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는 광야를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긴 설교를 합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전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앞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서 해야 할 구체적인 삶에 대해 설교합니다.
특별히 신명기 28, 29장에 와서 축복과 저주의 설교를 하고 모든 백성들이 한 마음으로 ‘아멘’합니다.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은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결코 함께할 수 없는 것이 축복과 저주입니다.
모세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모든 백성들에게 축복과 저주를 받는 길에 대해 긴 설교를 합니다.
특별히 저주에 대한 설교는 29장에 길게 전하고 있습니다.
축복과 저주는 오직 한 가지 기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바로 말씀에 순종하느냐 아니면 불순종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30장에 와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것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마음과 성품을 다해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인도하여 줄 것이라 선언합니다.
그러나 혹자는 이렇게 항변할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모르느냐고, 그것이 쉬운 일이냐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쉽고 편하게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본 모습입니다.
그래서 과정보다 결과 지상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어떤 방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성장을 위해 매진합니다. 교회가 성장만 하면 됩니다.
성장하면 모든 예배가 용납되고 용서가 됩니다.
그래서 성장하면 목이 곧고 언성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을 전수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이 성공한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 확신합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담는 그릇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항변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을 담는 그릇에 따라 종종 복음이 변질되는 것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예배하고 세워져야 합니다.
이미 종교개혁자들은 우리에게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순교의 현장에서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성경이 교회의 중심이 돼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강단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선배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바르게 설교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를 소중하게 여겼고 설교자를 위해 가장 힘 있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기에 설교자들의 영적인 준비를 위해 정말 열심히 기도했으며
자신들도 말씀을 듣기 위해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세워졌고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모습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말씀을 기다리는 일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점점 설교시간을 줄어들고 조그만 길어도 참지 못하고 심지어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에 졸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기도하지 않은 모습이 예배 시간에 여실히 나타납니다.
말씀이 회복되지 않는데 교회가 회복될 수 없고 사회는 더더욱 변화될 수 없습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세대는 멸망의 세대입니다.
존 낙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지 않는 설교자를 세우는 것은 우상을 세우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엄숙한 선언을 가지고 있다면 설교자와 성도는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강단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농담이나 대중의 입맛에 맞는 설교가 판을 칠 때 교회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사실을 분명하게 주지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성품을 다해 이 일을 지킬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거룩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것은 어려운 것도 아니도 먼 것도 아닙니다.
주의 성령이 늘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과 의지가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끝까지 이끌어 주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것이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멀다고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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