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미쁘신 하나님 (고린도 전서 1:1-9)

새벽지기1 2017. 10. 24. 07:0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9)

여기에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해서 말씀하십니다. 먼저는 너희를 불러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라는 그 사실을 지적했고, 또 그 다음에는 이와 같으신 하나님은 미쁘시다 하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오늘 이 시간, 학습을 선 학생들과 여러 청년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나오게 되고, 교회에 나와서 학습을 서기도 하고, 세례를 받기도 하는 것이, 한편 생각하면 우리 사람이 하는 것이고, 내가 힘쓰는 것이고, 내가 교회에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 사실만 보는 견해입니다. 사실 우리가 교회에 나오게 되고, 믿음을 얻게 되고, 이와 같이 학습을 서고, 세례를 받는 것을 내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를 부른 이가 계십니다. 우리를 이 죄악의 세상 가운데서 불러서 죄를 회개하게 하고,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이가 계십니다. 그이는 곧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끌지 아니하면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우리 주를 믿고 사실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서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으신 하나님은 미쁘시다 라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미쁘시다」하는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믿을 만하다. 혹은 신실하다, 그러니까 의지 할만 하다. 그저 쉽게 말하면, 신용할 수 있는 이다 하는 그 뜻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미쁘신 하나님입니다.


디모데 후서 2장 13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一向)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사람은 미쁨이 늘 부족합니다. 우리 사람은 사실 미쁨이 없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주는 일향 미쁘시니 언제든지 미쁘시니 자기 자신을 부인할 수가 없다고 이와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우리 사람은 사실 내 자신을 꼭 믿기 어렵습니다. 그 까닭은 내 자신이 하루에도 몇 번 변하는지 모릅니다. 내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때에는 분열되기도 합니다.
여기 스티븐슨의 유명한 소설에 나오는 인물처럼, 내 자신 속에는 지킬 박사와 같은 점잖은 이가 있지마는 반면에 아주 고약한 하이드 맨과 같은 사람이 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때에, 어떠한 환경에, 어떠한 자신이 나타날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내 자신을 믿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미쁘십니다. 하나님 자신은 하나 뿐입니다. 하나님 자신은 분열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변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자신이 미쁘십니다. 믿을 만 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나 자신을 믿기 어렵지마는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다.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또한 미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뜻은 이렇게도 변하고 저렇게도 변합니다. 인심은 조석변이라 아침과 저녁으로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뜻은 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연 하에 움직일 때에 그것을 자연 법칙이라고 합니다. 자연 법칙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하지 아니합니다. 이 자연의 법칙은 먼저 별 가운데 운행되는 법칙이나 우리 지구 안에서 운행되는 법칙이나 똑 같이 변하지 아니하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인간 생활에 움직일 때에 우리는 흔히 그것을 도덕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도덕의 법칙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옛날 아브라함의 양심을 움직이던 그 법칙이나 오늘날 우리의 양심을 움직이는 그 법칙이나 같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미쁩니다. 믿을 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도 또한 미쁩니다. 하나님의 공의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은 모든 것이 제한되어서 공의를 볼 때에 한 편만 보기 쉽습니다. 그래서 같은 법률을 가지고 같은 사건을 공판할 때에도 재판장에 따라서 공판이 달라지는 때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것은 재판장이 부정하게 재판해서 그렇게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무리 자기 자신에도 공정히 하느라고 하지마는 우리 인간이 보는 그 견해와 우리 인간의 이성은 제한되어서 한 면만 보는 까닭으로 언제든지 꼭 공의롭게 재판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는 언제나 변하지 아니하시고 따라서 미쁘십니다. 믿을 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릇되는 법이 없습니다. 역사적 심판이나, 내세의 심판이나, 그 심판은 온전히 미쁜 심판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미쁘신 사랑입니다.『내가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셨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옛날도 그 사랑, 오늘날도 그 사랑, 백인종에게도 그 사랑, 황인종에게도 그 사랑, 흑인종에게도 그 사랑, 부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변함이 없는 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미쁘십니다. 사람의 사랑은 사랑의 대상에 의해서 항상 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대상 여하를 불문하고 그저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믿을 만한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항상 변해서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원수가 되는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믿을 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미쁘십니다. 믿을 만 합니다. 신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우리 인생을 향해서 언약한 말씀이 계십니다. 약조한 말씀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택하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하였습니다. 그이들에게 열 가지 계명을 주시며 그이들에게 율법은 주면서 그들이 이 계명을 지키고 이 율법을 지키면 대대손손이 수천 대까지 이르도록 축복하여 주시겠다고 확실히 언약하셨습니다. 그 언약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언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켰습니다.
우리가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더 크신 계시를 우리에게 주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이제부터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고 죄를 회개하는 자는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 영혼을 구원해서 금생과 내생에 영원한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약조가 기록된 성경을 신약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언약의 책입니다.


