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3

나는 누구인가?

새벽지기1 2019. 11. 1. 07:53


시만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황현산 교수(고려대학교 불문과)는 조금 생각해 보다가 짧게 대답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있다.”

 

얼마를 법니까?”

당돌하고도 얄궂은 질문이었습니다.

 

시인마다 다르다. 어떤 시인은 시도 쓰고 산문도 써서 한 달에 평균 30만 원 쯤 벌고 그것으로 생활한다.”

 

학생들이 무슨 농담으로 그러냐는 표정으로 교수님을 쳐다보았습니다.

 

황 교수의 친구인 그 시인은,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억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회사 돈 수십억 횡령하기도 하고

뇌물수수혐의로 세인들의 지탄을 받는 비루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아갔듯이, 우리 또한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태양은 뜨겁고 물은 마르고 뱀과 전갈의 위험은 가득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여정을 "광야교회"(사도행전 7:38)라고 말합니다.

 

광야와 광야 교회의 차이를 결정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430년 동안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이 합심하여 이집트를 탈출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후의 삶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심화시키는 여정입니다.

 

둘째는 분명한 목적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목적지입니다.

그 목적지를 모르는 사람은 떠돌이 방랑자로서 광야의 삶을 살고,

아는 사람은 순례자로서 광야 교회의 삶을 삽니다.

 

셋째는 분명한 자아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신 단 하나의 이유는,

그들로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수입니다.

 

회한과 한탄으로 점철된 한 많은 광야 생활은 열 두 권의 책으로도 부족하고,

그 내용이 아무리 기가 막히고 극적일지라도 그것이 저것이고 저것이 그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개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끝없던 넋두리는 침묵하게 되고, 그 복잡하던 것들이 차근차근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는 열심히 살게 됩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 그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에센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