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사가랴에 전해진 좋은 소식

새벽지기1 2017. 8. 9. 12:14

20130616


선택받은 가정에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이뤄집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제도를 만들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것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바로 그 생명을 통해서 세상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온누리교회에서는 태어나서 교회에 처음 나온 아기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아이를 통해 행하실 일들을 기대한다는 의미입니다.


의롭고 경건한 가정


누가복음을 통해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라는 제사장 가정과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두 가정은 친척입니다. 사가랴의 가정에서 세례요한이 출생했고 요셉과 마리아 가정에서 예수님이 태어납니다. 이 두 가정에서 태어난 아기를 통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묵상하겠습니다. 오늘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서 태어난 세례요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둘 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들이어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흠잡을 데 없이 잘 지켰습니다”(6절).
그들은 죄가 없는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백성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보시기에’라는 단어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죄인 일 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신실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인간의 죄성을 아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의롭고 경건한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생명을 세상에 보내실 때 의롭고 경건한 가정을 선택하십니다. 불경건한 가정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특별한 교훈을 주고자 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가정으로 보내십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기도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은 불경건하지만 자녀들은 경건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경건한 가정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통해서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계시가 희귀하던 영적 암흑기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가정은 의롭고 경건한 가정이었습니다. 성경에 ‘의롭고 경건하다’는 표현이 나오면 그 시대가 불경건하고 불의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아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노아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불경건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의롭고 경건한 가정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였습니다.
“내가 네 가운데 겸손하고 가난한 백성을 남겨 두겠다. 그러면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할 것이다”(습 3:12)
‘가난하다’는 것은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온유하고 겸손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기다리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누가복음에 등장합니다.


당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희귀하던 시대였습니다. 400년 동안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지 않았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구약과 신약 사이에 400년 동안이나 침묵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지 않았던 시대는 마치 하나님이 이 땅을 버리신 것 같은 시기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불경건해지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가정처럼 의롭고 경건한 가정이 있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롭고 경건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문에서 태어난 생명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언된 세례요한의 탄생


하나님은 의롭고 경건한 가정에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여호와의 길을 내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 길을 곧게 닦으라. 모든 골짜기는 높이고 모든 산과 언덕은 낮추고 가파른 곳은 고르게 하고 울퉁불퉁한 곳은 평지로 만들라’”(사 40:3~4).
요한복음에 보면 세례요한은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소리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세례요한의 탄생이 그가 태어나기 8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되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인 말라기에서도 세례요한의 출생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보라. 그 크고 무서운 여호와의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예언자 엘리야를 보낼 것이다.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리고 자식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릴 것이다. 돌이키지 않으면 내가 가서 저주로 이 땅을 칠 것이다”(말 4:5~6).
구약의 엘리야가 다시 출생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이 부모와 자식의 끊겨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당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아합과 이세벨 앞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은혜를 베푸시는 방법


오늘 본문 13절에서 17절에는 세례요한이 어떤 사명을 가지고, 어떻게 쓰임 받게 될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부모들은 아이를 출산할 때 즈음 아이의 인생을 준비합니다. 무슨 옷을 입힐지, 어떤 집에 살지,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를 준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기 수백 년 전에 예언하셨습니다. 이사야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의 소리로 와서 엘리야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의 출생을 미리 준비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세례요한의 출생은 의롭고 경건한 가정을 통해서 준비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태어나는 자손들이 세례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사람, 주의 길을 예비하는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의롭고 경건한 가정이 되어야합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가정은 의롭고 경건했지만 고통과 수치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고 둘 다 이미 나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눅 1:7).
오늘날에는 자녀가 없는 것이 수치가 아니지만 당시에는 자녀가 없으면 매우 큰 고통이었고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경건한 가정이라면 어느 시대든지 고통과 수치가 없어야 하는데 그들이 고통과 수치 속에 있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축복과 은총을 통해 은혜를 주시기도 하고, 고통과 수치로 여기는 일들을 통해 은혜를 베푸시기도 합니다.


