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진호컬럼

성경관통으로 꼭 배워야 할 것은?(3)

새벽지기1 2017. 7. 14. 07:11


진주 목걸이는 목에 차야 한다.

진주를 목걸이로 꿰었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예쁜 목걸이도 보석함에 담겨만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는가? 실제로 목에 차고 다녀야 한다. 자랑하라고 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봐도 확연히 진주목걸이인 줄 알아야 하고 또 그들도 그런 목걸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자기를 아름답게 꾸며야 한다.

성경도 공부하여 실제 삶에 반영되지 않고 지식으로 사장되어선 안 된다. 그 지식을 남들에게 자랑하거나, 자기만 치장하여 남들에게 아무 영향력을 끼치지 못해도 마찬가지다. 양식진주(인간의 지식에서 나온 종교 경전)라면 몰라도 천연진주(하나님의 절대적 계시이자 진리) 목걸이를 파티에 차고 나오지 못할 까닭이 전혀 없지 않는가?

작년 미국 대선 때에 캘리포니아 주에선 동성 간 결혼의 허용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도 함께 치렀다. 교회에 성실히 출석하는 한 한국인 남자고등학생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당연히 반대라고 답했다. 이어서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한 마디로 그냥 싫고 징그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어려서 친구들끼리 그런 문제를 토론할 기회가 별로 없겠지만 곧 미국대학교에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미국학생들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자들을 향해 인간의 권리, 자유, 개인적 성생활을 억압하는 반지성적, 비인간적 과오라고 반발해 올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재차 물었다. 만약에 단순히 싫다고만 말하면 틀림없이 싫고 좋은 개인적인 취향에 속하는 이유만으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앞뒤가 꽉꽉 막힌 벽창호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그 학생은 여전히 동성애 반대에 대한 체계적인 의견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그런 문제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그럼 대체 고등부 예배 설교나 성경공부에서 무엇을 배우느냐고 했더니 힘든 일이 있으면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내용만 주로 듣고 배운다고 했다.

한국 교회에선 기도하여 문제 해결받는 것만을 두고 믿음과 삶이 연결되는 양 가르친다. 기도는 믿음과 하나님과의 연결이다. 삶과 믿음의 연결은 기도한 후에 나타나야 한다. 이 학생의 경우는 믿음도 믿음이지만 성경과 삶과 실질적 연관이 없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셈이다.  

성경의 창조와 타락과 구원과 완성에 관한 거대담론은 바꿔 말하면 인간의 기원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또 인간이 이 땅에서 최초로 살게 된 때로부터 마지막 종말의 때까지의 이야기라면 당연히 삶과 인생의 모든 부분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쉴 새 없이 발현되는 새로운 문화, 사조, 현상, 기술 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이 인류 역사 전체를 이끌고 가는 근본적 뜻과 계획, 다른 말로 인간을 다스리는 기본 원리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에 일어나는 어떤 새로운 현상도 성경의 원리로 해석해 적용하지 못할 것은 없다. 인간을 지으셔서 당신께서 조성하신 생존환경에서 직접 다스리는, 인간을 인간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는 그 거대담론을 반드시 자신의 개인적 삶에도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존재와 삶과 인생을 하나님의 창조, 타락, 구원, 완성의 틀로 해석 조정 실현해야 한다. 우선 자신의 ‘기원’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심히 아름답도록 예정된 신분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는 아담의 원죄 하에 태어나 그분과 담을 쌓고 죄악 속에 지낸 추하고 악한 존재였음을 절감해야 한다. 그러다 예수님의 일방적 은혜와 권능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현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신분으로 회복되었음을 확신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서 그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야 한다. 언젠가 천국에서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미래’의 소망을 품고 살아야 한다.

