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남창우목사

“부활의 주님을 만난 여인들” (마28:1-10)

새벽지기1 2018. 9. 19. 06:28


 “부활의 주님을 만난 여인들”

                                                              

설교일시 : 2018. 4.1

설 교 자 : 남창우목사

성경말씀 : 마28:1-10

 

종교개혁과정에 좌절하여 누워있는 마틴 루터 앞에 그의 아내가 검은 상복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이에 놀란 루터가 이게 무슨 일이야 물으니 그의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기 대문에 당신이 좌절하고 절망하여 이렇게 누워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가 마틴 루터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이에 마틴 루터는 맞다 하나님은 살아나셨지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셨지 말하면서 종교개혁 과제를 이루었다는 역사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가 믿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습니까? 오늘 설교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본분을 보면 여인들이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누우셨던 곳을 확인했습니다. 빈 무덤이었습니다. 평소에 그가 말씀하셨던 대로 살아나신 부활의 현장을 그 여인들이 목격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 여인들이 보인 반응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이런 반응을 보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이 보인 반응을 알아봅니다.

 

첫 번째 반응은 기쁨의 반응입니다.

무서움과 큰 기쁨의 반응입니다. 그 여인들처럼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기쁨의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쁨을 앗아가는 그것을 묵상하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갖고 있는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죽음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해 우리는 답이 없습니다. 철학이나 과학은 답이 못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면 그것이 답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기 때문에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진리가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창조의 역사도 이 부활로 완성이 되었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 이 부활로 완성되었습니다. 답을 알고 길을 아는 우리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죽음을 패배시킨 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이 부활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거나 낙심할 수 없습니다. 해서도 안 됩니다. 이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반응은 경배의 반응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전하기 위하여 기쁨으로 달려가는 여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반응은 경배였습니다. 경배 곧 예배는 부활 하신 주님 앞에 바짝 엎드려 주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경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지금 이 자리에서 만나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 앞에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우리의 경배의 대상을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절이 이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셨다면 너희는 너희의 인생에서 최우선 순위를 부활하신 예수님에 경배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장한 경배의 대상입니다.

 

세 번째 반응은 전도의 반응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여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가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게 하려고 그들은 달려갔습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놀라운 사실을 내 눈으로 보았고 내 삶에 예수님의 부활이 들어왔고 가슴이 뜨거워졌다면 침묵할 수 없습니다. 내가 경험했다면 내가 믿는 것이라면 내가 심령으로 확실하게 붙잡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면, 이 부활로 내 인생의 답을 얻었다면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나가서 전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그 부활이 나의 부활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고 이 사실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가 많은 세상에 답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이 답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입니다. 세상문제의 해결은 우리에게 잠시잠깐의 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만이 궁극적인 답이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 계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말씀 묵상과 믿음의 결단

 

1. 말씀 내용

 

(1-4)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 -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 부활의 첫 증인되는 영광

(5-7) 천사의 명령을 받은 여인들 - 부활하신 예수님 : 말씀의 성취, 구원의 완성, 사단의 권세 깨뜨림, 죽음의 권세아래 종노릇하는 모든 자를 해방,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라.

(8-10)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 - 그들의 반응 : 기쁨 - 죽음을 뛰어넘는 부활의 능력, 경배 - 부활의 주님을 경배, 전도 - 부활의 증인.

 

2. 말씀 관찰 및 묵상

 

1) ‘안식일이 지나고 안식 후 첫날’

‘안식일이 지나고’는 ‘안식일이 다한 후에’라는 뜻이다(막16:1,2 눅16:1). 오늘 날의 ‘주일 새벽’으로 초대교회는 주의 부활하신 날에 모여 주의 부활을 기념하였는데(행20:7,고전16:20) 이것이 점차 안식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처럼 주일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성취됨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성도가 구원의 대열에 서게 됨을 기념하는 날이다(주석 참조)

 

2)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여러 차례 자신의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마12:40, 16:21, 17:23,20:19). 사도 바울은 고전 15:3,4,20에서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하심이요 언약의 성취요 예수님의 성육신의 완성입니다.

 

3) 여인들의 반응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첫 목도자요 부활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음을 목도하였 천사들로부터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부활의 현장을 목도하며 부활의 첫 증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로 예배할 수 있게 되었고 부활의 사실을 전하는 놀라운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4) 사도들의 불신(눅24:1-)

예수님의 부활의 현장을 목도하고 예수님의 명령을 받아 무덤에서 집으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렸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의 말을 허탄한 듯 즉 정신병자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여기고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무덤을 들여다보고 세마포만 남아있음을 목도하고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부재는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슬픈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5) 제자들을 형제라 부르시는 예수님.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는 여인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10)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천사들은 ‘그의 제자들에게’라고 표현하였으나(7) 예수님은 '내 형제들에게‘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형제들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즉 그의 가르침을 따름으로서 그와 다정하고도 친분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데(마5:22;12:49,50;18:15;23:8), 이는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 즉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복음 사역을 감당할 주님의 형제들이 될 것이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서 예수님을 버리며 부인하였고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6)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라.

