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오월 둘째 주일, 오늘은 세계적으로 어머니 날로 지키는 주일이올시다. 우리가 어느 때 어머니를 잊어버리고 그 은혜를 생각지 아니 하리요 마는 특별히 하루를 정해서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존경하고 효도(孝道)를 하는 것을 돕기 위해 이와 같이 특별한 날을 정한 줄 압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특별히 어머니의 은덕을 생각해야 될 줄 압니다.
우리는 내 어머니 은혜나 내 어머니만 생각지 말고 모든 다른 이의 어머니도 생각해야 될 줄 압니다. 옛 글에도 노오노하여 이급인지노(老吾老 以及人之老)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어머니를 어머니로 해서 다른 사람의 어머니까지 미치는 생각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특별히 순교자의 부인으로서 어려운 가운데 있는 어머니들, 또 전쟁 미망인으로서 어려운 가운데서 자녀를 기르는 모든 불행한 어머니들을 생각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머니 되신 이들은 이와 같은 날을 당해서 더욱 어머니로서의 은혜 받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될 줄 압니다.
오늘 봉독한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올시다. 아마 우리 생각에 사도 바울이 생전의 마지막으로 쓴 편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 들으신 것같이 이 가운데 인간적인 사도 바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사랑하며 보고싶어 할 때에『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5절에 계속해서『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外祖母)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의 거짓 없는 믿음은 근원이 있습니다.
본래 외조모 로이스의 마음속에 이 믿음이 있었고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이 믿음이 있었고 이제 보니 기같이『거짓 없는 믿음이 네 속에도 있는 것을 확신하노라』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삼대(3代)의 믿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삼대를 계속해서 내려왔습니다. 먼저 어머니의 믿음이 딸에게 미쳤고 그 딸이 어머니가 될 때에 그 어머니의 믿음이 아들 디모데에게 미친 것입니다. 사실 거짓이 없는 어머니의 믿음은 삼대뿐 아니고 수 천대에 이르는 것입니다. 열 가지 계명 중에 있는 것과 같이『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복을 주시되 수 천대까지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속에 있는 거짓 없는 참된 믿음은 딸에게 미치고 아들에게 미치고 손자에게 미치고 계계승승(繼繼承承)해서 수 천대에 미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와 같은 어머니의 믿음, 믿음의 어머니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런 어머니의 믿음, 혹은 믿음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될 때에 구약을 펴게 되면 유명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연상하게 됩니다. 한나는 오랫동안 성태(成胎)하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수모(受侮)도 받은 여인이올시다. 그런데 이 여인이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가서 간절히 하나님께『자기에게도 아들을 허락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그 때 제사장으로 있던 엘리가 가만히 보니 정신없이 기도하는 것 같아서『술이 취한 줄로 오해했다』고 했습니다.『내가 술에 취한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일년 좀 남짓해서 귀한 옥동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 아기를 가정에서 잘 기르다가 젓을 때게 된 다음에는 다시 그 아기를 데리고 멀리 실로 라고 하는 곳에 있는 하나님의 성막(聖幕)에 가서 엘리 제사장 앞에서 하는 말이『내가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은 아들을 내게 주셨습니다. 내가 본래 하나님의 약조대로 이 아이를 하나님께 바칩니다. 또 온전히 이 아기의 평생을 하나님께 바칩니다.』했습니다. 아마 믿음의 어머니가 애기를 받을 때에 제일 먼저 생각되는 것은『이 애기를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그 생각인 줄 압니다. 믿음이 없는 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어머니는『내가 내 아들이나 딸을 받든지 이 귀한 아이를 하나님께서 내게 보냈으니 어떻든지 이 아이를 하나님께 꼭 바쳐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올 줄 압니다. 그것은 우리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내 개인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내 가정의 귀한 아들이나 딸을 보낼 때는 그 아들과 딸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되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무엇보다도 이 아들과 딸을 길러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것이 믿음 있는 어머니의 첫째 생각인 줄 압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믿음은 먼저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인 줄 압니다.
성모 마리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성전에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바친 그런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믿음의 어머니가 그 다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 아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하면 어떻게 이 아이를 하나님의 뜻대로 기르고 가르칠 수 있을까? 염려하며 언제나 애쓰는 어머니가 되는 것인 줄 압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어린애들이 말을 배우자마자 곧 가르쳐 주는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명기 6장 4절에서 9절에 있는 말씀인데『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 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행할 때든지 일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은 애기들이 말을 시작할 때부터 먼저『하나님은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니라 너희들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구약에 있는 다른 유명한 어머니를 연상하게 됩니다. 이 어머니는 유명하지만 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는 모세의 어머니올시다. 모세의 어머니는 숨겨져 있습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우리가 잘 압니다. 모세의 형 아론도 우리가 잘 압니다. 그 까닭은 출애굽기 1장에는 모세의 부모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6장에 내려가서 나타납니다.
