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낮은 곳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곱지만은 않은 눈총

새벽지기1 2020. 2. 6. 07:54


곱지만은 않은 눈총


나에 대한 시선


나를 아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나의 경제적 부실과 무책임한 현실의 상황을 곱지 않은 눈총으로 바라본다.

한때 좋은 직장에 근무하면서 그것도 세 번씩이나 학교에 들어갔다 나왔다하면서까지

그 좋은 기회를 마다하고 굳이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했느냐고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염려요 관심이기도 하다.

현실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겪는 안타까움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염려와 관심의 저변에는 안타까움을 넘어 무능력한 처지에 놓여있는 나를 한심하고도 측은히 여기기까지 한다.
부모님의 자식에 한 지나친 염려 또한 한 몫을 더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15:10)라는 말씀은
나 자신을 적절히 안위하거나 합리화하는 변증이 아니다.

변변치 않은 나의 과거 교직 생활을 아직까지 무용담으로 삼는 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섭리와 인도하심은 물론이요

나 자신에 한 사명과 비전과 기도마저 무력화시키고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부정하는 일과도 같다.


이 일에 관한한 아버님은 언제나 질타에 가까운 충고의 말씀이었고

어머님은 오히려 안타까워만 하실 뿐이었으나

결국은 속내를 비추는 결정적인 말씀이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다.

학교 소사 자리라도 알아보라는 염려의 말씀에,

허~걱! 이 석연치 않은 구차하고 묘한 기분은 무엇인가?

가장 소중한 것에 한 본연의 자리가 이 세상의 가변적이고도 현실적인 화려함에는 정작

맥을 못 추는 것에 하여 유쾌하지 않은 씁쓸한 감정이 나를 더욱 슬프고 우울하게 한다.


사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결정적일 때나 또한 현실적인 상황에서

최소한의 예의와 사람 구실을 해야 하는 일들이 있음에도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자책과 인질처럼 무거운 마음에 고개 숙인 죄인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는 늘 마음의 짐과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선택한 기회와 복음의 광을 위하여 결행한 일들은 내가 감당해야 할

또 다른 나의 책임과 사랑과 십자가를 지는 신앙의 흔적들로 세워가야 할 현실이다.


사실 나 자신조차도 때로는 세상 친구들을 만나면

슬그머니 초라해지는 현실에 움츠러드는 것이 사실이다.

저들의 수고로움이 물질로만 보상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저들의 연금에 비하면

나는 오늘 하루 교통비마저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현실적 처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더 많이 인간 노릇하지 못할 만큼의 어려움에는

더 더욱 야코가 죽는 게 사실이다.

직장을 포기하고 돌아설 때는 이미 이보다 더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음에 하여

충분히 결행하고 떠나온 자리여서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님에도 녹록 지 않은 생활이 버겁기만 하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요일5:4)이라는 말씀조차

초라하게 여겨지는 듯한 현실과 곱지 않은 눈총 너머에서 나는 여전히 버티기하며 살아내고 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무늬만 빼면 백수나 다름없는 목회자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어떠한 처지에 있든 건강한 삶, 건강한 목회를 하는 분들의 훌륭한 인격과 삶을 본받고 싶다.

어렵지만 어렵다는 것이 도드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 히 되기만을 기도하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령하는 일을 위하여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가고 싶다.

이 어려운 시기에 나의 삶이 버겁고 녹록 지 않으나 자신의 곤경과 필요에서 눈을 떼고

남에게 복을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에 더 관심을 쏟으며 살겠다는 각오는

나로 하여금 잘 산다(well being)는 것이 무엇인지,

잘 나이가 들어 잘 늙어간다(well aging)는 것이 무엇인지,

잘 죽는다(well dying)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오늘날 지구촌에는 아직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전혀 없는

생존적인 부족을 놓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세상은 사자와 기린과 얼룩말들을 보호하면서

이 죄 없는 아이들은 그냥 굶어 죽어가게 내버려두는 걸까요?

아프리카는 정말 신이 잠깐 잊으신 땅일까요?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이러한 질문 앞에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은 먹을 것의 종류와 입을 것의 종류에 관한

생활적인 부족을 놓고 고민하며 물질적 풍요와 호사를 누리는 자들이 있다.

세상은 이 일을 위해 살고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이 두 부류의 모든 사람들과 겨루며 도전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