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_간증주일_ (이사야 60:1-3,19-20)

새벽지기1 2017. 10. 7. 05:59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제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옛날 시온을 향하여 외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세기를 통하여 신령한 시온이 되는, 곧 그의 교회를 향하여 같은 말씀을 외치십니다. 간증 주일로 모인 우리에게 이 아침,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친히 우리 심령 속에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일어나라」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성경에 보면, 세 가지 종류의 사람에 대하여 일어나라고 외친 것입니다. 첫째는 죽은 사람들, 둘째는 병든 사람들, 셋째는 자는 사람들입니다.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향해서 예수께서『청년아 일어나라.』부르짖을 때에 죽은 청년이 일어났습니다. 죽은 야이로의 딸을 향해서『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고 외칠 때에 죽은 어린 소녀가 일어나 앉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두 가지 종류의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죽음, 또 하나는 영의 죽음입니다. 육신이 죽었으나 영이 살 수도 있고, 육신은 비록 살았으나 영이 또한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죽은 육신을 살리신 예는 세 번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이적을 예수 님께서 특별히 몇 번 행하신 것은 예수님은 생명으로서 죽은 육신도 살릴 수 있는 권능이 계신 것을 나타내실 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죽은 심령을 살릴 수 있는 권능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이와 같은 특수한 이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근본적인 사명은 죽은 영을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모르는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본이 되시는 까닭으로 하나님을 떠난 그 영혼에게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이와 같은 죽은 심령을 향해서 일어나라고 지금도 외치는 것입니다.『죽은 자여 일어나라. 주께서 네게 비치시리라.』


우리가 에스겔 선지자가 본 해골 골짜기에 대한 이상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큰 골짜기에 해골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어떻게 뼈가 말랐든지 희게 되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렇지마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이 해골을 향해서 일어나라고 외칠 때에 이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이 되고 힘줄이 생기고 피부가 생기고 일어나서 새로운 생명이 될뿐더러 이 사람들로 말미암아 큰 군대가 되는 이상을 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으로 말미암아 해골과 같이 죽은 심령이 새로운 생명을 얻어서 부활하고 소생하겠다고 하는 사실의 예언인 것입니다. 죽은 심령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심령을 향해서 일어나라고 예수님께서는 외칩니다. 예수의 이 음성을 듣고 사실 그 음성에 순복하는 심령은 새로이 부활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병든 자를 향해서 일어나라고 외쳤습니다. 베데스다 못 가에서 38년 된 환자를 주님께서 보시고 일어나라고 부르짖을 때에 그 환자가 일어났습니다. 가버나움에 계실 때에 네 사람이 메고 온 반신불수를 향해서 일어나 그 상을 가지고 가라고 외칠 때에 반신불수가 일어나서 자기가 누웠던 상을 가지고 걸어간 것입니다. 병든 자들을 예수님께서 일으켜 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단순히 육신의 어떤 곳에 병이 남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도 고통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민망한 생활을 계속하던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영혼도 병든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주 떠나지는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아주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마는 그 심령 속 어떤 자리에 병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탐심의 병이 들었습니다. 교만의 병이 들었습니다. 시기의 병이 들었습니다. 혹은 원한의 병독(病毒)이 있습니다. 혹은 허영심, 혹은 좋지 못한 악한 습관, 혹은 혈기, 사람을 따라서 어떠한 특수한 약점과 그 심령 속에 속을 썩이는 병 때문에 일할 수 없고, 일어날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서 무용의 장물이 되는 영혼이 없지 않아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음성에 순복해서 일어나면, 예수님께서는 그 병을 고쳐주시고 주를 위해서 활동하는 쓸데 있는 자녀로 삼을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는 자는 자들을 일어나라고 성경에는 기록했습니다. 전에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의 사명을 거역하고 멀리 다시스로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배 밑에서 깊은 잠이 들은 것입니다. 그 때에 마침 그 바다에는 큰 풍랑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황겁(惶怯)해서 자기의 신을 향해서 외칩니다.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배 밑에서 그냥 잠자는 것을 선장이 발견했습니다. 요나의 옆에 와서 부르짖는 말이『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 네 신께 구하라.』자는 요나를 깨웠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한번은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를 하시건만 제자들은 피곤한 가운데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잠자는 제자들에게 와서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외치는 말씀이『일어나라, 함께 가자.』자는 제자들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람들의 영혼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병이 든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자고 있습니다. 