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남창우목사

“믿음의 사람은 슬픔을 이긴다” (빌4:4~7)

새벽지기1 2018. 9. 20. 07:19


 “믿음의 사람은 슬픔을 이긴다”

                                                           

설교일시 : 2018. 4.8

설 교 자 : 남창우목사

성경말씀 : 빌4:4~7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앞에 닥친 일 때문에 기쁨을 잃어버리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오늘 나누고 싶은 말씀은 ‘믿음의 사람은 슬픔을 이긴다’ 입니다. 무신론적인 학자인 니이체는많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철학자입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기독교 배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런 그가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는 것은 믿는 사람들 생활 속에서 기쁨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기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기쁘게 산다는 것입니다. 기쁘십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무조건 기뻐해야 합니다. 기쁘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이며 기쁘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은 백성이며 기쁘지 않으면 우리가 왜 여기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나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 빌립보서는 기쯤의 성경입니다. 기뻐하라는 말씀이 18회 나옵니다. 그러니까 감옥에 갇혀 있지만 기뻐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이 감옥 밖에 있지만 기뻐하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지금 기뻐하라고 외치고 잇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기쁘지 않은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으며 내가 기쁘지 않은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기쁘게 살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바울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감옥 안에 있어도 기쁘고 죽음의 그림자가 몰려와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사도 바울이 기뻐하라고 기쁘게 살 수 있다라고 강면하고 있는 그 기쁨의 원천, 그 기쁨의 근거, 그 기쁨의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추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답이 있습니다. 본문을 다시 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 밖에서가 아니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이며, 나의 일의 성공에서가 아니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이며, 자식의 형통에서가 아니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곧 그리스도와 나 사이의 신비한 연합을 말하는 것입니다 친밀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며, 이는 주님과 내가 함께 있고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함께 생각하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 부끄러움이 시위대 뜰 안에 있는 모든 로마 군병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갇히므로 복음이 전해지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보았다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로마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비록 감옥에 있지만 선교사로 보냄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빌1:15-18 말씀을 보면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니...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한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노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자기의 형편과 관계없이 그리스도가 전되고 잇는 것이 그의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비록 죽음의 순간이 다가온다 해도 그 사실을 주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 세상에 오래 사는 것보다 죽어서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지내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빌1;21~ 말씀을 보면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이라...내 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니라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시선과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니 하나님께서는 상황과 관계없이 일하고 계셨으며 비록 감옥에 있지만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기뻐할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감옥의 그 자리가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요 예배의 자라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바라보며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원한 기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우리는 누려야 합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릅니다.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 기쁨입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세상이 가지지 않은 기쁨을 가졌기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뻐해야합니다. 우리 모두 기뻐할 수 있길 원합니다. 주 안에 잇는 기쁨만이 영원합니다. 주 안에 잇는 기쁨만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됩니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늘이 주는 기쁨입니다. 베토벤의 삶 가운데 죽음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이를 견디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기쁨 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기쁨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늘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도 세상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기쁨으로 인한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 봅니다. 이 또한 주 안에 있는 기쁨으로 인한 것입니다.

 

주 안에 있기만 하면 모든 슬픔이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 주 안에 있기만 하면 나의 실패 같아 보이는 것을 승리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 바로 이러한 분이 오늘 이 예배 가운데 계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라면 얼마든지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슬픔 밖에 없는 세상이지만 주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보면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기뻐해야 합니다. 그 기쁨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말씀 묵상과 믿음의 결단

 

 

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4절)

 

- 말씀 관찰 및 묵상

: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온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서로 기뻐하는 덕을 세울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뻐하라’는 현재 능동형 명령법인데, 따라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현재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실제적으로 감옥에 갇혀있는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삶의 본을 보였고 이렇게 빌립보 교인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생명의 원천이시며 진리의 길이 되시기에 주님께서 우리의 삶의 근거가 되시며 기쁨의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생명을 유지 할 수 없듯이 주님을 떠나서는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성서교재간행사 주석과 참조)

 

- 말씀 적용과 믿음의 결단

: 옥중 서신을 읽을 때마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성경 구절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인간의 가장 신비한 연합을 통한 은혜의 선물임을 깨닫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분명 나의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이기에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바울이 얘기하는 참 기쁨을 일상의 삶 가운데서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주 안에 있다는 현존의 믿음의 고백이 있느냐의 하는 것인데 비록 연약하고 허물이 많지만 주님께서 베푸시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누리고 있음에 감사하며 그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그리고 예배와 믿음의 교제 가운데, 주님의 기쁨 된 일을 감당하여 나아갈 때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 또한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2.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5절)