특별한 섭리와 계획


하나님의 은혜는 축복을 통해 오기도 하고,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 고통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문제로 고통 당하는 가정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민족을 창대케 하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도저히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서는 태어날 수 없는 아이가 25년 만에 태어났습니다. 이삭도 아이를 잘 낳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25장을 유심히 보면 이삭과 리브가도 아이를 잘 낳지 못해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이 태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은 어땠습니까. 라헬도 잉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도를 하자 하나님이 아이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삼대에 걸친 공통적인 문제는 아이를 힘들게 낳았다는 것입니다. 또 불가능한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기도를 통해 아이를 선물받았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지 않으면 태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자녀를 잘 낳은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오랫동안 기도하고 받은 아이에게는 더 큰 은혜가 있습니다. 자녀를 낳는 문제로 하나님이 고난을 주셨다면 특별한 섭리와 계획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고통 이면에 숨겨진 섭리와 계획


아이를 어렵게 낳은 사람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뿐이겠습니까. 사무엘을 낳았던 한나도 아이를 낳지 못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수치를 경험했습니까. 한나의 가정도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의롭고 경건한 가정이었습니다.
여러분, 의롭고 경건한 가정에 고통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다고 믿어도 좋습니다. 이것은 그냥 고통이 아닙니다. 고통 너머에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습니다. 한나는 자녀를 낳지 못하는 고통과 수치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상 1장은 바로 그런 고통의 기도로 시작합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사무엘이 태어납니다.
한나의 고통은 한 가정의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 고통은 매우 상징적인 고통이었습니다. 당시는 사사시대였습니다. 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 사사시대의 어둠이 걷히고 역사의 새벽을 가져오게 한 사람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하나님이 의롭고 경건한 가정의 고통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은 다윗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사사시대의 어둠이 걷히고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중단되었던 하나님의 계시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시작 된 것입니다. 동일한 패러다임으로 세례요한의 가정에도 고통이 임했습니다.


고통이 기도로, 기도가 역사로


의롭고 경건했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가정도 자녀를 낳지 못하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 고통 이면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엘리사벳에게서 세례요한이 탄생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이 누구의 길을 예비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살았던 시대는 400년 동안 하나님의 계시가 멈췄던 영적인 침묵기였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의 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시켰고 그 사람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엘가나와 한나 가정의 고통은 다윗의 길을 예비하는 사무엘을 태어나게 했고,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고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을 출생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의롭고 경건한 가정의 고통에는 다른 가정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숨어 있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가정의 고통이 기도로 변하고 그 기도가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의롭고 경건했지만 하나님의 천사가 전해주는 좋은 소식을 믿지 못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자손이 태어날 것이라고 전했지만 그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불신앙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소식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가랴가 믿지 못한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믿지 못할 정도로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소식은 인간의 죄성으로는 믿기 어렵습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이었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규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일 년에 두 번 한 주씩 당번제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하는 일은 아무에게 시키지 않고 제비를 뽑아서 한 사람씩 들어갔습니다.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을 하는 것은 제사장의 인생에서 한번 올까 말까한 일입니다. 사갸라가 분향하러 갈 때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소식을 전하는 천사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이 어려운 꿈을 꾸었을 때 그 꿈을 해몽해준 바로 그 천사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들이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주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이 소식을 믿지 못했습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 말을 확신하겠습니까? 나는 늙었고 내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18절).
“천사를 본 사가랴는 깜짝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사가랴야,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으셨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12~13절).


응답되어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천사가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했는데 사가랴는 그것을 믿지 못합니다.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상황입니다. 천사는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말하고, 사가랴는 믿지 못한다고 하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우스꽝스럽겠습니까.
문제는 기도한 것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기도한대로 응답되면 의심을 합니다. 이 같은 장면이 사도행전 12장에도 나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베드로를 풀어달라고 성도들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사가 베드로를 옥에서 나오게 합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한 사람들의 집에 찾아가자 사람들은 베드로를 유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어 베드로가 옥에서 나왔는데 그들은 믿지 못하고 베드로를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함을 받은 사람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사가랴는 요한이 출생할 때까지 말을 못하도록 했습니다. 불신의 말을 할 바에는 차라리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의롭고 경건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소식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가랴의 입장이었다면 믿었을까요.
다음 주에 살펴볼 마리아는 정말 놀랐습니다. 그녀는 동정녀의 몸에서 예수님이 태어난다는 것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사가랴와 마리아가 대조됩니다.


놀라운 역사 체험하는 의로운 가정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의 새벽을 가져올 때 의롭고 경건한 가정을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좋아 보이는 일들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은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 같은 고통과 수치스러운 일들을 통해 주어지기도 합니다.
기도하면 닫혔던 문이 열리고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으로는 담을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모두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믿지 않아도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가정을 찾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선택받은 가정에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일들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이뤄집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요한을 보내실 때 의롭고 경건한 가정을 택하시고
그 가정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을 주셨지만 놀라운 일을 행하심을 찬양합니다.
의롭고 경건한 가정을 찾기 힘든 이 시대에 온누리교회에 속한
모든 주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새로운 역사의 새벽을 깨우는 귀한 생명이 탄생하는 가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