자는 사람들은 자기의 주위에, 자기의 환경에 어떠한 변동이 일어나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자는 사람들은 자기의 의무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환경도 모르고 자기의 의무도 모르고, 죽지도 않고, 병도 안 들었지만, 자는 심령이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심령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부르짖습니다.『자는 자여, 일어나라.』오늘날 우리 가운데 그 영혼이 아주 죽지는 아니했지만, 혹은 그 영혼이 어떠한 병도 없지만, 단순히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헤아릴 줄 모르고 자기의 의무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자는 가운데 혼수 상태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영혼이 있습니까? 오늘 아침, 주님의 이 음성을 듣고 일어나는 심령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께서 시온을 향해서 외치는 말씀은 이 말씀입니다.『빛을 발하라, 일어나라.』고 하는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달은 본래 발광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태양의 빛을 받아서 그 빛을 반사합니다. 우리도 사실 우리 자신에는 빛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우리도 빛을 반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도 빛을 발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빛이니…」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빛이 있습니다. 내게는 본래 빛이 없으나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빛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진리의 빛을 우리는 받았습니다. 곧 영적 지식의 빛을 우리는 받았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공부를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 보기에는 무식한 사람 같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못하는 영적 지식의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크게 공부는 못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우주의 근본 뜻을 깨닫고 삽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인생의 깊은 뜻을 파악하고 삽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내세의 빛을 엿보고 삽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크게 다른 공부가 없다고 할지라도 이 우주에 살아 계신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것을 압니다. 그 아버지는 사람의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구주임을 압니다. 또한 우리는 성신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감화시켜서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성신의 능력을 또한 압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이렇게 속죄의 진리의 빛을 받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이 진리의 빛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이 진리의 빛을 통해서 우리는 생명의 빛을 받았습니다. 참 생명은 어떤 것이냐? 참 생명은 어떻게 표현되느냐? 인생의 참으로 갈 길이 어떤 길이냐? 도덕의 참된 빛을 우리는 역시 받은 것입니다. 이것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보여 주시는 참된 생명을 통해서 참 인생의 길이라고, 진신의 길, 순결의 길, 봉사의 생의 길, 다시 말하면 사랑의 길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 믿는 사람은 다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의 빛 뿐 아니라 생명의 빛을 받은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믿는 사람들만 특별히 생명의 빛을 받았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아무리 타락하고 또 썩은 자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에게 나오면 중생해서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역경을 당하고 아무리 여러 가지 환난과 재난이 우리 앞에 올지라도 하나님과 같이 할 때에 이 모든 것도 변화해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아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육신이 다 늙어져서 우리의 육신이 땅 속에 묻힐 때에도 영원한 소망의 빛이 우리 머리 위에 떠올라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는, 썩어지지 아니하는 생명의 빛을 우리는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어떻습니까? 여기, 둘째 절에 기록한 바와 같이 이 세상은 어두움에 덮였습니다. 캄캄함이 온 골짜기를 덮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시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형편을 살펴보세요. 무엇보다도 진리의 빛이 없으니까 무지의 암흑한 구름이 그들을 덮고 있습니다. 물론 과학적 지식이 있지요. 여러 가지 철학적으로 사상하는 지식도 많이 있지요. 그렇지마는 이와 같은 많은 지식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은 사람은 참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참 하나님을 찾지 못한 그 결과는 조물주를 숭배하는 것보다도 피조물을 숭배합니다. 나무를 숭배합니다. 돌을 숭배합니다. 물질을 숭배합니다. 사람을 숭배합니다. 뱀을 하나님으로 숭배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사람의 심령을 덮은 어두운 구름을 헤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지의 캄캄한 구름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더욱 암흑한 죄의 구름으로 화하고 맙니다. 사람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를 때에, 창조주보다도 피조물인 것을 인간 생활의 절대의 대상으로 알고, 그것을 숭배하고 그것을 탐구할 때에도 그 가운데는 여러 가지 다른 죄악이 나타납니다. 욕심과 탐심으로 모든 싸움이 일어납니다. 음란과, 방탕과, 살인과, 강도와, 자살과, 온갖 죄악의 어두운 구름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심령을 덮고 말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사람에게도 결국은 소망은 없습니다. 슬픔과 절망의 구름이 그들의 심령을 덮고 있습니다. 역경을 당할 때에 역경을 돌파할 힘이 없습니다. 타락한 사람들이 소생할 길은 찾지 못합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악한 사람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집니다.


