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주를 따르라 (요한 복음21:15-23)

새벽지기1 2017. 10. 11. 07:0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21:22)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신 디베랴바다 근처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요한 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물어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사실을 기억할 때에 다른 말을 물어보았으면 어려웠겠지마는 아무리 실수한 베드로도 자기 중심을 더듬어 볼 때에 예수를 사랑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래서『주여 제가 주를 사랑합니다. 주께서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 아십니다.』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세 번 묻고 세 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베드로가 젊었을 때에는 임의로 그가 자기 띠를 띠고 그가 가고싶은 곳을 갔지마는, 베드로가 나이 많아서 늙어질 때에는 이미 그가 자기 띠를 띨 수 없고, 사람들이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그를 데리고 가겠다고, 다시 말하면 마지막에 순교로써 믿음을 증거 할 사실을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몬 베드로에게 주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그 옆에 있는 요한을 보면서 그에 대한 장래는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 가운데서 묻기를『주여 이 제자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그 때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그는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세상에 혹 남겨둔다고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 잇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다른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을 상관할 것 없이 주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주를 따르라고 하는 말씀을 이번 처음 들은 말씀은 아닙니다. 약 삼 년 전 역시 갈릴리 바다에서 동생 안드레와 같이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잡을 때에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나타나셔서『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시몬과 안드레가 배와 그물을 그냥 자리에 버려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것입니다.
그 후에도 따르라고 하는 말씀을 들은 기억이 있을 줄 생각합니다. 그것은 가이사라 빌립보 지경에서 베드로가 과연 예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한 고백을 한 후에 장차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하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을 미리 말씀하시면서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예수 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밖에도 종종 따르라고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령 요한 복음 8장 12절에 보면『나는 세상의 빛이니「나를 따르는 자는」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 복음 10장 27절에『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주의 양은 자기를 따른다고 말씀했습니다. 요한 복음 12장 26절에 보면『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주를 따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따르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가장 자주 하신 말씀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주를 따르는 생활」입니다.「나를 따르라」고 하는 이 말씀을 가만히 생각할 때에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어떠한 지도자시며 어떠한 구주이신가 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선생과 같이 이런 길은 옳은 길이고 저런 길은 그른 길이니까, 그른 길을 버리고 저 길이 옳으니 옳은 길을 가라고, 단순히 옳은 길을 가르치는 선생만은 아닙니다. 자기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제자들에게 선악을 분간해서 지시하는 교사만은 아닙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앉아서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고 먼저 앞서 가면서, 주가 먼저 이 길을 가면서 이 길이 옳은 길이므로 주가 이 길을 가니 우리들에게 주를 따라 오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그리스도는 보통 지도자가 아니라, 선구자요, 개척자요, 실제적 지도자인 것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친히 오셨습니다. 오시되 마구간에서 나셨습니다. 한 살이 되자마자 멀리 애굽까지 갈 수밖에 없는 피난 생활의 쓴맛을 부모와 같이 당하신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나사렛 목수의 가정에서 자라나면서 이마에 땀을 흘려 수고하고 일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수고와 빈궁의 괴로움과 육체 노동의 모든 어려움도 친히 당하신 분입니다. 자기가 많은 사람과 같이 친히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가서 40일 주야를 금식하면서, 그 굶주림의 괴로움과 악한 마귀의 모든 시험을 친히 당하시고 그 시험을 승리하신 것입니다. 친히 사방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주린 자를 먹여주시고, 슬픈 자를 위로하여 주신 것입니다. 자기를 중상하고 자기에게 대하여 모략하고 여러 가지로 시험하고 갖은 괴로움을 준 바리새인, 사두개인, 헤롯당의 모든 괴로움을 친히 당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친히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친히 골고다의 언덕길을 올라가셨습니다. 마지막에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친히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사망의 고통을 친히 당하셨습니다. 장사한 바 되어서 음부에 들어갔습니다. 마지막에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 부활하셨습니다. 승천까지 하셨습니다.


금까지 영원히 살아 계시면서 내가 인생의 모든 길, 쓴 길, 단 길, 모든 길은『내가 친히 걸어가고 내가 친히 체험 했은즉, 이제는 너희들은 나를 따라오너라.』예수께서 외치는 것입니다. 자기가 친히 가보신 길을, 자기가 친히 승리하신 길을, 자기가 걸으신 길을 앞서 가시면서 오늘날 모든 믿는 사람을 향해서『너희들은 나를 따라오너라. 이것이 진리의 길이오, 이것이 선의 길이오, 이것이 승리의 길이오, 이것이 영원의 길이다.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따라온다고 하는 말, 따라간다고 하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처음에 시몬과 안드레가 주를 따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를 때에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입니까? 배를 버렸습니다. 고기 잡던 그물을 다 버렸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떠나서 예수를 따라가기를 시작했습니다. 따라가려고 하면 먼저 있던 곳을 떠나야 됩니다.
