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실망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진지하게 갈망할 수 없다.”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기록된 말입니다.
모든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이 없이 참된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바로 나를 아는 것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에 불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편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편리하기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주었음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없어질 것을 좋아하며 사랑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너무 편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의 배가 든든해지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대신 자신들의 육체를 만족시켜줄 우상과 놀아났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영적인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가운데 뻔뻔하게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 하늘을 찌른 것입니다.
자신이 살아있는 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알 때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아직 살 만하다는 생각과 부족함이 없을 때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죄의 속성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대면하려는 모든 것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면 참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추악하고 부끄러운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바울 선생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고백하기를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죄인 가운데 가장 무서운 죄를 지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백 번 죽어도 시원치 않은 존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의 추악함과 무지함 그리고 온갖 부끄러움이 다 솟아오릅니다.
마치 잔잔한 시궁창 물을 막대기로 저으면 그 아래 가라앉았던 온갖 찌꺼기들이 올라오듯이
하나님을 대면하면 우리의 찌꺼기들이 다 드러납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돌아보고 하나님을 향해 진지한 고민을 합니다.
칼빈의 말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 실망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사실 인간은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강력하게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고 외칩니다.
끝까지 버티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기력이 쇠해집니다.
부정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지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바로 이때가 절망과 소망의 갈림길입니다.
절망은 자신을 스스로 포기합니다.
해도 해도 안 되는 것을 보면서 자포자기합니다.
인생을 땅바닥에 내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를 정직하게 인식하는 것은 바로 소망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를 알고 실망합니다.
하지만 그 실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망 넘어 들려오는 소망의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마치 사슴이 갈급하여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찾는 것에 갈망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오직 한 길, 구속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통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찾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세상이 추구하는 것들이 배설물처럼 여겨집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잠간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함을 알게 됩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그래, 이것이 바로 내가 소망했던 거야’라고 탄성을 지릅니다.
하나님을 진지하게 갈망하게 될 때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여전히 보이는 것은 동일할지 모르지만 보이는 것을 대면하는 우리의 자세는 새로워집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불완전합니다.
하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삶은 소망이 생깁니다.
창조주와 구속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힘을 불어 넣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열심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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