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왜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 상태의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때론 하나님을 저주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스베덴 보리의 ‘영계 탐험기’를 읽고 더 이상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그를 통하여 천국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천국에 가면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닌 것도 알았습니다. 영원히 사는 것도 알았습니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벙어리에 귀머거리요 맹인의 삼중고를 겪었던 헬렌 켈러가 한 말입니다. 그녀는 설리반 선생을 통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지만 여전히 깊은 절망 상태에 빠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스베덴 보리의 책을 통하여 막연했던 천국의 실체를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 이후 헬렌 켈러의 삶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절망은 사라지고 욕심과 집착이 없어지고 고난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목적’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망과 꿈을 주는, 누구보다도 위대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자, 어둠에 갇힌 헬렌 켈러를 세상의 빛으로 인도한 사람이 설리번 선생이라면, 영원한 빛으로 인도한 사람은 스베덴 보리입니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요?
1688년 스웨덴의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스베덴 보리는, 아이작 뉴턴,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서양의 3대 천재로 불리는 최고의 과학자입니다. 아인슈타인보다 200년 전에 이미 상대성이론에 대한 논문을 썼으며, 그의 뇌 연구는 오늘날에야 입증이 될 정도로 탁월한 과학자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일대 사건이 일어납니다. 56세 때 런던에서 진리의 계시자로부터 부름을 받게 됩니다. 그 사건 이후 그의 책상에 층층이 쌓여 있던 과학 서적들은 모두 치워지고 오직 성경 책 한 권만 놓여 있게 됩니다. 사람들은 만류하였습니다. 스베덴 보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같은 과학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받은 소명은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다.”
1745년부터 그가 죽은 1772년까지 27년간, 그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드나들며 그 세계에 대한 수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과연 스베덴 보리가 영계靈界에 갔었을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후 12:2) 사도 바울이 이끌려 갔었다는 셋째 하늘에 관한 경험이 바로 스베덴 보리가 한 경험입니다. 다른 점은 스베덴 보리의 경험은 27년간 수시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그의 책들의 내용은 천국에 관하여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천국에 관한 다른 책들과는 달리, 사랑의 하나님의 본질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천국은 이 세상에서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한 보상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만약 종교생활의 열심으로 가는 곳이라면 바리새인들이 가장 먼저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화 있을 진저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바리새인들과 같은 신앙행태로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사람, 자신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남을 살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 하나님은 전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벌 받을까 두려운 사람은 천국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 지옥과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스베덴 보리가 이런 말을 합니다. “지옥은 오직 이기적인 충동과 동시에 두려움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피도 눈물도 없는 이기적인 충동과 벌 받을까 두려운 생각만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도 지옥을 삽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을 두 가지 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신앙생활의 본질은, 영이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고 나또한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며 그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을 돕고 살리는데 신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베풀고 살린 만큼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다가 육체를 벗은 후 그의 삶은 영원한 나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에 의해 인생이 완성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출처] 죽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작성자 다윗의 물맷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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