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다윗의 죄와 그 벌 (사무엘 하12:1-15)

새벽지기1 2017. 9. 28. 06:22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삼하12:13-14)

예수께서 여리고로 지나가실 때에 한 소경이 앉아서 구걸하다가 예수 님이 지나가신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부르짖으며『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가운데 가장 유명한 분입니다.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난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제왕 가운데 가장 유명한 왕입니다. 다윗이 사방에 둘러 있는 모든 원수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의 국가의 기초를 확립한 것입니다. 또한 다윗이 예루살렘을 국가의 수도로 정하고 법궤(法櫃)를 그리고 가져다가 장차 성전의 기지를 정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정의와 인도의 통치자로서 또는 이상적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어떠한 왕보다도 많은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오늘 저녁에 다윗의 생활을 잠깐 회고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문자 그대로 다방면에 천재적 인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어려서는 목자로서 나타났습니다. 또한 수금(竪琴)을 잘 탈 수 있는 음악가로서도 나타났습니다. 많은 시를 친히 지은 시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읽는 시편 가운데 73편이 다윗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는 천병만마(千兵萬馬)를 능히 호령해서 적진을 물리칠 수 있는 위대한 군인이었습니다. 또한 일국의 모든 정치를 어거(馭車)해 나갈 수 있는 큰 정치가로서, 또한 역사상에 나나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먼저 그의 생활을 간략히 소개하면 그는 베들레헴에서 났습니다. 그 때부터 베들레헴은 다윗 성으로 불리우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도 역시 베들레헴에서 나시게 된 것입니다. 이새라고 하는 사람의 여덟째 아들로서, 말하자면 막내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도와서 베들레헴들에서 양을 쳤습니다. 이렇게 아직도 어릴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준비로서 그 머리에 기름을 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점점 자람에 따라서 음악가로서 사울의 조정에 나아가 사울에게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소년 시절에, 그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큰 원수인 불레셋 사람의 대장인 골리앗을 물 맷돌 하나로써 격멸(擊滅)하므로 말미암아, 갑자기 다윗의 이름이 온 천하에 떨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때부터 사울 왕조에 있으면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가까운 친구가 되게 되었고 또한 사울 왕의 딸 미갈과 결혼해서 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마는 다윗의 이름이 점점 높아감에 따라, 또한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서 마지막에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도모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다윗은 부득이 왕조를 떠날 수바께 없었고, 멀리 산지로 도망해서 오랜 동안의 피난 기간이 있게 된 것입니다. 혹은 엔게디 굴속에 살며, 혹은 하길라 산맥가운데 숨어서 살며, 혹은 불레셋 사람에게로 도망 가서 살며, 이 곳 저곳 유리하면서 사는 동안에, 혹은 남의 빚을 진 사람들, 혹은 무슨 불평을 가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다윗에게로 모이기 시작해서 처음에는 4백 명이 되었고, 그 다음에는 六백 명이 되었고, 점점 그 무리가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다시 불레셋과 사울 왕조에는 큰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불행히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이 같이 길보아 산이라고 하는 유명한 산상에서 전쟁하다가 그만 다 죽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후에 유다 지파(支派)의 두목들이 다윗을 헤브론에서 왕으로 옹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7년 동안 역시 사울 왕가에서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 까닭으로 다윗의 집과 사울의 집 사이에 끊임없는 충돌, 간단없는 전쟁이 계속된 것입니다.