절망의 암흑한 구름이 온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세상에서 진리의 빛을 받은 사람들, 생명의 빛을 받은 사람들, 소망의 빛을 받은 사람들을 향해서『너희는 그들에게 빛을 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빛을 발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등불과 같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방 안에 켜놓은 작은 등불은 그 빛이 그렇게 밝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방안은 환하게 밝게 비칩니다. 우리의 빛이 그렇게 크지 못해서 밖에까지는 나가지 못하지만 내 방 안에서, 내 가족에게 참 빛을 비칠 수 있고, 내 친척에게 그 빛을 비칠 수 있고, 내 이웃에게 이 진리의 빛과 생명의 빛과 소망의 빛을 비칠 수 있으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찬송가에 있는 말과 같이 천사같이 말 못하고 바울 같이 못하나 내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물론 부족합니다. 등대와 같이 빛을 비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바다 옆에 있는 산 위에 세워진 높은 등대에서는 빛을 멀리 투사(投射)합니다. 그래서 캄캄한 밤 노한 물결에 갈 길을 잃은 여러 배들에게 갈 길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이와 같은 등대와 같이 불을 비취는 것이 또한 귀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가 노방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문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방송전도를 해야겠습니다. 전도 인도 사방에 파송해서 전도도 해야 되겠습니다.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기로 해야 되겠습니다. 등대와 같이 우리가 빛을 비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 보다도 더 귀한 것은 무지개와 같이 빛을 비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여름 하늘에 캄캄한 구름 위에 나타나는 무지개야말로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신비스럽고 얼마나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무지개가 무지개 되는 원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별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구름 사이에 있는 작은 물방울, 그 작은 결정체가 햇빛을 받아서 빛을 분석해 줍니다. 분석해서 혹은 청색, 혹은 녹색, 혹은 적색 여러 가지 다른 빛깔로 분석해서 우리에게 찬란한 광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가 과연 내 심령이 온전히 신앙의 결정체라고 한다면 내 심령 위에 그리스도의 빛이 미칠 때에 그리스도의 빛을 분석해서 반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은 곧 성신의 빛입니다. 성신의 빛이 어떻게 분석되어서 반사하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과연 내 몸이 온전한 신앙의 결정체라고 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빛을 내 신앙이 분석해서 혹은 사람으로 나타나고, 혹은 희락으로 나타나고, 혹은 화평으로 나타나고, 혹은 인내로 나타나고, 혹은 자비로 나타나고, 혹은 양선, 혹은 충성, 혹은 온유, 혹은 절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전 생활이 신앙의 결정체가 되다고 하면 그리스도의 빛이 내 몸에 비칠 때에 반드시 이와 같은 분석으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기는 여기 앉으신 여러분 하나 하나가 신앙의 결정체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무지개와 같이 찬란히 반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걸은 더 나아가서 과 같이 빛을 비쳐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별은 멀리 있습니다. 먼 밤하늘에 은은히 비치는 별 빛은 그 자체가 얼마나 신비하고, 얼마나 숭고하고, 얼마나 감화력이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별은 우리에게 말을 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언의 큰 감화를 우리 인간의 심령에게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신앙을 기초로 한 인격이 높고 또 높고 우리의 신앙을 기초로 한 생활이 깨끗하고 더 깨끗해져서 하늘의 별과 같이 우리의 인격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무언의 설교를 할 수가 있고 무언의 전도를 할 수가 있으면 이에서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전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오래 하나님과 대면하다가 내려올 때에 그 얼굴이 빛이 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감히 그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는 출애굽기의 기사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서 우리의 인격과 우리의 생활이 그만큼 고상한 자리에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빛을 사방으로 비칠 수가 있으면, 이에서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죽은 영혼도 일어나십시다. 병든 영혼도 일어나십시다. 잠자는 심령도 일어나십시다. 그래서 들불이 되고, 등대가 되고. 무지개가 되고, 밤하늘의 별이 되어서 이 캄캄한 세상을 빛으로 화하는 축복이 여기 앉은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959년 9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