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진호컬럼

성경 관통으로 꼭 배워야 할 것은(2)

새벽지기1 2017. 7. 12. 08:22


진주 목걸이의 정체는?  

그런데 사실 교회 출석한지 몇 년이 지난 신자들은 기독교의 이 핵심교리를 그런대로 잘 알고 있다. 새신자 공부나 제자훈련을 통해 열심히 배우기 때문이다. 그런 공부에 참석하지 않는 게으른 신자라도 매주 설교를 통해 반복해서 듣기에 명확히 정리는 안 되어 있어도 그 큰 맥(脈)은 잡고 있다.

그럼 구태여 성경을 관통하는 공부를 꼭 따로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교리를 아는 자도 여전히 진주를 꿰어 목걸이를 만들지 못하거나, 만들 생각조차 않는 우(愚)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교리 하나씩, 신학적 과제 하나씩 구분해선 잘 알면서 성경과 상호 연결해서 이해하는 측면에선 아주 약하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보자. 성경구조를 공부한 사람은 에스더서의 등장인물, 시대 배경, 스토리, 중요 신학사상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와 연결해서 해석해보라고 하면 완전히 까막눈이 되어버린다. 에스더서에 관한 지식만 습득했지 예수에 관해 실제로 배운 것은 하나도 없다. 그 반대로 기독교 교리에 정통한 자더러 각각의 교리가 에스더서의 어느 부분에 어떻게 반영이 되어 있는지 찾아보라고 해도 헤매기는 마찬가지다. 이 또한 교리라는 지식을 별도로 떼어내어 공부했기에 막상 성경과 제대로 연관 짓지 못한다.

물론 에스더서는 기독교 교부들이 정경화 할 때에도 논란이 되었던 책으로 그 맥을 잡기가 아주 어렵긴 하다. 더 분명하게 실감토록 하기 위해 예를 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모든 책에 적용해도 솔직한 실정이 그렇지 않은가? 일반 신자에게 초대 교부들도 겨우 풀었던 숙제를 맡기려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절대로 기독교라는 종교 지식으로, 교리도 포함해서, 습득해선 안 되고 반드시 예수와 연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손쉬운 방안이 하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는 인간을 배제하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성경이 예수 이야기라면 결국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럼 성경이 인간에 대해 일관되게 말하는 내용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면 관통한 것이 된다.  
        
그런데 사실 그 하나의 이야기를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했는데, 인간은 오히려 그분을 배반했고, 그래서 당신의 독생자가 오셔서 구원해 주었으며, 마지막 때에는 부활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인간은 창조-타락-구원-완성의 네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관점에선 “예수를 통해 인간을 구속” 하신다는 이야기다.

신구약 성경 66권은 이 네 단계에 대한 구체적인 상술이다. 따라서 성경을 관통하여 기독교 핵심교리를 혹은 성경구조체계를 아니면 둘 다 배우든 목걸이로 꿰려면 그 배운 내용을 반드시 창조, 타락, 구원, 완성이라는 준거 틀에 비추어 해석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창조 교리는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을 닮아 인간을 짓고 당신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릴 청지기로 세웠으며 그 일을 수행하라고 자유의지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당신을 닮은 형상이 무엇인지, 인간이 이 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거기에 자유의지가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등의 구체적 교리도 반드시 창조 이후의 타락-구원-완성이라는 전체 맥과 연결해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구조적으로 따질 때도 마찬가지다. 구약의 창세기 1-2장은 인간의 창조, 3장은 인간의 타락, 4 장 이후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까지는 그 타락이 확장 만연되는 모습, 신약의 복음서부터 교리 서신들의 중요 내용은 인간의 구원, 또 서신서의 일부 내용과 요한계시록은 인간의 완성을 기록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모스서의 내용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정치 경제적으로 제일 풍요로울 때에 오히려 도덕적으로 가장 부패했기에 남왕국 유다의 한 목자를 불러올려 준엄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으로 구약의 대선지서에 해당된다. 그러나 그런 것을 배우는 것으로 그치면 여전히 성경 지식일 뿐이다.

그보다는 인간 타락의 가장 극명한 예를 찾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숨겨진 인류구속사의 시나리오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다른 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단순히 어떤 구절이나 단어가 예수님과 그분의 죽음을 예표 상징하는지 찾으라는 뜻이 아니다. 그런 절차는 당연히 거치되 아모스의 내용도 바로 이 창조, 타락, 구원, 완성이라는 큰 틀에 비추어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대담론(巨大談論, Meta Narrative)이라는 철학용어가 있다. 문자적으로는 여러 작은 이야기들을 묶어서 만들어 낸 하나의 큰 이야기를 뜻한다. 그 실제 의미는 인간의 역사적 경험과 지식들에 관한 종합적 설명이다. 말하자면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인간 체험과 지식에 관한 보편적 절대적 진리에 관한 이야기다.  

유사 이래 인류는 자신들에 대한 거대담론을 명확히 정립해보려 노력해왔다. 인간의 과거 기원과 현재 상태와 미래의 결말에 대해 항상 궁금해 하며 그 해답을 추구했다. 그런데 성경의 이야기가 바로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이 땅에 있게 되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어떤 체험을 겪었으며, 현재는 어떤 상태에 있으며, 그 종말에는 어떻게 되리라는 것, 다른 말로 거대담론이지 않는가?

성경 66권에 흩어져 있는 모든 기록들을 창조, 타락, 구원, 완성의 네 이야기로 집약할 수 있다. 구약은 인간이 창조되었고 죄로 타락하였다는 거대담론이라면 신약은 예수가 와서 인간을 구원하고 완성시킨다는 거대담론이다. 결국 세상 사람이 찾고 있는 거대담론과 성경의 그것과의 결정적 차이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라는 진술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모든 역사적 경험과 지식을 함께 묶어 해석할 수 있는 키를 성경은 예수라고 제시한 반면에, 세상은 여전히 인간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요컨대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인간이 반드시 믿고 따라야 할 보편적 절대적 진리를 계시해 놓은, 사람이 믿든 안 믿든 간에, 책이다. 또 성경을 관통해 목걸이를 꿴다는 것도 바로 이 거대담론을 찾아 그 바탕 위에 성경 66권을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