그려는 동안에 다윗의 집은 점점 강성(强盛)하게 되었고, 사울의 집은 점점 쇠미(衰微)하게 되어서 마지막에는 이스보셋이 죽은 후에는 다윗 왕이 온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후원을 받아서 왕으로 등극(登極)하게 되었습니다. 민족 전체의 왕이 된 후에는 예루살렘으로 국도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33년이란 긴 세월동안 왕으로 온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다윗의 업적은 실로 위대한 것이 많습니다. 사방의 모든 원수를 다 격멸해서 국가의 기초를 확립하고 국가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게 한 이가 역시 다윗인 것이 사실입니다. 법궤를 예루살렘에로 옮겨옴으로 말미암아, 이미 말한 대로, 장차 예루살렘 성전의 기지를 자연히 정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성전 지을 모든 자료를 다 준비해 놓은 것도 역시 다윗이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다윗의 신앙과 그 성격은 어떠하냐? 성경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하는 문귀(文句)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시켜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을 때에 친히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른데 사람은 외모로 보지마는 하나님은 중심을 본다고 말하셨습니다. 이새의 아들 일곱 형제를 다 물리치고, 아직까지 저 산에서 양 치느라고 오지도 아니한 어린 다윗을 불러다가 그 머리 위에 기름 부은 것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경건한 참된 신앙을 가졌던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편 23편을 비롯해서 다윗이 지은 허다한 시를 읽을 때에 다윗의 신앙이 얼마나 진지하였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이와 같이 독실한 신앙을 시작한 다윗의 성격은 고귀(高貴)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어떤 사람보다도 용감하고 담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 자기 아버지를 위해서 양을 칠 때에는 혹은 사자, 혹은 이리가 와서 양을 움켜 가지고 가면 따라가서 맨 손으로 사자와 싸워 이기고, 범과 싸워 이기고, 이리와 싸워 이기면서, 양을 찾아오고 보호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소년일 때에 담대히 골리앗과 겨루어서 골리앗을 격파한, 한가지 사실만 모아도 다윗이 얼마나 담대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무용(武勇)에만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은 역시 덕이 높고 의지가 깊은 그러한 위인입니다. 우리가 다윗의 생활을 읽을 때에 여러분은 그와 같은 성격의 표시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멀리 엔게디 굴에 숨어 살 때에 사울은 다윗을 잡아죽이려고 3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윗을 찾아갔습니다. 그 때 깊은 굴속에 있는데 사울은 다윗과 그 쫓는 자가 그 굴속에 있는 줄도 알지 못하고 혼자 그 굴속에 들어간 일도 있습니다. 그 때 다윗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다윗이 사울 에게 손대지 아니했습니다. 다만 옷 가를 칼로 베어들고, 그 후에 내가 당신을 죽이려고 했으면 죽일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을 사울 에게 알릴 때에, 사울이 많은 부끄러움 가운데서 다윗에게 자기 죄를 자복한 일도 있습니다.
또는 하길라 산맥 속에 숨어 있을 때에도 사울은 역시 같은 경험을 당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잡아죽이려고 군인을 거느리고 갔습니다. 어떤 곳에 가서 막을 치고 밤에 잘 때에 다 잡니다. 그 때에 다윗과 그를 쫓는 몇 사람이 가서 사울의 물병과 창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해하지는 아니했습니다. 그 부하가 사울을 해할 마음이 있었지마는 다윗이 절대로 금한 것입니다. 이만큼 다윗은 덕이 높은 사람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이에게, 본래 자기가 덕을 입은 이에게 절대로 손댈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죄를 용서해 준 이가 곧 다윗입니다.


사울가(家)가 다 망하고 마지막에 다윗이 온 열두 지파의 왕이 되어서 예루살렘에서 다스릴 때에, 모든 형편이 대략 평안하여진 다음에 다윗이 한번은 사울의 집과 요나단의 집에 누구 남은 자가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분이 과연 한 사람 있음을 밝혔습니다. 요나단의 아들이 있는데 이름은 므비보셋이요. 그이는 두 발이 다 상해서 절름발이입니다. 그 절름발이 므비보셋 하나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에 다윗이 사람을 보내서 므비보셋을 자기 궁중으로 청했습니다. 그래서 전에 사울이 있을 때에 가졌던 모든 토지를 다 므비보셋에게 돌려주고, 한 편 므비보셋을 왕자의 하나로서, 대접을 해서 궁중에서 언제든지 자기와 같이 한 상에서 먹을 수 있도록 요나단을 생각해서 므비보셋을 우대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 왕은 의리가 깊은 사람입니다. 좀 있다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줄 알지만 다윗이 그만 말년에 불행히 자기 아들 압살놈의 난을 만나서 갑자기 자기를 따르는 사람 몇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에 사울의 먼 친척 가운데 하나인 시므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시므이라고 하는 사람이 다윗이 그만 자기 아들에게 쫓겨서 형편없는 가운데 도망치는 그 광경을 보고서 옆에 서서 비웃었습니다.『피 흘린 자여, 어서 가거라.』