다. 내가 한 말이 다시 되돌아와서 귓전을 울릴 때 입가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타납니다. 메아리는 소리를 외쳐야 들을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결코 들을 수 없습니다. 작게나마 힘을 내어 외칠 때 메아리의 멋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나눔이 이와 같습니다. 나눔은 반드시 돌아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내것을 줄 때만 누릴 수 있습니다. 주지 않고 결코 알 수 없는 행복입니다. 성경은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주는 것이 좋은 것은 줌을 통하여 얻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명절맞이 독거노인 및 노숙자분들께 선물 보내기를 한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아주 미약하게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여러 교회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후원하는 분들이 다양하여졌습니다. 만원하는 선물을 보내는 아주 작은 나눔입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그러한 일도 아닙니다. 단지 우리 주변에 명절을 외롭게 지내는 분들에게 작은 사랑을 나누자는 의도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20번을 하였습니다.

 

그 동안 선물을 받았던 어르신 들 중에 소천하신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두 분이 있습니다. 한분은 경로당 회장님이셨습니다. 자식들을 외국에 보내놓고 혼자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회장님은 경로당 일을 정말로 열심히 하셨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오면 이미 경로당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셨습니다. 회장님과 함께 더 어려운 분들을 살피고 함께 나눔을 실천하였습니다. 젊은 목사에게 참 도움을 많이 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일찍 소천하셨습니다.

 

또 한 분은 선물을 돌리다가 만난 분입니다. 빌라 지하에 사신 분이었습니다. 가족도 없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사셨습니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하수구에 볼일을 보시면서 사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하수구가 막혀버리자 온갖 오물이 역류하였습니다. 그런데서 7-8년을 사셨습니다. 그 집을 다 청소하고 도와주었습니다. 지금도 그 냄새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끊임없는 노력으로 국가 시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가기 전에 그 몸을 가지고 예배를 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지하에 있는 교회에 냄새가 진동하였지만 성도들이 잘 참아주었습니다. 지금은 소식을 알 수 없지만 그 분을 생각하면 감사가 나옵니다.

한 사람이 한 구좌씩 후원하지만 그 사랑은 엄청난 메아리로 돌아옴을 늘 경험합니다. 이번에도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어르신들이 추석 떡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작은 것이지만 너무 행복하였습니다. 그래서 봉사에 참여하였던 성도들이 행복한 떡 잔치를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나눔은 나눔에서 끝나지 않고 메아리처럼 행복으로 돌아옵니다. 나눔은 큰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작은 일부터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받는 것에 익숙하면 나눔이 주는 희열을 누리지 못합니다. 작은 나눔은 참 좋은 것은 교만에 이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큰 것은 자칫 교만에 이를 수 있는데 작은 나눔은 기쁨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리고 잔잔한 행복을 얻습니다.

 

나눔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을 나보다 조금 어려운 이들을 위하여 조금 흘러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흘러 보낸 것이 모여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작은 흘러 보냄이 어떤 이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축복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찾아와서 사랑을 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눔은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5년은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메아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눔이 자신을 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공유하는 것이 될 때 우리는 나눔이 주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나눔은 메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