엘리사가 소 열두 겨리로 밭을 갈다가 엘리야의 부음을 받고 소를 모두 내어버리고, 소 한 겨리는 잡아서 연장을 불사라서 고기를 삶아서 다른 백성들에게 나누어 먹이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따라갔습니다. 따라가려고 하면 있던 곳을 먼저 떠나야됩니다.
전에 룻이라고 하는 젊은 여자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갈 때에 모압 땅을 떠났습니다. 기독교가 전도자의 부름을 듣고 천성을 향하여 나아갈 때에 장망성을 떠났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지도를 따를 때에 애굽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에 갈대아 우르와 하란과 친척과 고향과 친지가 있는 곳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려고 하면 내가 본래 있던 그곳을 떠나는 것이 첫 걸음이올시다. 다시 말하면 죄악의 자리에서 떠나는 것이 예수를 따르는 첫 걸음이올시다.
죄악의 사상, 죄악의 언행, 죄악의 생활, 죄악의 습관, 죄악의 친구, 죄악의 직업(직업이 악하면) 죄악의 오락에서 먼저 떠나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죄악의 자리에 그냥 앉아서 예수를 따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이것을 성별(聖別)이라고 합니다. 거룩하니 구별되어야 될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첫 걸음은 있던 자리를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따른다고 하는 말은 동행을 의미합니다. 같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거를 의미합니다. 동거동락(同居同樂)을 의미합니다. 함께 고통을 받고, 함께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께서 갈 때에 같이 가고, 설 때에 같이 서며, 산을 넘으면 같이 넘고, 물을 건너면 같이 물을 건너는 것을 의미합니다.
룻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했거니와 나오미가 모압 땅을 떠나서 자기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 시작할 때에 며느리 둘이 따라갔습니다. 하나는 오르바요 하나는 룻입니다. 다 나오미를 따랐지마는 나오미가 강권해서 돌아가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오르바라고 하는 며느리는 돌아서서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그 말을 종내 듣지 않고 나오미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성경에 있는 그대로 읽을 터인데 여러분 들어보세요.『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는 곳이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입니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이것이 진정으로 따른 자의 심정입니다. 진정으로 따르는 자의 마음의 태도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를 때에도 이렇게 따랐습니다. 엘리야가 길갈에 가니 길갈에 좇아갔습니다. 벧엘에 가니 벧엘에 좇아갔습니다. 이제는 집으로 가라고 아무리 강권하지마는 그냥 따라갔습니다. 여리고로 가니 여리고로 따라옵니다. 요단을 건너니 요단을 따라옵니다. 그냥 따라옵니다. 강이 있어도 강을 건너서 그냥 따라옵니다. 그 결과는 엘리야가 승천할 때에 내어버린 엘리야의 겉옷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따르는 자의 태도입니다.
예수님 제자들도 이렇게 예수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옴에 갈 때에 가버나옴에 갔습니다. 나사렛에 갈 때에 나사렛에 갔습니다. 여리고에 갈 때에 여리고에 갔습니다. 예루살렘에 갈 때에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가실 때에 겟세마네 동산에 갔습니다. 골고다에도 멀리 따라갔습니다. 이것이 진전으로 따르는 생활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활은 어떠한 생활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하지 아니하시는 주님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 끝날 때까지 주가 우리와 같이 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는 내 안에 있으라, 내가 너희 안에 있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생활은 예수와 같이 우리의 심령이 항상 같이 동거하는 동거동락(同居同樂)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집에 있을 때에도 주님과 같이 있고, 거리에 나갈 때에도 주님과 같이 길을 걷고, 사업을 할 때에도 주님과 같이 하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주님과 같이 음식을 먹고, 친구와 놀 때에도 주님과 같이 놀고, 저녁에 잘 때에도 주님과 같이 영적으로 동행하는 그 생활이 예수를 따르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따른다고 하는 것은 학습을 의미합니다. 배우고 본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르려고 나오미의 믿음을 배웠습니다. 나오미의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나오미의 일을 배웠습니다. 그저 따른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면서 엘리야의 믿음을 배웠습니다. 엘리야의 열심을 배웠습니다. 엘리야의 참된 헌신을 배웠습니다. 그냥 따른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르면서 엘리야를 배웠습니다.
제자들도 주임을 따르면서 그저 따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배웠습니다. 예수의 사상을 배웠습니다. 예수의 성품을 배웠습니다. 예수의 생활을 배웠습니다. 모든 옳은 진리를 배웠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시나 또한 강하시고 담대하신 그리스도의 성품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을 듣던 요한 이 사랑의 사도로서 변한 것을 우리는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하시고 깨끗하시고 봉사의 희생의 생활을 배웠습니다.