그러면서 다윗을 저주하고 먼지를 날리면서 다윗을 모욕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을 따라가던 무사 하나가 그 개와 같은 어떤 사람이 대왕을 모욕하니 자기가 당장 가서 그놈의 목을 배어 오리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이 아예 그런 일 하지 말라고 금했습니다.『이것은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에게 이와 같은 책망을 하는 것이야. 내 몸에서 난 내 아들도 나를 이렇게 대접하는데 하물며 사울의 친척이 나는 대접하는 것을 이상스럽게 생각할 것이 무엇이냐?』다윗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가만히 자기의 당하는 모든 모욕이 결국은 다 하나님께서 오는 줄 생각하고 겸손히 그 치욕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 압살놈이 물론 망하고 다윗 왕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왕이 되었습니다. 그 때 물론 시므이를 형벌 하려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때에도 시므이를 다 용서해 주고 벌하지 아니했습니다. 이만큼 다윗은 마음이 너그럽고 덕이 높은, 참 남의 죄를 용서할 수 있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그러한 위대한 고귀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신앙과 성품이 결국은 다윗으로 하여금 다윗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다윗에게도 특별히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고귀한 성품을 가진 다윗에게도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은 정욕에 많이 끌린 사람입니다. 그 때 물론 제왕들이 다 이와 같은 일을 했지마는 역시 다윗도 이방의 다른 제왕과 다름없는 많은 처첩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그 가정에 계속해서 불상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고 다윗의 이 약점인 정욕을 통해서 큰 시험이 들어 왔습니다. 성경에 기록한 말 그대로 여호와의 원수에게 큰 훼방거리가 되는 무서운 범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일이 아니고 우리가 다 잘 기억하는 다윗이 침대에 일어나서 왕궁 지붕 위에 올라가 온 예루살렘을 살펴봅니다. 자기가 건설한 예루살렘! 아마 마음 가운데 교만한 생각을 가지고 자부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던 것 같습니다. 그런 때에 우연히 어떤 여자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불같은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그 여자를 궁(宮)으로 데려오라고 해서는 욕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 여자는 다른 여자가 아니고 자기의 가장 충실된 신하, 충복 가운데 하나인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이었습니다. 후에 들으니 밧세바가 에기를 배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죄를 어떻게든 감출 생각을 가지고 그 때에 자기의 충복 우리아는 암몬 사람과 싸우기 위해서 전장에 나가 있을 때인데 속히 우리아를 불러오라고 그랬습니다.


우리아를 불러다가 그가 그 동안 전장에 나가 싸우기에 수고를 많이 하였으니 오늘 저녁에는 그의 집에 돌아가서 편안히 자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러나 이 우리아는 얼마나 충성된 사람인지,『지금 내 모든 상관들과 내 모든 전우들이 들판 천막 가운데서 밤잠을 자지 못하고 대적과 싸우고 있는데 제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예루살렘에 왕명으로 돌아오기는 왔지만 내 집에 돌아가서 편안히 잘 수가 있습니까? 저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미 돌아왔으니 왕궁 어떤 모퉁이 방에서 오늘 저녁을 지내고 가겠습니다.』종래 우리아가 왕의 명이라도 자기 집에 가서 자라고 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결국 다윗의 계교(計較)가 맞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지은 죄를 감추려고 하는 한 가지 생각 가운데서 오리려 더 죄 지을 생각이 나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 군대를 지휘하던 요압 대장에게 우리아를 통해서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우리아로 하여금 요다음 날 암몬 사람과 싸울 때에 최전선에 내보내서 암몬 사람에게 죽게 만들라고 하는 이런 음모의 편지를 써서 자기의 충복인 우리아의 손에 주어서 그것을 요압에게 보냈습니다. 이 충복 우리아는 자기를 죽이려는 편지인 줄을 알지도 못하고 그저 충성되게 그 편지를 요압에게 전했습니다. 요압이 그대로 했습니다. 그 이튿날 억울하게 우리아는 암몬 사람에게 죽게 된 것입니다. 죽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그 얼마 후에 그 아내 밧세바를 불러서 자기의 처로 삼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저녁 읽은 성경 말씀 구절이 나단이 다윗을 만나서 이야기한 그 말씀입니다. 나단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서 다윗에게 와서 이야기할 때에 먼저 유명한 비유를 들었습니다. 어떤 동리에 큰 부자 한 사람이 살고 가난한 사람이 삽니다. 그 부자는 집에는 소도 많고, 염소도 많고, 많은 재산이 있는 부자입니다. 이 가난한 집에는 아무 것도 없고 그저 조그마한 암 양 새끼 하나 밖에 없는데, 이 가난한 사람이 암 양 새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저 한 상에서 먹고 한 자리에서 자고 거의 한 자녀와 같이 이 암양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부자 집에 어떤 손님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가 자기 집의 많은 양, 많은 소를 아깝다고 그냥 두고 이 가난한 사람이 기르는 암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그 암 양을 잡아서 자기의 손임을 대접했습니다.
