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피리를 불어도 곡을 해도 반응이 없는 세대!(마11:16-24)

새벽지기1 2018. 3. 6. 07:46


피리를 불어도 곡을 해도 반응이 없는 세대!(11:16-24)


본문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20.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해석과 설명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16)

이 세대란 예수님 당대를 의미한다.

이 말씀은 당시 예수의 복음을 들어도 반응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표현한 것이다.


피리를 불어도...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17)

이는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잔치(결혼식) 놀이장례 놀이를 하는 비유다.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는 잔치 놀이를 할 때 두 패로 나누어서 한쪽에서 피리를 불면 다른 한쪽은 춤을 추어야 하는 데 반응하지 않은 모습과 또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은 장례 놀이를 할 때 한쪽에서 곡을 하면 가슴을 쳐야하는데 역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모습을 통해 당시 세레 요한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을 질책하신 것이다(근거 18).


요한이...귀신이 들렸다 하더니’(18)

이는 예수님께서 보신 요한의 선포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이다.

처음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3:2)라고 선포했을 때는 유대인들이 요단강에 나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요한을 귀신 들린 사람취급을 하면서 그의 메시지를 무시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19)

인자는 복음서에서 예수님 자신을 표현하실 때 자주 사용하신 호칭이다.

먹고 마시매는 예수님의 사역을 폄하했던 유대인들의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자주 잔치에 참여하셨으며,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잡수셨고심지어 창기와 세리등 사회 소외 계층을 차별하지 않고 함께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삶을 음식을 탐하는 자’ ‘포도주를 즐기는 자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매도했던 것이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19)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폄하와 매도에 대한 예수님의 대응이다.

여기서 지혜는 요한이 전했던 회개의 선포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선포하셨던 모든 사역을 통칭한다.

다시 말해서 요한의 선포로 많은 사람이 회개했고,

예수님의 선포를 통해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던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 ’(21)

이유-20.

본문에 화 있을진저라는 단어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한다.

문학적으로도 반복을 통한 강조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화 있을진저는 단순히 저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애도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

, ‘저주를 통한 심판에 대한 애도를 의미한다.

왜 이러한 저주가 그들에게 임할까?

그것은 20절에서 설명하시고 있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책망하신 것이다.

고라신은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벳세다는 갈릴리 호수 북동쪽 연안에 위치한 마을이다.

특히, 벳세다는 베드로와 안드레와 빌립의 고향이기도 하다.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은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고라신과 벳세대 지역에도 복음을 전하셨지만 듣지 않았다.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21)

두로와 시돈은 팔레스틴 북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 페니키아(뵈니게)의 두 항구다.

두로BC2750년경, ‘시돈BC1400년경 건설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두 도시는 무역과 항해로 대단한 부와 향락을 누렸던 도시였으며,

바알을 비롯한 이방 우상을 숭배한 이교 도시였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어김없이 책망의 대상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23:1)”

이는...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47:4)”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도다(9:3)”

내가 두로 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1:10)”

이렇게 향락과 타락을 상징하는 두로시돈을 비유하여 고라신벳세다회개하지 않는유대인들 책망하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22)“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23)

가버나움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사역 중심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듣지 않았다.

가버나움의 이런 태도를 교만으로 보셨던 것이다.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이 말씀의 의미가 그렇다.

그리고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그리고 고라신과 벳세다두로와 시돈에 비유하셨던 것처럼,

가버나움을 죄악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고 멸망한 소돔에 비유하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24)

 

교훈과 적용

 

본문에서는 두 가지 교훈을 받는다.

첫째, 우리 시대가 바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세대다.

바로 지금 이 시대가 그렇다는 것이다.

앞에서 마10:16-23 말씀을 나누면서 박해보다 더 큰 장애는 무관심이다라고 했다.

오늘 이 시대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게 된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1:12)“

2천년이 지난 지금 백성들도 어쩌면 그렇게 똑 같을까?

아니 그 보다 더 심령이 강퍅해졌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있다.

우리는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세대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자들이기 때문이다.

참 무거운 사명감이며 부담감이다.

 

둘째, ‘고라신벳세다가버나움이 바로 지금 이 시대라는 것이다.

본문에서 유의할 것은 고라신벳세다가버나움이 등장했다고 해서

이 세 도시만 책망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책망이며

나아가 지금 우리 세대에 대한 책망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