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자는 자여 어찜이뇨? (요나1:1-10)

새벽지기1 2017. 5. 16. 07:14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욘1:5-6)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 에게 이르셨습니다. 그 말씀은『큰 성 니느웨성에 가서 그들을 쳐서 외치며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라』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요나가 이 말씀을 들었으나 니느웨성으로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첫째로 그 곳으로 가는 길이 육로로 몹시 험하고 또 그 성이 매우 악독하고 포악해서 그 성에 가서 일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이 앗수로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게 하는 민족이요 북편 나라를 멸한 그 원수의 나라인데 히브리 사람의 하나로서 민족적 감정이 좋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의 분명한 분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로 갈 생각이 없어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기 위해서 반대 방향인 욥바로 내려갔다고 하였습니다. 욥바로 내려가서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탓 다고 했습니다. 다시스가 지금은 어디 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아마 짐작컨대 제일 먼데 있을 것 같습니다. 먼 데 피하기 위해서 다시스로 방향을 돌린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 가지 아니해서 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풍랑이 심했던지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사공을 비롯해서 모든 여객들이 겁이 나서 각각 자기가 본국에서 섬기던 자기 신에게 부르짖으며 사공들은 배의 중량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물건을 바다에 던지고 분주하게 살길을 찾으며 야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어떤 사람이 배 밑창에 누워서 깊이 잠이 들어 잠자고 있습니다. 그것을 본 선장이 그를 깨우며 말했습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이거 무슨 일이뇨. 남을 다 살기 위해서 자기의 신에게 부르짖으며 우리가 다 살기 위해서 각각 자기의 책임을 하려고 분주히 이와 같이 야단인데 당신은 어찌해서 잠만 자는가? 당신도 일어나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혹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망하지 않게 할 줄 누가 알리요』 하고 하나님의 선지자가 실상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선장에게 재촉을 받았습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사실 이 때의 요나의 잠은 참 용서하기 어려운 잠이었습니다. 그 까닭은 여기 보니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되었는데 요나는 아직 그것도 모르고 잠만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의 사적을 볼 것 같으면 그가 네 살 되었을 때 하루는 그가 이층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아래층에서 불이 났습니다. 방이 전부 불에 둘러 싸였습니다. 어른도 다 뛰어 나오고 물건도 다 들고 나와서 이제 다 살아난 줄 알았는데 나와 보니까 이층에 어린 애기가 자는 것을 그냥 버려 두고 내려왔습니다.
불길이 사방에 퍼졌는데 올려다보니 문 창으로 아이가 깨어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애기를 보고 어른들이 얼른 사람 위에 사람이 올라서고 그 위에 또 사람이 서서 그 애기를 겨우 구했더니 그 아이가 그 다음에 커서 위대한 웨슬리가 되었습니다.


배가 거의 깨어져 가는데 잠을 그냥 자고 있는 것은 용서하지 못할 잠입니다. 내가 들은즉 어떤 운전수(運轉手)는 운전해 가면서도 존다고 합니다. 그것 용서하지 못할 졸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는 요나의 잠과 같은 잠을 자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타고 있는 배, 이 작은 한국은 어떠한 형편에 있습니까? 말하기 대단히 미안하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이미 깨어진 배입니다. 두 조각이 났습니다. 우리 남한에 있는 조그마한 반 조각의 배를 타고 태평양 넓은 물에 떠다니면서 겨우 생명을 보존하는 이러한 형편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작고 깨어진 조각배를 탄 우리로서 갑자기  어떤 풍랑이 태평양에 일면 갑자기 어떤 비극이 우리 앞에 올는지 누가 압니까? 그런데 이와 같이 깨어져 가는 이런 배 가운데 살면서 더욱이 중대한 책임을 맡은 우리들이 졸고 있다고 할 것이면 어찌 이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깊이 생각하여 보면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세계의 배도 심히 위태로운 자리에 있습니다. 참으로 깨어져 가는 위태한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현대를 흔히 유도탄의 시대라고 하고 인공위성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소련에서 벌써 인공위성을 두 번째 성공적으로 발사하면서 세계적으로 과학의 진보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 미국에서는 운석을 아주 멀리 발사해서 태양을 싸고도는지 혹은 태양에 흡수되지 않았는가 하는 말을 우리가 듣습니다. 