모세의 어머니의 이름은 요게벳이라는 여자입니다. 히브리 11장을 보면『믿음으로 모세의 부모가 애기를 낳은 다음에 그 용모가 아름다움을 보고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석 달 동안을 숨겨서 길렀다』하는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아마 모세의 어머니처럼 애기를 낳은 다음에 안타까워한 여자가 없는 줄 압니다. 이렇게 귀한 아들을 낳았는데 그 때 애굽의 법률은『누구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지라』는 그런 엄한 칙령(勅令)이 있는 때입니다. 내놓고 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한 애기를 주셨는데 나일강에 던지라고는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할까? 히브리 기자는『믿음으로써 바로도 두려워하지 않고 석 달 동안 감추어서 길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애기가 점점 크는데 그냥 계속해서 기를 수 없으니까 갈대로 상자를 잘 만들어 그 속을 역청으로 칠해서 물이 못 들어오게 하고 그 속에 강보를 펴고 그 아기를 누여서 나일강 갈대밭에다 갖다 놓았습니다. 그 아기를 나일강에 갖다 놓을 적에 모세의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 어머니야말로 그 애기의 생명을 온전히 하나님께 위탁했습니다.
요게벳은 믿음 가운데서 그 애기를 나일 강변에 던진 줄 압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 요게벳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바로의 딸이 그 곳으로 목욕을 하려 나오게 되었고 애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발견하여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뿐 아닙니다. 요게벳이 그 후에 유모로서 자기가 기르게 되지 않았습니까? 젖을 뗀 다음에는 물론 애굽의 궁전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유모로서 종종 접촉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로서 교육한 사실이 출애굽기에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 후에 모세의 마음속에 애국심과 신앙심을 보아서 어렸을 때에 얼마나 요게벳이 모세에게 자기 조상 적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헸던 모든 약속의 이야기들을 모세에게 가르쳐 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해서 결국은 모세는 모세가 된 것입니다.
어머니의 믿음은 어떻게 하면 꼭 아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기르고 바로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데 나타납니다. 자연히 양육과 교육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어머니의 믿음과 교육을 생각할 때 우리 교회 역사에 있어서 주후 2, 3세기에 산 유명한 교부(敎父) 오리겐의 어머니를 연상하게 됩니다.
오리겐은 날 때부터 천재로서 매우 총명하였습니다. 말을 배우자마자 세 살 적부터 시편과 산상보훈을 다 외고 7, 8세 되었을 때는 성경의 대부분을 그저 머리 속에 외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별명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재주가 있지만 혼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의 덕이올시다.
어떻게 어렸을 적부터 믿음이 있었던지 17세 때 큰 핍박이 일어나서 자기 아버지가 로마 관원에게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수감(收監)중에 있는 자기 아버지에게 그 때 17세의 아들이 편지하기를『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굳게 지키세요. 그리고 믿음을 위해 생명을 바치기 바랍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합니다』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수감 중에 있는 자기 아버지에게『믿음을 지키라』고 격려했습니다. 순교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순교하겠다고 자기 아버지가 순교한 곳을 떠나갔습니다.
그 때 어머님의 말씀이 내가 네 믿음은 알지마는 순교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때가 있는데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순교하게 되면 하려니와 순교를 자청(自請)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어머니의 제재로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18세 때에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유명한 신학교의 대리 교장이 외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가지 어머니에게 이와 같은 철저한 교육을 받은 오리겐이올시다. 그 후에 온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큰 일을 한 것은 교회 역사를 읽는 사람은 다 기억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믿음을 생각하게 되면 자연히 어머니의 기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기를 하나님 앞에 바칠뿐더러 믿음의 어머니의 입술에는 아기와 가정을 위해서 간단없는 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생각하게 될 때에는 주후4, 5세기에 걸쳐서 산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를 연상하게 됩니다. 이 어거스틴은 그 대 로마 판도인 북 아프리카 힛포라는 데서 멀지 않은 다가스데라는 작은 촌에서 났습니다. 자기 아버지는 신앙 없고 방탕한 사람이었으나 자기 어머니 모니카는 믿음이 독실하고 총명하고 애정이 깊은 아주 경건한 부인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머리가 좋고 총명하고 재주가 많아서 어렸을 적부터 매우 공부를 잘했습니다. 이 학교, 저 학교에서 매우 공부 잘한 수재올시다.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당시에 젊은 사람들이 공부하던 수사학, 철학, 문학 모든 학문을 잘 배워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고 사실 수사학 선생으로 여러 곳에서 불림을 받게 된 그런 학문적 기반을 닦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말하면 어거스틴은 방탕한 성질을 아버지에게서 받았습니다. 이렇게 재주가 있어서 공부는 잘하고 다른 사람을 잘 가르치지마는 그 행실은 부족했습니다. 자기 어머니가 그렇게 기도하고 권면 하지마는 예수는 믿지 아니 했습니다.