이 말을 듣던 다윗은 그 근본 뜻은 알지도 못하고 본래 정의감은 강한 사람이라 정의감에 흥분되어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고 맹서(盟誓)하노니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양은 모세의 율법에 의지해서 네 배나 갚아 주어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에 나단이 다윗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당신이 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당신을 베들레헴 목동으로 일으켜서 온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높은 지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부귀를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처첩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화를 주었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더 원하면 더 주었을 겁니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해서 당신의 가장 충복 중에 하나인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서 당신의 아내로 삼았나이까? 당신께서 이와 같은 죄를 지었음으로 말미암아 이 앞으로 당신 집에 칼이 영영(永永)토록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당신은 은밀한 가운데 다른 여자를 모욕했지마는 당신의 처첩은 백주에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죽을 것입니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며,『아, 과연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고 나단에게 죄를 자복했습니다. 사실 다윗이 그 때에 참으로 회개한 것은 시편 51편을 읽어보면 얼마나 통회하면서 자기의 죄를 자복하였나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참으로 죄를 회개하는 것을 보고서 나단이 하는 말이『당신이 이렇게 죄를 회개하니 죽을 것을 하나님께서 면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벌을 그냥 당신의 집에 올 것입니다.』그 후에 보면 꼭 그대로 되었습니다. 다윗이 죽을 것은 면했습니다. 그 죄는 으레히 죽을죄이지마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 가정에서 된 모든 일을 보면 나단이 예언한 꼭 그대로 되었습니다.


다윗의 아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암논이라고 하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딸도 많은데 그 가운데 다말이라고 하는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는 다릅니다. 이 암논이라고 하는 젊은 사람이 자기 이복 여동생 되는 다말이라고 하는 여자에 대해서 짐승 같은 마음을 품고 결국 그 누이를 모욕했습니다. 가정에 이와 같이 패륜의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말이라고 하는 여자는 누군 고 하니 다윗의 다른 아들 압살놈과 동복 동생 되는 누이입니다. 압살놈이 자기 누이가 그와 같이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볼 때에 마음가운데 독한 마음을 품고 있다가 얼마 후에 무슨 잔치를 한다고 해서 여러 왕자들과 이런 사람들을 청해서 대접을 하는 체하다가 무사를 시켜서 암논을 쳐죽였습니다. 한 아들이 한 딸에 대하여 패륜의 일을 감당했고 한 아들이 또 다른 아들을 쳐죽였습니다. 다윗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압살놈은 암논을 죽인 후에 멀리 도망쳤습니다.


얼마 후에 다시 용서함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는 압살놈이 또한 딴 계획을 했습니다. 정병(精兵)50명을 자기 집에서 치기 시작했고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이스라엘 사람의 민심을 도득(盜得)하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자기가 왕이 되어서 왕으로 선포하게 되고, 자기의 무리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자기 아버지를 치려고 쫓아옵니다. 그래서 이미 한 말대로 다윗이 예루살렘을 급히 떠나서 멀리 도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 날 후에 물론 압살놈이 죽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돌아오기는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여호와의 원수들에게 큰 훼방거리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다윗같이 신앙이 어려서부터 독실했고 그처럼 고귀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파렴치의 죄를 지을 수가 있겠는가? 얼른 생각해 보면 참 생각조차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약한 것은 인간입니다. 약한 것은 육신입니다. 그런고로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여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하고, 아무리 고귀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하지마는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한 면에 약점이 있는 것입니다. 조심하지 아니하면 언제든지 악한 사탄은 약점을 통해서 그 사람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그랬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약점이 무엇인가? 내 생활 면과 내 성격에 있어서 특별히 약점이 어디에 있는가? 스스로 살펴서 거기에 조심하지 아니하면 누구나 큰 죄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나의 약점을 스스로 깨닫고 조심하지 아니하면, 누구나 다윗의 전철을 또 밟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에 이와 같은 범죄는 젊었을 때에 많지마는 중년이 지나고 노년기가 가까워 오면 별로 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 죄는 청년 시대에 지은 죄는 아닙니다. 중년을 훨씬 넘어서 아마 노년기에 거의 가까워서 이런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청년기가 지났다고 방심할 것은 아닙니다. 또 다윗이 원수와 싸우면서 사방에 일이 너무 분주해서 동분서주할 때에 이와 같은 시험이 오지 아니했습니다. 대체로 원수를 다 정복하고 이제는 다윗 자신이 전장에 나갈 필요가 없고 자기의 부하가 모든 일을 잘 합니다. 암몬 사람과 싸우지마는 요압이 대신 잘 싸워 줍니다. 자기는 예루살렘 성에서 한가하게 낮잠 자고, 침대에서 저녁 때 일어납니다. 한가한 대에 시험이 들어왔습니다. 한가한 때를 우리가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가 다윗의 신앙과 그의 의리 심과 그 높은 덕과 그 용감한 것을 배우는 동시에 다윗의 이 범죄와 형벌 받은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알아서 우리 실생활에 전감(前鑑)을 삼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다윗 같은 이도 이와 같은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도 조심하지 아니하면, 언제, 어느 때에, 어떤 범죄를 할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다윗의 생활을 생각하면서 우리 생활의 전감을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59년 9월 13일·저녁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