사실 유도탄, 위성, 이것들이 새롭게 이 세계에 나타나면서부터 세계는 한층 더 전보다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제二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독일의 히틀러나 이태리의 무솔리니는 그 때 독재자로서의 자기의 세력을 과시하고 자유 진영을 무시하면서 굉장히 선전했지만 사실 자기네가 생산하는 비행기, 자기들이 생산한 탱크, 자기들이 준비한 무력이 능히 자유 세계를 도전해서 이길 수 있는 자신이 생길 때까지는 감히 공격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산은 오산이지마는 그들에게 일단 그와 같은 자신이 생겼을 때에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이렇게 소련에 있는 이 같은 독재자들이 한번 어떤 방면에 자유 진영보다 과학적으로 좀더 우수한 무리를 발명했다고 생각해서 자기네들이 자유 진영을 도전해도 견딜 수 있다고 하는 자신이 생기게 되면 그 때야말로 세계는 三차 대전을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이와 같은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요나가 이런 가운데서 잠잔 것과 같이 잠자는 생활을 하게 되면 그 잠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야말로 우리의 믿음의 등불을 밝혀야 할 때입니다. 이 때야말로 전신을 차리고 믿을 때입니다. 이 때야말로 언제 어느 때에 어느 시기에 하나님을 만날 시기가 올는지 알 수 없는 이런 때, 언제든지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안될 때입니다. 위태한 때에 깊은 잠이 드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요나의 잠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 그 때의 다른 사람들은 다 깨어 있었습니다. 사공들이 자기의 신을 부르짖고 배를 건지기 위해서 배에 있던 짐을 바다에 던지며 사공이나 여객이나 할 것 없이 각각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나르라고 다 분주히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배 밑에서 깊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사실 이 깨어져 가는 배 같은 세계를 구원해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애를 쓰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혹은 유엔을 통해서 혹은 지역적 정치 기구, 나토(NATO)니 시이토(SEATO)니 또 그 밖에 여러 국제적 회합 등을 통해서 어떻든지 이 배를 평화롭게 보존해 보려고 많은 세계의 정치가들이 머리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우리 한국적인 견지에서 볼 때도 이런 말, 저런 말, 많지만 우리 한국 안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이와 같은 위기에서 어떻게 이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배를 험악한 물결이 이는 바다 위에서 능히 지탱해 나갈 수 있을까? 많이 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교육자들은 소위 도덕 교육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농촌 개선 운동을 부르짖고 산림 녹화운동을 부르짖고, 산업, 재건을 부르짖고, 정치 도의를 부르짖으며 어떻게 하면 이런 위기 가운데서 이 나라를 잘 보존해 나아갈 수 있을까 하고 우방 여러 대표들이 와서 우리 나라를 각 방면으로 도와줍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지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데 만분지일이라도 돕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 사공들이 자기 신에게 부르짖었다고 했는데 사실 그 사공이 자기 신에게 부르짖어서야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 사공들이 우상에게 비를 것처럼 오늘날 세계적으로 보면 이런 세계적 위기를 당해서 많은 우상 종교도 부흥 운동을 일으킵니다. 태국이나 세일런 같은 나라에 가보면 불교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런 세계적 위기를 당해서 이 불교를 통해서 세계가 갱신을 해야겠다고 합니다. 아람 나라 같은 데서는 회회교 부흥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 밖에 우상에게 부르짖는 것과 같이 그것이 필요는 없겠지만 소위 사이비 종교, 이단 종파, 미신 종파, 여호와의 간증 자, 몰몬, 이런 것들도 다 힘을 내서 어떻든지 좀 도와 부겠다고 부흥 운동을 일으키며 굉장히 애를 쓰는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와 같이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진리에 입각한 하나님의 교회, 진리에 입각한 하나님의 성도가 이 때에 잠을 자고 자기의 책임을 몰각하여 잊어버리고 있다고 하면 이 점을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또 보세요 근본적으로 요나의 이 잠이 무슨 잠인가 하면 자기의 사명을 잊어버린 잠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분명한 사명을 받았습니다.『니느웨에 가서 그들을 쳐서 외치라』는 분명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분부를 배반하고 욥바로 내려와 배 밑창에 들어가서 깊은 잠을 잤다고 하는 것은 요나의 신앙이 얼마나 타락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나가 다른 사람을 깨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외쳐야 할 터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외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명을 잊어버렸습니다.