오순절 후에 제사장들이 요한 과 베드로를 데려다가 책망하면서 예수를 다시 전하지 말라고 위협할 때에 베드로 요한 이 담대히 하는 말이『우리가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어떠한 도리가 없으니까 책망하고 내어 보내면서 자기네끼리 하는 말이『아, 이 사람들이 본래 불학 무식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어디서 이런 지혜와 이런 담대한 것을 배웠느냐.』그들은 그후에 과연 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감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크게 놀랐다고 하는 사도행전의 기사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예수를 배우게 됩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꽃은 점점 아름다워집니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또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넷째로 동역(同役)을 의미합니다. 같이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함께 행하면 함께 일합니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만 다닌 것이 아닙니다. 나오미와 같이 일했습니다. 같이 밥도 짓고, 바느질도 하고, 이삭도 줍고 일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그냥 따라다니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일할 때에 같이 일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를 본받아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고, 예수님과 같이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하신 일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간단히 생각하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전도의 사업입니다.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둘째는 교육 사업입니다. 예수 님께서는 항상 가르쳤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깊은 종교의 진리와 도덕의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로 가르쳤습니다. 셋째는 봉사의 사업입니다.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가난한 자를 도와주시고, 모든 불쌍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 사업은 오늘날도 주님께서 살아 계셔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지금도 교육 사업을 하십니다. 지금도 봉사 사업을 해서 여러 가지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은 예수와 같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따라간다고 말만 하면서 전도하지 아니하고, 가르치지 아니하고, 주일 학교도 돕지 아니하고, 기독교 교육 사업도 돕지 아니합니다. 예수를 따라 간다 하면서도 불쌍한 사람 도와주지 아니하고, 의료 사업이나, 고아 사업이나, 양로 사업이나, 모자원 사업이나, 피난민을 구조하는 것이나, 이런데 실지로 협력하지 아니합니다. 그냥 있는 사람이면 말만 따라가는 것이지 실상은 따라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라 간다고 하는 말은 예수와 같이 일한다고 하는 말입니다.
특별히 가을을 당해서 주일학교에서도 배가 운동을 하는 중입니다. 남녀 전도회와 면려회(勉勵會)에서도 배가 운동을 하는 중입니다. 이런 모든 일에 함께 손을 잡고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 실상 예수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예수를 따라 간다고 하는 것은 이 네 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가 있던 죄악의 곳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고, 둘째는 행동하면서 동거동락 하는 것을 의미하고,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배우는 것을 의미하고, 넷째는 그리스도와 같이 사업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아침에 깊이 스스로 반성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과연 예수를 따르는가? 겉으로만 예수를 따르고 속마음으로는 세상을 따르는가? 따르는 것에 조심하세요. 20여 년 전에 독일에는 히틀러가 나타나고, 이탈리아에는 무솔리니가 나타나서 눈을 부릅뜨고 호령을 하니까 여기에 영웅이 나타났고,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나타나서 눈을 부릅뜨고 호령을 하니까 여기에 영웅이 나타났다, 여기에 호걸이 났다. 여기에 지도자가 났다고 합니다. 많은 독일 사람이 히틀러를 따라 가고, 이탈리아 사람이 무솔리니를 따라가더니 마지막에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칼 마르크스를 따라가며, 스탈린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래지 아니해서 망할 것입니다. 누구를 따릅니까? 여러분의 영혼의 목자가 누구입니까? 누구를 따르렵니까?


『너는 나를 따르라.』여기에서「너는」하는 말을 분명히 들으세요. 예수 께서 여러분 하나 하나에게 하시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따르기는 따르겠는데, 내 친구는 어떻게 되겠는가, 나의 그 '아무개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다른 사람을 걱정합니다.『다른 사람은 이렇게 안 하는데…』남 생각할 것 없습니다.『너는 나를 따르라.』
여러분, 자신이 예수 님을 따릅니까? 여러분, 찬으로 예수 님을 따르려면 끝까지 따르세요. 겟세마네까지, 골고다까지, 부활의 아침까지, 아니 심판대까지, 하늘 나라에까지, 끝까지 따릅시다. 할 수 있는 대로 일찍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어려서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 특별히 청소년들, 아직까지 따르기 시작하지 아니했으면 오늘 아침 이 신간부터 따르세요.
두 주일 후에 성례 주일로서 학습을 세우고 세례를 베풀겠습니다. 학습을 서고 세례를 베푸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너는 나를 따르라.』기도하십시다. (1959년 10월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