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계속해서 들어야 합니다.
개혁주의 청년 수련회인 튤립 컨퍼런스에 주강사로 말씀을 전하여 주신 서문 강 목사님은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슬픔은 성도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이 능력이 되고, 복음이 생명이 되는데 복음을 듣지 못함으로 복음이 주는 그 영광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바로 복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은 바로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욕 보인 인생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심판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가 온전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 자신 있게 서 있을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의인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불의하기에 진리를 보지 못하고 결국 진노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무서운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진노 아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 자신의 의를 나타낼 수 있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그리 강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까? 공의가 분명할 때 사랑의 위대함을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은 작은 소망도 없습니다. 오직 멸망의 날 만이 주어질 뿐입니다. 인간이 처해 있는 상황이 그러합니다. 소망이 없이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소망이 없습니다. 그렇게 영원한 진노의 불에 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이 처한 상황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죽음만이 남아 있습니다.
율법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소망이 없음을 선언합니다. 율법이 끝까지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율법의 선언 아래 죽게 합니다. 율법에는 그 어떠한 소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는 구원 받을 자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망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죽어야할 피고인에게 죽음을 면하고 다시 살게 하여 주는 것입니다. 사형을 선언 할 재판관이 재판 하려는 순간 그 재판을 멈출 수 밖에 없는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그 증거로 인하여 무죄 선언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심판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받아야 할 모든 진노를 예수님께서 다 짊어 지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로 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가 인간에게 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인간에게 죄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만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전가 된 예수님의 의를 보고 진노를 멈추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바로 하나님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킨 것입니다.
복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죽어야 할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불의하게 살려주신 것이 아니라 공의의 방법으로 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모든 죄가 전가 되게 하시고 그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는 죄로 인하여 형벌에 이르지 않습니다.
이 복음을 믿는 것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사단은 언제나 이 복음이 희석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복음을 들으면 유혹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은 복음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복음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더욱더 애써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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