여러분 70년 전에 한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내서 교회를 세운 것은 70년 후인 오늘에 있어서 한국 교회에 분명한 하나님의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를 불러내시어서 하나님을 공경할 줄 알게 만들고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신 것은 우리에게 주신 각각 사명이 있어서 분명히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 깨닫고서 이와 같이 깨어져 가는 배 가운데서 살면서 마땅히 살아야 하는 길로 우리가 살고 있습니까? 그저 우리의 신앙 생활이 한 주일에 한번씩 예배당에 가서 예배만 보고 가면 그것으로 다 행한 것인 줄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요나가 이렇게 깊이 잠들었을 때 선장이 외치면서 깨우니, 사실 요나는 속으로 시끄러워했을 것입니다. 남이 단잠을 자고 있는데 왜 이렇게 괴롭히는 가고 아마 시끄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년 정월 초하루 날이면 전도하는 풍속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난 정월 초하룻날 어떤 집에 전도하려 들어가 보니 여러 젊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화투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하는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지를 주며 예수 믿으라고 하니 대단히 시끄럽게 여겼습니다.『잘 노는데 기분 나쁘게 회개하라고』이런 핀잔을 들었습니다. 아주 시끄러워합니다. 아주 싫어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친구나 그런 친척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오늘 아침 예배당 갑시다』하면 속으로는 대단히 시끄럽게 생각합니다.『남은 좀 집에서 편안히 이으려 하는데 예배당에 가자고』대단히 시끄럽게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전에 어떤 사람이 오늘 저녁엔 좀 잠을 편안히 자겠다고 해서 밤에 개가 짖으면 시끄러울 테니 개를 죽였습니다. 닭도 새벽에 울면 시끄러울 테니 닭도 죽였습니다. 그리고서는 아예 문을 꼭 닫고 불도 다 끄고 편안히 잘 잤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실컷 자고 일어났습니다. 닭소리도 없어서 잘 잤습니다.『이거 몇 시쯤 되었나』하고 시계를 보려니까 시계가 없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옷을 입으려고 하니 의복도 없어졌습니다. 재봉틀, 라디오, 그 밖에 중요한 물건은 거의 다 없어졌습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자는 가운데서 깨라고 외치면 싫어합니다. 시끄러워합니다. 선교도 보통 다른 설교하지 이렇게 깨라고 하는 설교는 시끄러워합니다. 밤에 개가 짖는 것처럼 시끄러워합니다. 싫어합니다.
그러나 어찌해서 깨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자지마는 여러분의 마귀 원수가 자지 아니합니다. 우리 원수 마귀는 자지 아니하고 우는 사자와 같이 밤중에도 삼킬 자를 찾으려고 다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는 것만 보면 여러분의 짐에 여러분의 속에 들어와서 여러분의 가장 귀한 것, 여러분의 영혼을 도적질 해 갑니다.


요사이는 도적질도 발달이 되어서 마취제를 가지고 다닌다고 합니다.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그래서 상점에 그런 일을 당하신 분들이 계시지요. 귀금속 파는 상점에 들어가 무엇을 이야기하는 척 하고 마취제를 코에다 가까이 대어서 호흡시킵니다. 조금 이야기하다가는 마취제에 취해서 그만 정신을 잃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많은 귀중한 물건을 들고 가버립니다.
마귀가 이런 법을 씁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을 마취시킵니다.
맨 처음에 큰 죄를 범하게 자지 않습니다. 갑자기 타락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마취제를 주어서 좋게 합니다. 그저 예수를 믿기는 믿으나 흥겨웁게 믿는 게 좋아 그저, 쉽게 믿는 것이 좋아, 그다지 열심 있어 무엇해. 그저 흥겨웁게…하고 마취제로 먼저 자게 만듭니다. 자게 한 다음에는 가장 값진 보배인 여러분의 영혼을 도적질 해 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요나가 잠을 깨는 것을 싫어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요나를 그냥 두지는 않았습니다.
깨우고야 말았습니다. 풍파를 일게 한 것도 요나를 깨우게 하기 위한 것이요, 선장이 이렇게 부르짖게 한 것도 요나를 깨우려고 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에 제비를 뽑아서 물 속에 던 지우게 한 것은 아직 잠을 깨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에 고기 배속에 들어가게 한 것도 요나의 잠을 깨우게 하기 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이 졸게 되면 이 사람들을 깨우시려고 풍랑도 일으키며 친구를 보내서 권면도 하시고 환난과 재앙에 빠지게 하시고 깰 때까지 하나님께서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까지 하시기 전에 깨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떤 분을 보면 부득이 하여 부시시하고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하고야 일어납니다. 그 전에 깨면 얼마나 더 좋습니까?
이때야말로 잠 잘 때가 아닙니다. 한국의 정세로 보나 세계의 정세로 보나 어떤 모로 보든지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죄악의 잠을 깨어서 내 책임을 바로 감당할 위기입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깨어야 되겠고 내가 내 민족을 위하여 깨어야 되겠고, 세계를 위하여 깨어야 되겠습니다. (1957년 1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