이 네 가지 틀을 동성애자 결혼과 관련해 위에 예를 든 남학생의 경우에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자. 교회에서 힘들면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배워서 기도하는 것은 아주 잘 봐주어 네 개의 거대담론 중에 구원만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창조, 타락, 구원, 완성을 연결해서 배우지 못했거나 그런 방식으로 삶을 해석 적용할 줄은 전혀 모른다. (사실상 고등학생 수준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은 무리다. 마침 실제로 겪은 일이라 예를 든 것일 뿐, 교회 오래 다닌 성인 신자도 이 학생과 거의 같은 수준인 경우가 분명 많을 것이다.)

우선 동성애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을 남녀 간에 서로 다르게 창조하였고  가정은 반드시 남녀가 서로 돕는 배필로 만나 이루라는 원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또 동성애에 빠지는 원인도 유전자나 주위 환경 때문이 아니다. 사단의 종이 되어 쾌락에 눈먼 인간들이 더 자극적인 성적유희를 자의적으로 선택했거나, 전쟁이나 형무소 같은 죄악이 원인이 되어 동성만 장기 격리 수용함으로써 생긴 절대적 잘못이라고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대학교에 들어가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는 세속적 지성의 반론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우주와 인간을 다스리는 절대적 원리에 대해 얼마든지 논리적으로 변증할 줄 알아야 한다. 단순히 앞뒤가 꽉 막힌 골통이라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 말하자면 죄는 철저히 미워하되 죄인은 자신이 죽기까지 사랑한 예수님의 복음 안에 들어온 입장에서 동성애자도 그렇게 대해야 한다. 동성애라는 행위 자체는 분명 죄임을 납득시키고 그 본인은 끝까지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또 능치 못할 일이 하나도 없으신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여 동성애 습성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달라고 함께 기도해 주어야 한다. 물론 그보다 먼저 상대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와 온전한 믿음을 가지도록 전도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선 아무리 동성애라는 죄에 물든 자라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올라갈 수 있다는 소망을 심겨주어야 한다. 나아가 그가 장래에는 주위의 동성애 동료들마저 하나님의 은혜로 이끌 만큼 그 인생이 주님 안에서 고귀하게 완성될 수 있음을 확신시켜야 한다.

이처럼 동성애라는 죄의 기원을 ‘창조’와 ‘타락’에서 찾아야 한다. 또 현재 그 죄에 빠져 있는 자도 예수님의 ‘구원’으로 초대하고 장래에 얼마든지 고귀한 형상으로 ‘완성’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면서 함께 기도하며 섬겨야 한다. 단순히 동성애가 성경적 죄이므로 반대하고 그 본인도 멀리한다면 성경의 표지만 슬쩍 훔쳐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 관통은커녕 통독조차 하지 않은 꼴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성경 관통으로 반드시 습득해야 할 내용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최소한 다음 세 가지가 된다.

첫째. 자기가 구원 받은 의미와 결과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어야 한다. 예수 안에서 바뀐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이제 신자답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확정해야 한다. 단순히 성결하게 사는 것보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소명을 성경의 거대담론에 비춰 확정지을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직업 종류를 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분명한 목적과 방향과 생활 방식을 예수 믿기 전과는 완전히 반대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위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이 이 땅을 다스리는 근본 원리를 알았기에 세상의 사조와 현상들을 그분의 뜻에 맞추어 분별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자답게 산다는 것이 성직의 길을 가거나 전도에 매달리거나 죄를 짓지 말고 착하게 살라는 단순한 뜻이 아니다. 세속에서 확실히 비기독교적인 악한 일만 아닌 이상 무슨 일을 해도 된다. 아니 반드시 해야 한다. 대신에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안에 들어온 자로 사는 것이다.  창조, 타락, 구원, 완성이라는 틀로 사람과 사건과 환경을 해석하여서 천국을 준비하며 사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정체성과 자신이 할 일과 대인관계를 그 틀 안에서 새롭게 정립하여 살고 있지 않다면, 최소한 그럴 소원이라도 안 생겼다면, 아무리 성경을 심도 깊고 광범위하게 배워도 또 하나의 종교인을 양성한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