오히려 그 때 이단인 마니교를 따라 다니며 어머니의 마음을 더 상하게만 말들었습니다. 이렇게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이 아들이 회개하게 해달라고 아무리 기도했지만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아들이 30 남짓해서는 북 아프리카 지방을 떠나서 이제는 이렇게 북 아프리카에만 있을 것이 아니고 로마로 가서 내 이름을 날리고 활약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로마 제국의 수부(首府)인 로마로 향해서 가려고 합니다.
그 때 청년들이 흔히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 모니카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이 곳 자기 어머니 앞에서도 항상 실수하는 청년이 호화롭고 죄악이 많은 로마 도시에 가서 어떤 깊은 죄에 빠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로마에 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마음이 너무 상해서 자기 목사를 찾아가서 어머니 모니카는 말했습니다.『내가 아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기도하고 특히 로마에 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종래 이 아들이 로마에 가니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그 목사가 하는 말이『그렇게 많은 기도를 받은 사람이 그냥 죄 가운데 있을 수는 없으니까 과히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격려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 혼자 보내기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어머니가 로마로 따라갔습니다. 로마에서 얼마 있었고 그 당시 좀 북편의 밀란 이라는 큰 도시가 있었는데 밀란 에 가게 되니까 거기 또 따라가는 등 같이 다닙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밀란 이란 곳에 그 당시 유명한 암브로스라는 목사요 설교가 가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거기서 압브로스의 명성을 듣고 그의 설교를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그 예배당에 한 두 번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암브로스의 설교와 그와의 접촉을 통해서 어거스틴의 마음이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33세 때에 밀란 교외에서 고요히 독산 속이 앉아 있으려니까 어떤 아이의 소리인지는 모르지만『어서 책을 펴서 읽으라』는 소리가 들려서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성경을 찾아 펴서 읽으니까 그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니고 로마서 13장 23-24절이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성경 구절을 받은 다음부터 온전히 변해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온전히 회개한 후에 그 다음 부활절에 세례를 받고 너무 기뻐서 내가 이제는 여기 있을 필요가 없고 본 고향에 돌아가서 좀더 공부해서 내가 이 앞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멀리 북 아프리카를 향해서 모자(母子)가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로마를 좀 지나서 작은 어떤 촌에서 자기 어머니가 병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가『내가 여기서 세상을 떠난다고 조금도 섭섭해 말라 나는 내 기도를 이루었으니 나는 한이 없다』『내 시체를 어디 장례 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고『내가 네게 한 가지 부탁하는 것은 네가 제단에 나가서 기도할 때마다 나를 기억해 달라』는 이말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제가 작년에 로마에 갔다가 밀란 이란 곳에 잠깐 내렸는데 밀란 교외에서 산보를 하면서 암블로스를 생각하고 또 어거스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태리에 여려 아름다운 도시가 많지만 밀란처럼 아름다운 도시가 없는 것 같습니다. 북편으로 아름다운 알프스 산이 흰눈으로 덮인 채로 병풍처럼 둘려 있고 그 아래는 기름진 넓은 광야가 있고 그 가운데로는 맑은 강이 흐르고 그 속에 밀란 이라는 도시가 생겼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머니가 세상 떠난 후에라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제가 나이는 많지 않지만 이런 예(例)는 종종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기도의 어머니는 그의 전 생활이 자녀에게 산 모범이 됩니다. 어머니의 기도의 모습, 어머니의 교회 나가는 모습, 어머니가 가정에서 가정 기도회 보는 그 모습, 어머니의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 하는 모습,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그 모습 다른 사람에게 친절히 하는 그 모든 모습을 자녀들에게 영원히 산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미국 남북전쟁 때 유명한 설교가 헨리 워드 비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이가 이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나는 한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철학자, 과학자가 전부 모여서 기독교를 반대하고 한편에 경건한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고 하면 내 어머니 한 분이 이 모든 사람을 다 대적하고도 남는다』고 하였습니다. 산 교훈을 줍니다.
미국의 유명한 대통령 링컨이『나의 현재 생활 전부와 또한 내가 장차 바라는 장래 생활의 전부도 오직 천사 같은 나의 어머니에게 빚진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천사와 같은 어머니, 믿음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천사와 같은 인상(印象)을 주게 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로이스와 유니게와 같이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여기 앉은 어머니들은 천사와 같은 어머니가 되고 여기 앉은 아들들은 디모데와 같은 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1957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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