 

- 말씀 관찰 및 묵상

: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항상 기뻐하는 것의 첫 번째 방법으로 관용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관용은 박해에 대한 온유,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자에 대한 용서, 감정의 전적인 절제 등을 의미하고 있는데, 이러한 관용의 자세를 가질 때 비로서 성도들은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성도들이 관용의 자세로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실천 가능한 관용의 요구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가함으로서 성도들이 관용의 자세를 가져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말씀 적용과 믿음의 결단

: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진리의 말씀이 나의 고백이 될 수 있음은 오직 주님의 주권적인 은혜 베푸심의 결과입니다. 나의 삶 가운데 일어난 최대의 기적입니다. 이러한 나의 삶에 일어난 주님의 은혜의 역사하심 따라 주님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데 가장 큰 변화는 나의 마음 가운데 관용의 성품이 자라고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의 기쁨의 삶 가운데 관용이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만이 나의 생명이요 삶의 동기일진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는 바로 그 이웃에 대한 나의 시선을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주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한다는 생각이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사랑의 강권하심입니다. 나의 선한 이웃이 누구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의 선한 이웃이 되느냐의 관점의 변화입니다. 관용은 용서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들과 막한 담이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행여 나의 좁은 마음이 담을 쌓고 있는 것은 아난지 돌아봅니다. 병중에 있는 이웃들을 위하여 기도해야겠습니다.

 

 

3.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아뢰라(6절)

 

- 말씀 관찰 및 묵상

: 바울은 항상 기뻐하는 두 번째 방법으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염려’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에 대한 의심이며 신뢰의 결핍으로 기쁨의 최고의 적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염려의 해결책으로 기도와 간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감사함’은 기도의 필수조건으로 기도 응답의 확신과 하나님의 뜻에의 순종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일 기도에 감사가 배제된다면 그 기도는 기도를 빙자한 염려와 원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 말씀 적용과 믿음의 결단

: ‘염려’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에 대한 의심이며 신뢰의 결핍으로 기쁨의 최고의 적이라는 글 앞에 마음을 곧추세워 봅니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염려 속에 살아왔는지, 얼마나 믿음 없는 자로 살아왔는지 부끄럽습니다. 믿음의 관점이 아닌 나의 생각이나 파편화된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았던지요. 마치 하나님이 아니 계신 것처럼 살아가며 하나님을 귀머거리요 눈먼 하나님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나의 작은 마음의 감옥에 가두고 살아왔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지요.

 

그러한 중에도 주님께서 끊임없이 나의 마음 문을 사랑으로 두드려 주시고 마음을 다스려 주셨던지요. 오늘의 나는 비록 죄와 허물이 여전하지만 그래도 주님의 은혜로 나를 해석할 수 있게 하심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염려거리를 기도거리로 바꾸어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심은 오직 주님의 사랑의 역사입니다. 지난 해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던 이중원집사와의 짧은 만남은 참으로 소중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의 모습을 보게 하셨던 그분과의 몇 차례 만남은 소중한 믿음의 자산으로 남아있습니다. 김희자권사와 귀한 두 딸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았던 사도 바울의 권면을 마음에 새기며 남은 날들을 믿음으로 살아내야겠습니다.

 

 

4.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7절)

 

- 말씀 관찰 및 묵상

: 염려를 버리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를 하게 될 때 오는 결과로 하나님의 평강을 얻게 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은 ‘하나님의 평강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싱의 것’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평강이 인간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말씀에서 ‘마음’은 의지와 감정, 지각 등의 중심을 말하며, ‘생각’은 판단이나 지혜의 출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키시리라‘는 ’망을 보다‘’지키다‘라는 의미의 미래 능동태 직설법으로 ’호위하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을 이룬 자에게만 임하는 특별한 은혜의 선물임을 의미합니다.

- 말씀 적용과 믿음의 결단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나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며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아름다운 믿음의 꿈을 꾸어 봅니다. 분명 나의 생각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신비에 속한 샬롬을 나에게 부어주시리라 믿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분명 지금은 희미하여 아주 작은 맛만 보고 살아가고 있지만 주님의 때가 되면 눈으로 보며 귀로 들으며 손으로 만지며 그 평강을 누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미 이 땅에 임하였고 나의 마음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비록 작지만 순간마다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분명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줄 수도 없는 평안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누린 그 기쁨의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그 작은 기쁨이 이렇게 크게 다가올진대 온전히 그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그 날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나를 부인하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 비록 고난 중에라도 이 기쁨과 평안을 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