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어제 한 자매가 30이 넘어가면서부터 나이 드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20대 중반이었을 때 과감하게 도전하였던 것이 이제는 고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인데 나이를 먹는 것이 기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분투하며 살았던 시간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이 좋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과 제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슬프기도 합니다. 육신이 점점 노쇠 하여지는 것을 봅니다. 이곳저곳 문제가 생깁니다.
아내는 이러한 저를 향하여 나이 먹었으니 고치면서 살면 된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합니다.
또한 어린 순수함이 잘 보이지 않음이 또한 슬픕니다.
깨끗한 눈망울이 아닌 흐릿한 모습에 실망을 느낍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향한 첫 사랑의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두고두고 영혼을 울리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고자 하신 말씀은 순수하고 의심 없는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온전히 부모의 품에 있기를 원하고, 전적으로 의존하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말 한 마디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말이든 가슴에 새기고 자신을 돌아봅니다.
온전한 이해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의심 없이 받아들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였던 첫 사랑의 행복입니다.
그런데 나이 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사랑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기를 말씀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멈추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생명 없는 기계가 아닙니다.
신앙은 생명이기에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자라지 않는 것은 생명의 능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어딘가 문제가 있으면 자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능력을 가진 건강한 신앙은 반드시 성장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린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요구되어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나날이 자라나야 하지만 어린아이의 모습을 상실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의 심정을 상실 하면 신앙은 욕구를 해소하는 도구가 되어 집니다.
말씀이 가까이와도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 강력한 무언가를 요구하게 됩니다.
강력함이 없이는 욕구불만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하여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순결한 영혼을 가진 자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기록되고 선포되어진 말씀을 향한 순결하고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봅니다.
우리 시대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정보와 자료들이 널려있습니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보들이 마음에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수많은 정보와 자료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시대는 정보와 자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인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 부재한 것이 슬픔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것은 복된 일입니다.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없다면 충만한 지식은 천국에 이르는데 백해무익합니다.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설교가 홍수처럼 밀려오는 이 시대에 다시금 예수님의 말씀을 상고하기를 바랍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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