예수님의 부활의 현장을 목도하고 예수님의 명령을 제자들에게 전달하라는 말씀을 들은 여인들의 모습은 즉각적인 순종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인들이 부활 소식을 전하러 가는 사이 경비병 몇이 모든 되어진 일들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여인들의 즉각적인 순종의 모습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도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3. 말씀 적용과 믿음의 결단

: 부활의 주님을 만난 여인들의 반응과 나의 삶을 비교

 

1)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진리의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음은 오직 주께서 베푸신 은혜 중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처음 대하였을 때 머리를 조아리며 그러한가 하여 생각이 많기고 하고, 그 의미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신화적 사건이요 나와 무슨 관련이 있나 하고 의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나의 마음 가운데 믿음을 더하시므로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요 그 부활의 능력으로 믿음의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다만 그 부활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며 그 기쁨이 나의 삶을 날마다 순간마다 새롭게 하고 있는가 돌아보면 부끄럽습니다. 마음으로 입술로 부활의 주님을 고백하며 살아가지만 삶에 온전히 드러나고 있지 못함은 아픔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과 물질과 사회적 틀을 더 의지할 때가 많음은 저의 믿음의 연약함이요 아직도 나의 자아가 살아있고 나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오만이 나를 주장하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 입술의 고백이 삶으로 드러나길 소망합니다. 그 고백이 예배로 이어지며 삶을 새롭게 하시며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믿음의 순례길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 기쁨을 믿음의 벗들과 나누며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아침마다 묵상 글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하고, 기도하며 함께하는 믿음의 지체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이번 주 믿음의 나눔 파트너인 채수장성도와의 아침 나눔을 통하여 서로를 알아가며 위하여 기도하게 하시며, 병중에 있는 오덕영 집사님을 위하여 기도하며 문자로 전화로 믿음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모든 것이 부활의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2) 바른 예배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주권자 되심을 고백하며 그분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또한 사람의 본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소요리문답의 시작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나의 본분은 그분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여인들이 예수님을 예배하는 모습이 영상을 다가옵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모습이었을까요? 두려움과 함께 감격의 자리였겠고 새 소망이 넘치는 복 된 자리였겠고 무엇보다 부활하신 주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자리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모든 영광을 홀로 받으시는 영광의 시간이며 예배드리는 여인들의 마음 가운데 주님 주시는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복 된 자리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나의 삶이 곧 예배이기를 바라며 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살아가지만 여전히 그 함량을 미달입니다. 나의 존재자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나의 일상의 삶이 주님보시기에 좋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를 지으시고 보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시던 하나님이셨을텐데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살아가며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나의 모습에 주님의 마음을 어두워졌을 겁니다. 다시한번 바라기는 먼저 주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바른 예배자로 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게 하시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며 온전한 예배자로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구해 봅니다. 주님. 도우시옵소서. 예배가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게 하시옵소서! 아멘!

 

3)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삶에 최고의 기쁨이 되며 예수님을 예배하는 것이 나의 삶의 최우선이라면 바로 그분 예수님을 아직 알지 못하는 이웃에게 소개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또 그렇게 전도자로 살아가기를 위하여 기도하기도 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다짐하곤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다짐하며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온전히 그러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아마도 실천적무신론자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때로는 위선자요 자기기만자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며 행함과 진실함이 없이 살아가기도 합니다. 믿고 구하면 들어주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그냥 흘려보내며 살아가며 기도하지 않아도 나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오만한 모습이 나에게 있습니다. 명목적 신앙으로 살아가며 믿음의 본을 보이며 살아가고 있지 못함은 분명 주님의 슬픔이요 나에게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달아났던 베드로를 다시 부르시고 사랑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며 소명의 길을 가게 하신 주님께서 나의 소망이 되심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있는 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시며 쉼 없이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외치시는 그분이 계시기에 오늘을 살아갑니다. 바라기는 주님의 시랑을 입은 자로 그 사랑의 빚을 갚아 나아가며 그 사랑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복음에 빚진 자로서 그 복음의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다짐해 봅니다. 아직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친척들 친구들 이웃들이 많습니다. 기도수첩에 적어놓은 것으로 그치지 않게 하시고 그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마음문을 열기 시작한 형수님, 시한부 생명을 살아가는 종훈이 친구, 기독교에 지독히 거부감을 토로하는 방무창친구, 어릴 적 친구요 내가 크리스찬임을 자랑하는 허기행 허두회 두 친구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말로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길 기도해야겠습니다. 나에게 예수님 만남이 기적 중 기적인 것 같이 그들의 삶에도 생명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주님, 나를 들어 사용하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