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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歸天) - 천상병-

새벽지기1 2017. 8. 28. 23:54

귀천(歸天)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의 시 <귀천(歸天)>은 우선 제목이 눈길을 끈다. 귀천 - 넋이 하늘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를 시인은 세 번 풀어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말하고 있다. 하늘로 돌아가는데, 첫 연에서는 어떻게를 두 번째 연에서는 언제를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돌아가서 할 일을 말한다.


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하늘로 돌아가겠단다. 그 이슬은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순간의 사물이다. 이슬처럼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돌아가는 때는 바로 구름이 손짓할 때이다. 그 동안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이 부르면 돌아가겠단다. 여기 등장하는 노을역시 이슬처럼 순간의 것이다. 두 연을 통해 화자는 삶이란 것이 이슬이나 노을처럼 결코 영원할 수 없는, 한 순간의 것임을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돌아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바로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 태어나 한 평생 살다 죽는 것을 시인은 아름다운 이 세상소풍을 온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니 이 세상이, 삶이 아름다웠다고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 시를 쓴 사람이 천상병이다. 그의 삶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살았던 시대가, 사회가, 아니 그보다 그 자신의 삶이 과연 아름다웠을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수재란 칭송을 듣던 젊은 시인,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간첩이란 죄명으로 온갖 고문에 시달렸고, 6개월간 옥고까지 치렀다.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과 영양실조 그리고 심한 음주로 인해 거리에 쓰러져 행려병자가 되기도 했다. 단순히 행방불명이라고, 벌써 죽었을 것이라고 지인들이 유고시집까지 발간하지 않았던가.


막걸리 한 잔이면 하루 끼니로 충분하다던 시인 - 80년대 말 종로에 있던 찻집 귀천에서 아이 같은 해맑은 미소로 나이 어린 국어 선생을 맞아주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의 삶이, 그가 살았던 시대가 정말 아름다웠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 평생 살아온 것이 저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에 잠시 소풍을 온 것이라 인식했던 시인이다. 얼마나 수양을 해야 자신의 삶을 이렇게 인식을 할 수 있을까.


영롱한 이슬과 찬란한 노을이지만 결코 오래가지 못하는 순간의 것들과 함께 소풍이 끝나면 그렇게 훌쩍 돌아가겠다는 시인. 인간이 두려워하는 죽음조차도 소풍 끝내는 날로 인식했던 시인. 거창하게 사생관(死生觀)이라 부르지 않더라도 시인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볼 수 있지 않은가. 그 자세에 마냥 고개를 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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