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잠자는 자의 첫 열매 (고린도 전서15:1-15,20)

새벽지기1 2017. 5. 4. 08:06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기쁜 1957년 부활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고 사실에 기인한 종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사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그 사실,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 사실을 기초로 해서 된 종교입니다.
세계 모든 종교 가운데 부활절을 지키는 종교는 기독교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는 날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 주일은 우리 교회의 탄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학습 예식이 있고 매우 아름다운 찬양을 들었으니 길게 설교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부활주일의 뜻을 세 가지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부활주일은 첫째로 과거의 예수 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날이올시다.

예수께서 죽은 가운데 부할 하셨음으로 교회가 있게 되고 우리가 부활주일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매우 신기한 일이올시다. 사람의 이성으로 곧 깨닫기 어렵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예수의 제자들도 처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해 줄 때에 믿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가운데도 부활을 믿기 어려워하는 이가 없지 않아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신비하다고 믿지 못할 것인 아닙니다. 자연계를 가만히 돌아보면 신비치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봄에 땅에 묻힌 작은 씨가 어떻게 큰 나무로 화하는지 그것도 신비합니다. 마른나무 가지 같은 나무에서 어떻게 봄날이 되면 부드럽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지 그것도 신기합니다. 고치 속에 있던 번데기가 어떻게 아름다운 범나비가 되어 나오는지도 신기합니다. 신비하다고 믿지 못할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 항상 우리가 세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는 이런 일이 가능하냐?
둘째는 이런 일이 있을 듯하냐?
셋째는 이런 일이 사실이겠느냐?
먼저 이런 일이 가능하냐는 데 대해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는 말할 것도 없지마는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인간의 영혼이 있는 줄 아는 사람에게 대해서 이적의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는 줄 압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에 대해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이적을 생각할 때에 오리려 죽은 가운데서 그냥 있다고 할 것이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고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것이 사실이겠느냐? 그것은 결국 역사적으로 고찰할 문제밖에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 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교회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고 어찌하여 안식일이 주일로 변했는지 설명할 수 없고 빈 무덤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 낙심되어서 말할 수 없이 용기를 잃고 한심한 가운데 있던 이 제자들이 얼마 못되어 새로운 용기를 얻어서 예수 님의 부활을 증거 하게 되었겠습니까? 이 용기가 어디서 왔습니까?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고 만졌고 예수님과 같이 먹은 까닭에 우리가 과연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고 증거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확실히 부활해서 지금까지 살아 계시고 하나님 우편에만 앉아 계신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가 돌리는 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는 주님이올시다. 이 주님께서 인간의 역사를 주장하시고 이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다스리시고 이 주님께서 지금도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원해 내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부활주일은 미래의 부활을 우리에게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예수 님의 부활은「잠자는 자의 첫 열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뜻은 이 앞에 모든 사람들도 부활 때가 있겠다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로운 부활로, 생명의 부활로, 악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타날 날이 있다고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다음에 우리 인생이 죽은 다음에 저편에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영혼이 불멸되느냐? 멸망 받느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에게 확실한 대답을 줍니다. 쏘크라데스 이래에 많은 철학자들은 철학을 통해서 아무래도 무덤 저편에 생명이 있겠다고 우리에게 여러 가지 철학적 이론으로써 말해 줍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친히 부활하셔서 그 곳에 갔다 와서 사실 무덤의 배후에 생명이 있고 천당과 지옥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줍니다.


셋째는 이 부활주일은 현재의 부활을 우리에게 재촉하는 날이올시다.

살아 계신 우리 주님은 이 다음까지 기다리기 전에 영적으로 죄악 가운데서 죽은 영혼을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어서 부활케 하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그 영혼이 죄 가운데서 죽었습니다. 썩어졌습니다. 죽은 영혼을 구원해 줄이는 부활하신 예수 님밖에 없습니다. 이 부활절을 당하여 죽은 영혼이 소생하여야 되고 죽은 양심이 도로 살아야 되고 우리 민족의 죽은 애국심이 다시 살아야 되겠고 죽은 의리, 죽은 책임감, 죽은 사랑이 다시 살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민족의 생명이 이 부활절을 당하여 살아야 되겠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부활절에 묵은 풀밭에서도 아름다운 새 싹이 나고, 마른 것과 같은 나무 가지에서도 새 잎이 돋습니다. 모든 생명이 약동하는 이 기쁜 부활의 계절에 전에 속하던 것, 더럽고 썩은 생활에서 온전히 부활해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는 이 축복을 여러분 하나 하나가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957년 4월 21일)