그 밖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약조한 말씀이 많습니다. 기도할 때에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보호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영적으로 육 적으로 필요한 것을 다 준비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언약했습니다. 하나님의 이 모든 언약은 미쁘신 언약입니다. 믿을 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생활을 해나갈 때에 결론적으로 분명히 기억하시기를 바라는 것은 나를 믿으면 아니 됩니다. 미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신앙 생활을 하여 나아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결심했지마는 그 결심이 몇 날 갈 지 모릅니다. 변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우리가 의지해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시험을 당하게 하지만 이 기도를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13절에 보면『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물론 믿어 나갈 때, 여러 가지 시험과 유혹을 당합니다. 그때에 나를 믿지 마십시오. 내 결심을 믿지 마십시오. 오직 미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내 결심을 믿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 시험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도 믿어 나아가다 죄를 범하기 쉽고 혹 실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 사하여 주시겠다고 여기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요한 1서 1장 9절에는『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고 의로 우 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오.』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솔직히 고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사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사해주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이는 구해주시겠다고 약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에 의지해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데살로니가 후서 3장 3절에는 이런 말씀으로 우리를 격려해 주셨습니다.『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우리 주님은 미쁘셔서 우리의 신앙을 굳게 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을 더 튼튼한 토대 위에 놓아주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미쁘신 하나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3-24절에는 이런 말씀으로 가르쳤습니다.『평강(平康)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여러분을 불러서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은 미쁘신 하나님인 까닭으로 여러분의 몸을 온전히 지켜서 우리 주님의 날까지 보호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미쁘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다. 이 미쁘신 하나님께 우리의 전 생명을 바칩시다. 내 지혜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내 의지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내 지식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오직 미쁘신, 전능하신, 사랑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또 이와 같이 미쁘신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도 미쁘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학습 설 때에 하나님과 약조했습니다. 그 약조를 하나님은 꼭 지키실 터이요. 여러분도 꼭 지키십시오. 또 이와 같이 미쁜 하나님을 믿고 사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미쁘게 살아야 됩니다.
아프리카에 제일 먼저 가서 일생토록 그 암흑 대륙을 탐험하며 처음으로 흑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23-1873)혼자 백인으로 흑인 사이에 가서 개척 전도를 할 때에 종종 위험한 일을 얼마나 만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위험한 일을 만날 때마다, 언제든지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또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같이 있으리라.』리빙스턴은 이 성경 구절을 기억할 때에『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보다도 가장 미쁘신 주시야, 그리스도께서 거짓말 할 수 없어, 그리스도는 참 말만 하시는 이야, 누구의 말보다도 그리스도의 말은 믿을 수 있는 말이야,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 때까지 나와 같이 있으시겠다고 약조하였으니까.』하고 같이 계시는 것을 꼭 믿었습니다. 그 믿음 가지고 미쁘신 주님을 의지하고 어떤 위험한 일을 당하든지, 어떤 급한 일을 당하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온전히 주를 의지하고 담대히 일한 것입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이 미쁘신 하나님을 튼튼히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1959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